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을 시작하고 더 넓은 세상이 보였다. 삶에 의욕이 차올랐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졌다. 결혼 5년 만에 아이 둘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하루 6시간이란 자유가 생겼다.
2018년, 내 나이 35살. 새로운 5년 계획이 시작되는 해였다. 아직 '유아'에 속하는 두 녀석들이 '어린이'가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5년만 더 기다리자. 당장 조급해하지 말자. 공부를 하고 경험을 쌓아서 5년 뒤엔 꼭 돈 벌기에도 도전하고 싶었다. 목표가 생기니 5년도 짧게 느껴졌다. 할 일이 많았다. 부지런히 살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고 있는 5년 후 지금, 진짜 지난 5년이 후루루루룩 지나간 것 같다.
딴짓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했고 사람을 사귀었다. 그 과정 속에서 깨달은 점들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이제는 내가 써먹을 수 있는 공부에 도전할 차례다. '헬로카봇'의 차탄 엄마 전다혜 씨가 왜 자격증이 500개나 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엄마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다.
재능발견, 동화구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그림책에 관심이 많다. 책을 읽는 엄마든, 안 읽는 엄마든 아이를 위해 책을 많이 읽어주려고 노력하게 된다. 나부터 독서를 시작하고 책이 주는 좋은 느낌과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자연스럽게 책육아에 관심을 가졌다. 독서의 효과를 알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지 못했다. 방법을 몰랐다. 답답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재밌게 읽어주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진천교육도서관 '동화구연지도사' 양성과정 수업에 참여했다. 동화구연 수업에서 다양한 목소리로 책을 생동감 있게 읽는 법을 배웠다. 어렸을 적 TV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성우가 되고 싶었는데 동화구연을 하며 소원을 풀었다. 내가 성우가 된 것처럼 목소리를 바꾸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게 참 재밌었다. 뜻밖의 재능발견!
동화구연에 사용하는 교구 만드는 법과 교구를 활용하는 방법도 배웠다. 이때 만들어둔 교구를 아직도 잘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필요한 교구가 있으면 혼자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난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다.
2학기 동안 동화구연 수업을 들었다. 드디어 그림책을 재밌게 읽어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엄마가 책을 읽어주면 재밌어하며 몰입하는 게 느껴졌다. 뿌듯했다.
교육과정을 마치고 교육도서관에서 수강생들에게 도서관 견학프로그램 봉사를 부탁하셨다. 도서관에 견학 오는 어린이집, 유치원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이었다. 단순히 책만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30분 정도 견학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했다. 하나의 수업처럼 이끌어 가야 하는데 책 읽기 15분 외에 15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했다.
수업은 어떻게 하는 거지? 애들이랑 무슨 대화를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아직 나는 그냥 '엄마'일 뿐인데. 선생님의 역할을 하려니 부담감이 컸다. 진땀을 흘리고 목소리를 달달 떨며 수업을 진행했다. 결국 4번의 수업 후 봉사활동을 그만두었다.
강사활동을 꿈꾸게 된, 책놀이
책을 읽는 건 자신 있었지만 책으로 수업을 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림책 수업은 어떻게 하는 거지?' 고민하던 중 군립도서관의 '책놀이지도사' 과정을 알게 되었다. 책놀이지도사 강의를 통해 그림책 수업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수업목표를 정하고 책과 연관된 활동들을 개발하는 방법을 배웠다. 책놀이 수업을 3학기 동안 들으며, 적어도 30분은 혼자서 채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멘토가 되어주신 우리 스승님을 보며 간접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전래놀이 수업을 함께 참여한 수강생이셨다. 진짜 놀랍고 신기한 만남이었다. 선생님은 전래놀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며 책놀이지도사가 되셨다고 한다. 지금은 새로운 책놀이지도사를 양성하는 강사가 되셨다. 책놀이로 도서관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학교로 수업을 나가시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그리고 나도 책놀이선생님으로 강사로 활동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교육과정을 마치고 군립도서관에서도 도서관 견학프로그램 자원봉사를 제안했다. 지난번 교육도서관 봉사활동은 마지못해 억지로 했다면, 이번엔 자청해서 나섰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제대로 배웠으니 배운 걸 써먹어 보고 싶었다. 여전히 떨리고 걱정도 많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상 '기회가 생겼을 때 용기 내서 도전해.'라고 생각되었다. 또 써먹어야 실력이 늘어난다. 그렇게 군립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지금도 견학프로그램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끼리는 모두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부른다. 이때부터 우리 아이들은 '우리 엄마는 이야기 선생님이에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엄마는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는 줄 알고 있었다. 덕분에 아침 등원준비를 빨리빨리 재촉할 수 있었다. "엄마 도서관 가야 해, 빨리 준비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한국사
진천군립도서관(중앙)에서 다양한 평생학습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면단위로도 지역민의 특색에 맞게 평생학습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내가 사는 면에서도 취미, 교양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마침 역사소설과 역사영화에 푹 빠져있을 때였다. 학창 시절 최애 교과목이 국사였는데, 다시 한국사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주민자치위원회를 하고부터 면사무소를 편하게 자주 들락거렸는데 우리면 평생학습프로그램에서 한국사 수업이 열리는 걸 알고 냉큼 신청했다.
그때쯤 역사 유튜브를 많이 보기도 했고 역사왜곡, 동북공정 문제가 이슈 되던 때였다. 역사공부를 시작하니 알고 있던 사회문제도 다르게 보였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해야 하는 이유라던가, 중국이 왜 김치를 자꾸 '파오차이'라고 우기는지 등. 전쟁이 빈번했던 역사를 보면 '나는 정말 살기 좋은 시대에 태어났구나.'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위대한 사람들은 그 옛날에도 참 남달랐구나.'라고 느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며 나부터 역사공부를 꾸준히 하고 싶었다. 역사공부를 하면서 주변 유물이나 박물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기왕이면 가족나들이로 박물관, 유적지를 찾아다녔다. 작지만 나의 관심이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더 많이 알게 되면 더 많이 보이겠지? 지금도 틈틈이 한국사 책을 읽으며 공부 중이다. 우리 아이들도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평생학습의 동료, 보드게임
평생학습 프로그램으로 '창의수학 보드게임' 수업을 들었다. 책놀이 때처럼 '배워서 우리 아이들에게 써먹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국어만큼 걱정되던 게 수학개념이었다. 보드게임과 교구를 활용하여 수학적 사고와 경험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보드게임을 배우고 온 날은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며 놀았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건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다. 방법을 알아도 놀아주기 힘들었다. 보드게임은 활동량은 적지만 건전했고 다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엄마아빠도 아이들도 즐거웠다. 이때의 보드게임 경험은 이후 보드게임지도사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보드게임은 친목, 놀이, 학습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했다. 배운 건 써먹는다. 써먹으니까 재밌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함께 학습을 했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 하는 맘들끼리 모여 학습동아리를 만들었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도서관, 평생학습센터, 주간보호센터로 바쁘게 봉사활동을 다녔다. 일주일에 1시간 봉사를 위해 우리는 3일씩 모였다. 돈은 못 벌어도 재밌었다. 다 함께 으쌰으쌰 하니까 단합도 잘 되고 소속감도 느껴졌다. 봉사경험이 쌓이면 나만의 창의수학, 보드게임 수업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다.
이때 모였던 동아리 선생님들 중 지금까지 함께 강사활동에 도전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나에게도 든든한 동료가 생겼다. 때론 각자의 위치에서, 때로는 함께 활동하며 서로 의지하고 응원했다. 마음 맞는 선생님들이 있어서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 교육청 행복교육지구사업도 함께 도전할 수 있었다.
활동가로 성장, 강사양성과정
평생학습프로그램에는 지역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강사양성과정이 자주 열린다. 앞서 활동들을 통해 나만의 수업을 만들어 보고 싶었고 '안전교육지도사' 양성과정과 '이상설' 강사양성과정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강사양성과정을 통해 양성된 수강생들은 지역의 '활동가'로 불린다. 평생학습프로그램이 활동가들을 양성하는 이유. 우리 지역에 필요한 인재를 외부에서 데려오지 않고, 지역의 문제 해소를 위해 지역민을 교육시켜 강사로 양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역 활동가들은 학습동아리 활동을 통해 봉사활동을 하며 경험을 쌓는다. 선배활동가의 경험을 배울 수도 있고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들과 새로운 도전을 함께할 수도 있다. 봉사활동을 통해 강의하는 법을 연습할 수 있다. 우리 지역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도전에 활력을 준다.
경험을 쌓은 활동가들은 본격적으로 강사활동을 하며 영역을 넓혀 나간다. 공모사업에 참여하여 활동영역을 넓히거나, 개인활동을 통해 강사로 학교나 기관에 채용되기도 한다. 활동가가 강사가 되는 과정은 경험상 2~3년쯤 걸린다. 수업의 기회를 잡지 못하면 많은 돈을 벌진 못 한다. 직업으로 삼기에 불안할 수도 있다. 나도 농사로 안정적인 수익과 남편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 5년 동안 경험을 쌓기로 마음먹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나처럼 수익에 부담이 없다면 자아실현을 위해 주부들이 할 수 있는 도전으로 꽤 괜찮은 활동이다. 재밌게 배우고 배운 걸 써먹으며 직업을 만들고 작지만 수익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의미가 있다. 망설일 시간에 속는 셈 치고 꼭 한 번 도전해보길 바란다.
누군가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젤 먼저 도서관을 찾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수업을 들으며 배우고 사람을 만나자. 그리고 정보력을 키우자. 정보력이 힘이다.
난 진천에 오고부터 맘카페, 군청홈페이지, 교육청홈페이지 등 각 기관별 홈페이지를 매일 살펴본다. 블로그 하면서 가까운 지역 정보도 많이 찾아본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인터넷으로 공지되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 공공기관에 가면 안내공간에 게시물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시내 곳곳 현수막 광고대도 살펴본다. 진천처럼 작은 도시에도 잘 찾아보며 배우고 경험할 곳이 많이 있다. 도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