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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화 4년, 코로나 이후

벼농사로 돈벌면서 딴짓하는 업글인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 2018년~2019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던 나는 운이 좋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모든 일상이 멈추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거 같았다. 집에서 혼자 배울 수 있는 것들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



중국여행을 위해, 중국어 회화

우리 언니는 중국어를 전공하고 중국에서 유학 후 직장생활을 했다. 언니 덕분에 내가 대학생일 때부터 중국여행을 갈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중국어 공부를 조금씩 했지만 결혼 후 중국어 공부는 손 놓고 있었다.


2019년 코로나 직전, 언니의 권유로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중국에 갈 기회가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타이밍이 좋았다. 중국에 가기 전 뒤늦게 다시 유튜브를 보고 중국어회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기초회화를 했던 터라 가볍게 중국어회화를 연습하고 중국에 갔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아이들에게 참 좋은 경험이었다. 중국어로 '니하오'하고 인사 한마디 해보는 것도 참 중요하다. 이 경험이 앞으로 아이들이 외국어를 배울 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란다.


영어는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참 오래도 공부했는 데 사용할 수 없다. 읽을 수는 있는데 쓸 수 없고, 들을 수는 있는데 말할 수 없다. 내 평생 영어를 가장 많이 활용(?) 한 건 미드 볼 때뿐이었다. 물론 미드도 자막이 다 나오니까 딱히 영어를 알 필요가 없다.


중국어는 달랐다. 중국여행을 목표로 배우기 시작했고, 여행지에 가서 써먹을 일이 있었기에 일상회화 습득이 빨랐다. 배운 건 써먹었고, 써먹은 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영어도 처음부터 써먹을 생각을 배웠다면 좀 달랐을 텐데. 



방탄소년단 RM의 동기부여, 영어회화

2020년 본격적으로 활동가에서 강사로 활동을 시작하려던 찰나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고 집 밖을 나가는 것도 무서웠다. 강사비를 받고 수업을 나갈 첫 기회가 왔는데 코로나로 수업이 다 취소되었다. 이후 대면수업을 다시 도전하는데 1년이나 걸렸다.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코로나 접촉자가 생겼다.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이들과 함께 집콕하며 하루를 무기력하게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도 모르게 코로나 우울증을 겪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TV를 볼 때면 나도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그때쯤 유튜브를 통해 BTS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방탄소년단 예능을 보며 이들이 왜 성공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공연영상을 보며 왜 그들이 월드클래스인지 느껴졌다. 그들을 보며 '방탄 부모님들은 진짜 뿌듯하겠다.'는 것과 '우리 아들들도 BTS처럼 멋지게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나 아줌마 맞는구나.' 하고 다시 한번 느꼈다.


그렇게 유튜브로 방탄 알고리즘을 따라 흘러가다가 RM의 유엔연설 영상을 보았다. RM의 유엔연설 이후 소감을 말하는 영상도 보게 되었다. 그는 외국유학 경험도 없이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말할 수 있게 된 비결로 미드 '프렌즈'를 반복학습했다고 했다.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대학생시절 토익공부하면서 <프렌즈> 봤는데. 아주 재밌게 완주했는데. 직장 생활하던 만 5년 동안 유일한 취미생활 '미드보기'로 폐인처럼 살았었는데. 왜? 왜 나는 영어를 못 할까. 자칭 프로배움러라고 블로그에 떡하니 적어두었지만 내가 너무 한심했다. 영어공부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날 때였다.

 

그때 마침 첫째가 학교에서 안내문을 가져왔다. 충북교육청에서 학생 및 학부모 대상으로 화상영어회화 수업을 무료로 지원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원어민 영어회화? 거기다 무료라고?! 이때다 싶었다. 


필리핀 원어민 선생님과 화상통화로 대화를 했다. 잘 말하고 싶어서 '네이버 파파고'로 말하고 싶은 내용을 미리 문장으로 만들어보고 연습했다. 수업 중에도 손은 빠르게 필요한 단어들도 찾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말하기가 서툴렀지만 능숙하신 선생님이 아주 잘 이해해 주셨다. 


아들을 하나 키우는 싱글맘 선생님이었는데 육아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대화가 무척 순조로웠다. 아이들이 유튜브와 게임에 중독되는 것에 대한 고민, 편식에 대한 고민, 가족이야기 등 부담 없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도 예습복습은 필수! 


문법이 안 맞아도 단어가 생각 안 나도 입 밖으로 영어를 내뱉어보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다. 내 입에서 영어가 나오다니 나 스스로도 신기했다. 아이들은 영어로 말하는 엄마가 멋있어 보였는지 존경(?)스런 눈빛을 보냈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꽤나 뿌듯했다. 3개월 정도 수업을 들었고 '나도 영어로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수업이 끝나고 영어공부는 다시 멈췄지만 평소에 영어감탄사(?)라도 자주 사용하고 익숙한 문장은 자주 써먹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영어를 사용할 일이 없으니 실력이 늘지 않는다. 써먹을 일을 만들어야 영어가 늘 것 같다. 코로나가 풀리면 해외여행을 꼭 한 번 가보자고 맘먹었다. 해외여행 계획중이다!


그렇게 영어가 다시금 잊혀갈 때쯤 웃을 일이 생겼다. 2022년 가을, 벼수확으로 한창 바쁠 때였다. 농사일은 주말밖에 시간이 없어서 그날도 밤늦게까지 추수를 하고 있었다. 근처 공장에서 일하는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이 어슬렁어슬렁 지나가다가 콤바인으로 벼 수확하는 걸 무척 신기하게 구경했다. 한참 서서 구경하다가 나에게 오더니 말을 건다. 영어로.


외국인 : 너 영어 할 줄 알아?

나 : 어, 조금.

외국인 : 어느 나라 사람이야?

나 : 나 한국사람!

외국인 : 너 영어 잘한다. 훌륭해.

나 : 아, 그래? 고마워. 잘 가~


뭐 딱히 몇 마디 나누진 않았지만, 외국인이 말 걸었을 때 난 당황하지 않았다! (잘했어!) 짧지만 정확하게 의사전달을 했다! (잘했어 잘했어!) 옆에 계셨던 어머님께는 어눌한 한국말로 말 걸더니, 나에게만 영어로 말을 걸었다. 눈만 빼꼼 내놓고 두건에 모자까지 눌러쓴 나는 외국인 며느리로 본 것 같다. 


태어나서 외국인이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고 예상치 못한 질문에 황당했지만 그 짧은 순간 영어회화 공부 한 보람을 느꼈다. 역시 배운 건 써먹어야 생생해진다. 아~, 다시 영어공부 하고 싶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시원하게 맥주 한 잔 마시며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아까 우리 구경하던 외국인들이 나 보고 어디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봤어."라고. 남편이 박장대소를 하며 깔깔깔 웃는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시골에서 외국인 며느리로 오해받는지 깜빡했나 보다. 



유튜브 세상에 도전, 영상편집

코로나 팬데믹 동안 유튜브 덕분에 잘 버텼다. 기왕 유튜브를 보기로 맘먹었다면 유익한 영상을 보고 싶었다. 경제채널 '삼프로TV'도 이때부터 시청하기 시작했고 재테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재테크에 눈을 뜨며 '부자, 성공' 키워드의 책과 영상을 많이 보게 되었다. 그렇게 영상을 보면서 유튜브 세계를 방황하길 3개월. 동영상을 소비하는 구독자에서 동영상을 생산하는 유튜버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었기에 새로운 채널을 만들고 운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동영상을 찍고 편집해야 하는데 동영상편집은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지 배워야 했다. 


일단 핸드폰에 무료 동영상편집 어플을 여러 개 설치했다. 하나씩 사용해 보았다. 전문가처럼 멋진 편집은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렵다. 그리고 복잡하게 편집을 시작하면 몇 편 올리다가 힘들어서 쉽게 포기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손에 편하고 간단한 어플로 선택했고 최소한으로만 편집을 했다.  


동영상편집은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아니 간단하게만 편집을 해도 유튜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채널의 콘셉트도 없었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에 일단 하나씩 찍어 편집해서 올렸다. 


가족, 지인 다 동원해서 구독을 눌렀다. 이후에는 '도대체 누가, 왜 구독하는 거지?' 싶지만 구독자가 한 명씩 늘어났다. 정말 고맙습니다! 유튜버로 돈을 버는 게 최종 목표지만 10년 후에나 가능하려나. 아직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틈날 때마다 하나씩 올리고 있다. 아이들이 '우리 엄마 유튜버야.'라고 신나게 소문내고 다닌다. 나는 처음 해보는 일에 도전했다. 남들은 망설이기만 할 때 나는 당장 시작했다. 나 좀 대단한데. 자존감이 쑥쑥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걸로 됐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기력한 순간에도 용기를 내어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세상엔 아직도 도전해볼 일들이 참 많다. 5년 계획의 마지막 피날레로 지금 나는 글쓰기에 도전 중이다. 12월 31일까지 <벼농사로 돈벌면서 딴짓하는 업글인간> 책 쓰기를 끝내고, 2023년 1월 1일 브런치북 발간에 성공할 수 있길 바란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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