벼농사로 돈벌면서 딴짓하는 업글인간
결혼 후, 아는 사람은 남편과 시어머님뿐인 시골마을. 남편이 출근하면 컴퓨터를 붙잡고 살았다. 블로그로 일기도 쓰고 미드도 보며 지냈다. 그마저도 어머님이 계셔서 놀고먹는 며느리로 보일까 봐 눈치가 보였다. 아침이면 밭에 나가 땀 흘리고 일하시는 어머님이 뻔히 보이는데 집에서 누워 쉴 수도 없었다. 못 쉬느니 차라리 일이라도 도와드리자 싶어 밭에 열심히 쫓아다니던 때도 있었다.
책을 읽을 용기
첫째를 임신하고 밖으로 나갈 핑곗거리가 생겼다. 보건소에 운영하는 임산부 교실에 다녔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보건소 오감발달 수업을 다녔고 도서관 뇌발달 수업도 다녔다. 매주 수업 나가는 날은 오랜만에 화장하고 외출하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첫째 임신 전, 군립도서관에 회원가입은 해두었지만 책을 본격적으로 빌려 읽기 시작한 건 매주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고부터였다.
첫 아이라 모르는 것도 많고 걱정도 많았다. 인터넷 정보는 너무나 다양하고 방대해서 보면 볼수록 더 고민거리가 늘어났다. 그래서 좀 더 전문적인 육아서적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보건소나 도서관 수업이 있는 날은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 자료실에 들려 책을 빌렸다. 아기를 안고 책을 빌리러 가면 조용한 도서관에서 아이가 소리라도 지를까 봐 불안했다. 인터넷에서 읽고 싶은 육아서적을 발견하면 스크랩해두었다가 도서관에 있는지 검색해보고 필요한 책만 냉큼 골라서 나왔다. 책을 여유 있게 구경하고 고를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책 냄새가 좋았고 종이 느낌이 좋았다. 그동안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다시 책을 읽을 용기가 생겼다. 10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예전의 내가 지금의 나로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도서관에 출근하기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고 곧바로 둘째를 임신한 걸 알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6개월뿐이었다. 아니, 나에게 6개월이란 시간이 생겼다.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면서 남편이 중고차 모닝을 사주었다. 내 첫 차! 시골생활 필수품인 이동수단을 획득했다. 이동수단이 생기자 시골생활에 날개를 단 것 같았다.
첫째의 어린이집 적응기간이 끝나고 나는 젤 먼저 혼자 여유 있게 도서관에 갔다. 조용히 혼자서 책을 고르는 시간도 너무 행복했다. 첫째가 동생 때문에 받을 스트레스가 걱정되었고 형제육아법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육아책을 참 많이 읽었고 읽다 보니 비슷한 내용들이 많았다. 특히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하다.'는 뉘앙스가 가슴에 와닿았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선 나부터 잘 살아야겠구나 싶었다. 일단 나부터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자연스럽게 자기계발서로 관심분야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나의 독서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다니면 단순히 책을 빌리는 것 말고도 좋은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좋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알게 된 '마중'이란 안내책자가 있다. 진천군 내의 여러 기관에서 운영하는 평생학습프로그램을 모두 모아 소개하는 책자이다. 아기가 있을 땐,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혼자인 지금 드디어 기회가 왔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엄마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만의 시간, 취미생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은 시간동안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해보자!'라는 생각에 이것저것 도전하기 시작했어.
6개월 동안 참 바빴다. 일주일에 3일은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캘리그라피, 동화구연지도사 과정, 책놀이지도사 과정에 참여했고 여성회관에서 모집한 정리수납 과정에도 참여했다. 문학관에서 중국어수업, 사회복지관에서 수어교실도 참여했다. 배가 부르기 시작하고 몸이 점점 무거워졌지만 두 번째 경험이라 무섭진 않았다. 출산에 여유가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가 태어나면 또 2년은 발이 묶일 테니..
독서의 신세계
우연히 자료실 앞 포스터에 붙은 오디오북을 소개를 보았다. 오디오도서관에서 도서관계정으로 접속하면 가입한 도서관이 보유한 오디오북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e-book, 전자책도 아직 낯선 때였는데 오디오북은 더욱 신선했다. 덕분에 전자도서관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초보 독서가에게 정말 신세계가 열렸다.
애들을 조금이라도 일찍 재우려고 초저녁부터 불을 끄고 지냈다. 아침 늦게 일어나 출근전쟁을 안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이들이 잠들어도 엄마가 옆에 없으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깼다. 덕분에 껌딱지 둘을 양쪽에 끼고 잠이 안 와도 누워 지냈다. 잠이 안 오고 심심하면 늘 핸드폰을 했다. 핸드폰으로 웹툰, 뉴스, 블로그, 유튜브 등 검색하며 인터넷의 바다를 허우적 대며 시간을 낭비했다. 블로그 포스팅을 핸드폰으로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쓸데없는 검색으로 몇 시간이 사라졌다.
전자도서관, 오디오북도서관은 이런 나에게 책 읽을 기회를 한 층 더 넓혀주었다. 종이책은 책을 읽을 때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조용한 시간 밝은 불빛 아래에서 여유 있게 책 읽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책을 읽고 싶어도 못 읽던 시간에 전자도서관, 오디오북도서관에서 여유 있게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언제, 어디서나 원할 때 독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오디오북은 귀로 듣는 책이라 청소, 설거지, 빨래 개기 등 집안일을 하며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강연을 듣는 것처럼 실감 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쉽고 재밌었다. 덕분에 독서의 부담은 줄이고 독서량은 늘릴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걸 느꼈다.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하며 오디오북을 들었고, 아이 취침시간엔 혼자 조용히 핸드폰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답답했던 삶에 여유가 솔솔 불어 들어온 느낌이었다. 독서에 눈을 뜨고 독서를 즐기게 되었다. 읽은 책들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나는 스스로 '나는 책 읽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이 생겼고, 스스로를 믿게 되자 낮아졌던 자기 효능감이 쑥쑥 높아졌다. 마침내 책 속에서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감동이 밀려왔다.
*[네이버국어사전] 자기 효능감 :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이 적절한 행동을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신념 또는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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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습관, 독서기록
2022년 독서치료를 하며 '내면의 아이'를 찾아보는 연습을 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토대로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생각해 보고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를 고민해보는 과정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근심걱정이 많았다. 사소한 것도 질문해야 했고, 두려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안감'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잊어버릴까 봐 늘 불안해했다. 그래서 항상 준비성이 철두철미했고 그런 성격 때문에 메모가 습관이 되었다.
메모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어렸을 적부터 다이어리를 작성하며 1년 치 계획을 세우고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살았다. 이건 타고난 성격인 것 같다. 육아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메모습관 덕분에 집안일, 농사일, 경조사, 돈관리 등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메모습관으로 인해 독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독서기록을 쓰게 되었다. 특별히 감상문이라기보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기록해 둔다. 그리고 틈틈이 자주 반복해서 독서기록을 읽는다. 맘에 드는 문장만 모았기 때문에 자기계발 액기스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나아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은 글을 읽고 고민을 하고 나만의 생각을 메모했다. 그때의 메모들이 지금 이 브런치북을 쓸 용기를 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궁금한 게 많아서
독서 8년. 참 많은 것을 얻었고 많은 것이 변했다. 지금도 고민이 있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 보면 또 다른 고민거리와 궁금증이 생긴다. 그리고 다시 책을 찾아 읽는다.
어렸을 적부터 궁금한 게 참 많았다. 그래서 공부를 좋아했다기보단 궁금한 것에 대한 답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한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연현상, 인간의 심리 그리고 여러 가지 사회현상, 경제, 정치, 역사 등 다방면에 궁금한 것이 참 많았다. 내가 궁금한 것의 답을 찾으면 굉장히 뿌듯했다. 내가 궁금해한 것을 누군가도 궁금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정보를 블로그에 정리하여 올렸다. 그렇게 나는 궁금한 게 너무 많은 "프로배움러 써니지나"가 되었다.
난 생각이 많고 고민도 많다. 궁금한 것도 많아서 궁금한 걸 또 생각한다. 그럼 또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잇는다. 궁금한 게 많아서 책을 읽었고 책 속에서 답을 찾아보기도 했다. 덕분에 예전보다 사고가 성숙해지고 유연해진 느낌이다. 얼마 전에 읽은 <나는 말하듯이 쓴다>에서 강원국 작가는 '질문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생각을 촉발하고, 결국 나를 성장시킨다.'라고 말했다. 난 그동안 내가 궁금한 것이 많았던 덕분에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나 보다.
책을 읽다가 발견한 것
정리수납을 배우고 관련책을 찾아 읽었다. 정리수납을 생활에 적용하고 삶에 여유를 많이 찾았기 때문이다. 이후 자격증을 취득하고 실생활에 접목시켜 사용하였지만 한계가 있었다. 금방 게을러졌다. 그때 오디오북에서 윤선현 작가의 <하루 15분 정리의 힘>을 읽은 것이 큰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이후 정리, 비우기를 주제로 한 여러 책을 읽다가 '미니멀라이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단순히 있는 물건을 정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 필요 없는 물건들로부터 해방되는 삶.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이었다. 책을 읽다가 내 인생의 방향성을 찾았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말하는 법에 대해 책을 읽었다. 읽다 보니 인간관계, 대화법, 심리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인간심리를 다룬 책들은 습관, 성공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인 '독서'란 주제로 이어졌다.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며 부자가 되는 법에 대한 책을 열심히 읽었다. 성공하는 법, 돈 버는 법, 세계 경제, 주식시장 등으로 확장되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세상에 눈을 떴다.
하우석 작가의 <내 인생 5년 후>란 책을 읽고 내 인생이 정말 5년 단위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20살을 시작으로 대학생활을 5년 동안 했고,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5년 동안 했다. 퇴직하자마자 결혼을 했고 5년 동안 껌딱지 아이 둘을 적당히 사람답게 키웠다. 그리고 자유가 찾아왔고 독서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당장 35살부터 5년 동안의 목표를 세웠다. 5년 동안 다양한 경험 쌓기. 그리고 40살이 되면(2023년이 바로 그날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런 목표가 있었기에 지난 5년 동안 조금 더 열심히 배우고 성장하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덕분에 40살 목표보다 더 빨리 수익을 창출했다.(많든 적든 수익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책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도 40살이 되기 전에 내 인생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 멋지게 39살을 마무리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12월 31일까지 브런치북을 마무리 짓는 것이 지금의 목표이다!)
'독서가 인생을 바꾼다.'는 식의 말들은 처음 책을 읽을 때 식상하게 들렸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모두 진리였다. 책을 읽으며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다시 한번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인생은 바른 길로 멋지게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무엇을 시작할까 막막하다면, 가장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가자. 도서관에 가서 책 속을 헤매어보자. 무엇이든 읽고 싶은 책 하나만 찾아보자.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