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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6년, 마음의 여유

벼농사로 돈벌면서 딴짓하는 업글인간

둘째 임신 중 6개월 동안 가장 잘했던 딴짓은 바로 정리수납 배우기였다. 진짜 잘했다! 정리수납을 통해 집이 가벼워지는 변화를 경험했고 마음이 편안해졌고 여유가 생겼다. 물건으로 채워진 집에서 빈 공간을 찾았다. 공간의 여유는 마음의 여유로 마음의 여유는 시간의 여유로 되돌아왔다.



또 다른 딴짓, 정리수납  

집을 대신 치워주는 TV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며 '정리수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였다. 둘째 출산을 3개월 정도 앞두고 여성회관에서 '정리수납자격증' 수업이 있는 걸 알고 냉큼 신청했다. 첫째 육아용품도 감당이 안되는데 둘째 출산용품까지 쌓이면서 우리 방은 포화상태가 되었다. 어머님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우리 부부의 물건 허용범위 우리 방으로 제한해 두었는데 이미 붙박이장 3칸이 가득 차버렸다. 정리가 시급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넘치는 물건을 정리해야만 했다. 이렇게 맘먹고 있던 찰나 정리수납 수업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는 정리였지만 자격증 과정을 들으며 하나씩 해치웠다. 매 차시마다 숙제가 있었다. 수업 중에 배운 부분을 집에 가서 직접 정리하고 선생님께 비포&애프터 사진을 제출하는 것이다. 싫어도 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니 정리는 생각보다 쉬웠다.


어머님을 설득해 필요 없는 물건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버리긴 아깝고 넣어둬도 쓰지 않는 물건들이 참 많았다. 버리고 나누고 팔았다. 덕분에 나는 맘카페에서 나눔글을 많이 올려 열심회원이 되었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나는 아까운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새 주인을 찾아주기 바빴다. 쓸만한 중고물건은 팔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지역은 사람이 많지 않아 중고물건이 잘 팔리지 않는다. 언제 팔리나 기다리는 시간이 답답해 웬만하면 무료로 나눔을 했다.


무료 나눔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진을 찍어 물건을 설명하고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여러 번의 채팅과 덧글을 통해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한다. 그렇게 나눔이 잘 끝나면 개운 할 텐데, 나눔을 하고 고맙다는 인사조차 못 받을 때가 많았고 약속을 잡고 펑크 내는 일도 많았다.


좋은 의도로 나눔을 하고도 에너지만 뺏길 때의 기분은 참 씁쓸했다. 그래서 그냥 버리는 게 속 편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쓰레기를 버릴 때도 돈과 에너지가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정리수납을 배우며 물건을 정리하고 내린 결론은 '사서도 쓰지 않 물건은 애초에 사지 않는 게 최선이다.'였다. 이때 고생한 경험이 나를 '미니멀라이프'에 눈뜨게 한 계기가 되었다.


둘째 출산 직후까지 집을 정리하고 치웠다. 정리 후에 달라진 집을 보니 전투력이 상승했다. '둘째 육아전쟁도 한 번 해보자!' 하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또 한 번 내가 쓸모 있어진 것 같다. 출산 직전까지 정리수납 수업을 들었고 둘째를 출산했다. 출산 후 조리원에 있는 시간은 어쩔 수 없이 결석을 했다. 조리원을 퇴소하자마자 자격증시험에 응시하였고 정리수납 2급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자격증이 있냐 없냐로 정리수납을 할 수 있냐 없냐를 판단할 순 없지만 정말 뿌듯했고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자격증의 힘인가.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노전정리

정리수납을 실천하고 또 한 가지 좋았던 점은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리수납 과정에서 노전정리를 배웠다. 죽을 때를 대비해 미리 삶에 불필요한 짐을 정리하는 걸 말한다.


노전정리의 개념을 배우고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당황스럽고 슬퍼서 정신없을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헤매지 않도록 나와 관련된 것들을 평소에 잘 정리하며 살고 싶어졌다.


노전정리는 꼭 노년세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죽음은 무섭다. 하지만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항상 준비해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는 문장을 참 좋아한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오늘 하루에 감사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살기 원한다.


속상한 일, 화나는 일,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내일 내가 죽는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내일 당장 죽을 판에 오늘 하루의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죽고 나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고민해 본다. 죽음을 앞둔다면 남은 소중한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과 즐겁고 행복한 일과 경험으로 잘 채우고 싶었다. 


할 일을 미루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이다. 할 일을 미뤄서 내일을 저당 잡히기 싫었다. 오늘의 할 일은 오늘 중에 끝내도록 최선을 다 했다. 오늘이 모여 인생이 된다. 이미 하지 못한 일을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도전하고 매일매일 실천하며 살고 싶다. 매일 알차게 사는 삶들이 모인 인생은 얼마나 멋질까. 그 인생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해 본다.



삶이 가벼워지는 중, 미니멀라이프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나누고 배우고 경험하고 성장하는 기분이 좋았다. 삶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배우는 게 많아지자 욕심도 늘어났다. 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최소한의 집안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할 일은 해놓고 나가고 싶었다. 


매일 아침 일찍 수업을 들으러 나가려면 집안일을 부지런히 해야 했다. 집안일을 빨리 끝내려니 집안일을 간결하게 만들어야 했다. 물건을 줄이고 또 줄였다. 집안에 물건이 줄어들 집안일도 줄어들었다. 집안일이 줄어드니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내가 미니멀라이프에 푹 빠지게 된 이유다.


살림이 단출해지자 청소 안 해도 깨끗해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매일 아침 청소는 10분 컷으로 끝냈다. 집안일에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고 집안일에서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집안일보다 더 재밌는 일에 시간을 쓰고 몰입할 수 있었다.


아이 둘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결혼 후 5년 만에 여유시간이 생겼다. 여유시간을 알차게 잘 사용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잘 사용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오늘 하루를 알차게 재밌게 살려고 노력했다.


하루를 재밌게 사니까 하원하고 집에 온 아이들과도 더 잘 지낼 수 있었다. 육아전쟁이 조금은 쉬워진 기분이 들었다. 집안일을 줄이니까 아이들과 있는 시간은 오롯이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나 스스로 집안일도 잘하고 배우는 것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깨가 으쓱해지고 자존감이 쑥쑥 올라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정도다.


의욕이 샘솟으니까 더 욕심이 생겼다. 잠을 줄이면서도 독서도 하고 수세미도 뜨고 공부도 했다. 시간도둑 1번인 TV를 끊었다. 내 마지막 드라마시청이 공유의 '도깨비'다. 시간도둑 2번 핸드폰은 차마 끊지 못했다. 되도록 블로그 글쓰기, 독서 등 생산적인 일에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아침잠이 참 많았는데 매일 아침이 설레고 신나니까 눈이 저절로 떠졌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니까 남편 아침밥도 더 챙기게 되었다. 말로 표현은 못 했지만, 열심히 일하는 남편 덕분에 나는 마음 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고마웠다. 더 바빠졌는데 더 부지런해졌다.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배우며 즐거움을 되찾았다. 이제는 나의 시간을 충실하게 사용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5년 후의 내 미래를 멋지게 준비하고 싶어졌다. 꿈을 꾸게 되니 목표가 생겼다. 더 노력하게 되고 자신감이 상승한다.


유튜브영상 : 미니멀라이프 매일아침 이불정리





내가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하면 진짜 미니멀리스트들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만은 나도 미니멀리스트. 더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하고 싶어서 나는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 작은 행복에도 만족할 수 있는 여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물건과 공간의 여유가 주는 몸과 마음과 생각의 평화로움이 좋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무언가를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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