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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전쟁 9년, 아들 둘 낳고 레벨업

벼농사로 돈벌면서 딴짓하는 업글인간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에너지를 충전할 때 조용하고 여유 있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나랑 정반대로 외향적인 남편을 만났다. 바깥활동을 좋아하고 무엇이든 둘이 같이 하는 걸 좋아하는 껌딱지 남편. 콩깍지가 씌어 마냥 좋았다. 엄마가 되었다. 껌딱지가 둘이나 늘어났다. 결혼 후 5년 동안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갑자기 뺏긴 자유

신혼생활 반년만에 임신을 했다. 신혼생활을 더 길어질 줄 알았는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첫 아이 임신 사실을 알고 남편은 소리 지르고 뛰어다녔고 나는 펑펑 울었다. 억울했다. 인생의 자유를 너무 갑자기 뺏겨버렸다.


지나고 보니 아이 둘 육아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출산하고부터 혼자의 시간은 없다. 쪽잠 자는 건 참을 수 있었다. 몸이 고된 것도 익숙해졌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이 없다. 아니 시간은 많은데 혼자는 아니다. 24시간 늘 함께다. 엄마로서 행복한 시간이었음이 분명한데 나는 점점 지쳤다. 혼자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생각을 비울 시간이 필요했다.         



6개월 시한부 인생

첫째가 3살이 되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은 너무 일찍 보내는 거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난 꼭 보내야만 했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에게 어린이집은 희망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드디어 생겼다. 첫째 출산 후 2년이 걸렸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등록할 때 둘째가 임신된 사실을 알았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약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이 시작됐다. 이 시간을 정말 알차게 잘 쓰고 싶었다. 어렵게 주어진 자유였기에 더 소중했다.


둘째 임신 사실을 알고 가장 걱정된 건 첫째가 느낄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아이 둘을 키울 때 필요한 부모로서의 마음가짐, 육아방법 등 궁금한 게 많았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공부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도서관에 갔다. 육아서적을 시작으로 대학생 때 멈추었던 독서를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했다.


도서관에 간 김에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6개월 동안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지런히 배우러 다녔다. 사람을 만났고 책을 읽었다. 독서가 참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둘째를 낳고도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때의 자유시간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 딴짓을 시작했고 프로배움러가 되었고 행복한 업글인간이 되는 중이다.



또다시 육아전쟁

둘째가 태어났다. 또다시 육아전쟁이 시작됐다. 아주 힘든 2년을 보냈다. 첫째가 동생이 태어나고 스트레스받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동생을 너무 이뻐했다. 이쁜 내 새끼들, 그래도 안 힘들면 거짓말.


2살 터울이라 웬만한 육아용품은 다 그대로 사용했다. 형아 옷도 다 물려 입혔다. 초보엄마지만 실전경험이 새록새록해서 둘째는 요령이 생겼다. 하나를 키울 때보다 힘들었지만 쉬운 일도 많았다. 초보엄마도 중수로 레벨업했다.


2살 터울이라 어려움도 있었다. 둘째가 태어날 때 3살인 첫째는 기저귀 떼기 중이었다. 화장실에서 쉬하기를 연습하며 팬티를 입고 다니기 시작할 때였다. 둘째 낳기 전에 기저귀 때기를 성공하려고 노력했는데 실패했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엄마 보러 와서도 여기저기 쉬를 싸는 바람에 출산 후 기운도 없는데 뒤처리하느라 참 힘들었다. 4살이 되고 낮 기저귀를 뗐다.



미운 3살 미친 5살

임신-출산-육아 과정을 2번 경험하고 나니 5년이 지났다. "언제 크냐, 어서어서 빨리 크거라." 하며 하루하루 버텼다. 지나고 보니 5년이 순삭 했다. 첫째가 5살, 둘째가 3살이 되었다. 5년 만에 두 녀석이 동시에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진짜 자유가 왔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5년 중 가장 힘든 육아전쟁을 치렀다. 미운 3살, 미친 5살. 첫째가 5살 때 밤 기저귀를 땠다. 잠은 부족하고 매일 이불빨래를 일주일 연속으로 하며 몸도 마음도 지쳤던 시기였다. 이쯤 해서 첫째는 자기주장이 생겨나며 소리 지르고 울며 떼쓰는 일이 많아졌고 둘째는 말도 잘 안 통하는데 통제가 안 됐다. 아들 둘의 에너지에 기가 빠지고 두 녀석 다 제어가 안 되니 참을성의 한계가 왔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식에게 '미운, 미친'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는데, 왜 이런 수식어가 나올 수밖에 없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정말 육아가 힘들어 우울함이 바닥을 찍었다.



여유를 찾았다

육아가 힘든 만큼 두 녀석이 어린이집에 가고 없는 6시간의 자유를 맘껏 즐겼다. 두 녀석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도서관에 매일 출근했다. 책을 읽고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따고 공부를 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재능기부를 하고 봉사활동을 했다. 내가 다시 쓸모 있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1분 1초가 아까웠다. 자유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이용해야만 했다. 둘째 출산 전 배웠던 정리수납 덕분에 집안일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정리수납을 배우고 삶에 여유를 찾게 되었다. 집이 정리될수록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정리수납을 통해 미니멀라이프도 알게 되었다. 비우고 나누고 버렸다. 물건으로부터 독립된 삶. 적게 가질수록 여유로운 삶.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려고 노력했고 막막했던 살림, 육아가 조금씩 수월하게 느껴졌다.


수업 들으러 도서관에 간 김에 책을 왕창 빌렸다. 빌린 책을 다 읽을 자신은 없었지만 매주 도서관에 출석하니까 못 읽으면 다시 가져올 생각에 부담이 없었다. 빌려온 책을 틈틈이 읽었다. 육아서적 위주로 읽다가 자기 계발서로 넓혀 나갔다. 책을 읽은 김에 독서노트를 썼다. 책을 읽고 또 읽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독서를 멀리하고 살았는데 뒤늦게 독서의 재미에 빠졌다. 도서관에서 캘리그라피 수업을 들었는데 책을 읽으니까 캘리그래피에 쓸 문구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캘리 쓰려고 같은 문구를 몇 번씩 쓰고 이쁘게 써서 사진도 찍고 벽에도 붙이고 하니까 그 문장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문장에 감동받고 생활에 실천하고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삶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쓸모 있어진 것 같았다.


바쁘게 살면서도 아이들이 없는 평일 오후는 혼자 조용히 정리의 시간을 가졌다. 물건을 비우는 시간, 책을 읽고 메모하는 시간, 카톡 친구들을 살펴보고 안부를 묻는 시간, 나의 꿈과 미래를 고민해볼 시간, 스마트폰 캘린더를 켜놓고 할 일을 정리하는 시간, 멍 때리는 시간, 고민하는 시간 등. 혼자만의 시간으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숨통이 틔이고 사는 게 점점 재밌어졌다.



나도 농사에 기여 중

출산 육아 5년 동안 농사일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은 앞서는데 아이들 때문에 집안에만 갇혀 지냈다. 벼농사는 봄에 못자리, 여름에 비료 농약, 가을에 수확으로 바쁘다. 남편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농사는 주말 일거리였다. 남편을 도와 농사일을 하고 싶었지만 애들 챙기고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그때 젤 섭섭한 말이 "집에서 애들이랑 쉬고 있어."였다.


사실 애들 보는 건 별개고 논에 일 나간 식구들 밥과 참을 챙기느라 더 바빴다.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농사철엔 주말마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더 정신없고 바빴다. 집에 손님 북적이는 걸 좋아하는 남편과 어머님은 일 끝내고 다 같이 고기 굽고 술 한잔 하는 걸 즐거워했다. 혼자 조용히 쉬고 싶은 나는 에너지가 방전되었다.


애들 챙기기도 내 몫, 차리고 치우는 것도 내 몫, 집안일도 내 몫. 차라리 논에 따라 나가고 싶었다. 논에서 일하는 게 더 재밌고 신날 것 같다. 논에 가서 일하고 오면 고생한 생색이라도 낼 텐데. 나도 농사에 기여하고 있는 건 분명한데, 집에서 하는 일은 티가 안 났다. 나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아이들이 조금 더 컸다. 이젠 애들 챙길 걱정이 줄었다. 애들 다 데리고 나도 논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논에서도 애들 챙기는 건 내 몫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밥은 사 먹거나 시켜 먹는다. 신난다. 남이 해준 밥은 다 맛있다.


껌딱지 두 녀석 안고 업고 키우느라 근력이 생겼다. 20킬로 비료도 번쩍번쩍 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자랑스러운 부하1이 되었다. 트럭도 운전하고 지게차도 운전하고 삽질도 하고 낫질도 하고 농사꾼으로 레벨업 되었다.



아들 셋과 산다

이제 육아 9년 차. 내가 낳은 아들 둘 + 시어머님이 낳아 주신 아들 하나. 나는 지금 아들 셋을 키우고 있다.


가냘프던 나는 애를 둘 낳고 이제 무서울 것이 없는 막강 아줌마로 거듭났다. "내가 애도 둘이나 낳았는데 못할게 뭐야?" 하는 마음으로 용감해졌다. 애들이 커가면서 이제는 좀 쉬워지려나? 싶다가도 늘 새로운 과제가 등장한다. 나는 지금도 육아전쟁 중이다. 엄마를 만렙으로 만들려고 아들 둘이 아니 아들 셋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게 9년 동안 육아전쟁 중이며 만렙 엄마로 거듭나는 중이다. 아들 둘 키우는 엄마는 무서울 게 없다. 아니,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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