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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잡러 3년, 블로그로부터 시작

벼농사로 돈벌면서 딴짓하는 업글인간

나는 정보력이 좋은 편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부터 주변 정보에 예민해진 덕분이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이제 15년. 회사 일 때문에 시작했다가 블로깅 재미에 빠져 파워블로거도 꿈꿨다. 블로그가 활성화되면서 각종 이벤트, 체험단에 당첨이 잘 되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진짜 거의 매일 택배가 왔다. 취미생활에서 부수입이 생기자 더 신이 났다.


결혼 후엔 생존신고 겸 블로그에 매일 일기를 썼다. 프리랜서로 블로그마케팅 알바도 잠깐 했다. 시골생활에서 블로그는 내 유일한 '일'이었다. 아이 둘 육아일기도 매일 작성했다. 육아용품 체험단을 열심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블로그가 내 것 같지 않고 광고판이 된 것 같았다. 블로그 활동에 최초로 회의감이 들었다. 독서를 하고부터인 것 같다.


내 이야기와 생각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 없이 블로그를 전면 개편했다. 그때부터 블로그 방문자수는 뚝뚝 떨어지고 조회수도 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저품질에 걸린 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했다. 여전히 내 블로그는 별 볼 일 없다. 방문자도 작고 조회수도 작다. 하지만 내 블로그에는 내 이야기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글쓰기가 두렵지 않게 되었고 광고글과 진짜글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하던 중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15년 취미생활, 블로그

2018년 진천군청에서 블로그 기자단을 모집했다. 진천군SNS서포터즈 1기로 활동을 했다. 진천엔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나 보다. 대부분 타 지역 블로거들이었다. 덕분에 블로그 방문자수가 많지 않았던 나도 뽑힐 수 있었다.


서포터즈(기자단)로 기사를 작성하면 '소정의 원고료'를 받는다. 1년간 짧은 경험이었지만 블로그로 돈을 번 첫 번째 경험이었다. 블로그 경력이 돈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진천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블로그 기자단 1기를 모집했다. 우리 지역 블로그 기자단 모집 기회는 흔치 않기에 냉큼 지원했다. 진천군청 기자단으로 활동한 경력이 도움이 되었다.


블로거보다 지역민을 '기자'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컸던 활동이었다. 기자단 활동에 앞서 기사 작성법, 기사에 넣을 사진 찍는 법을 배웠다. 신문방송학과 4년 동안 배우지 못한 실전기술을 여기서 배웠다. 나는 '기자님'이 되었다.


작성한 기사는 현직 기자님께 피드백을 받았다. 그동안 블로그에 내 멋대로 글을 썼는데, 처음으로 내 글의 잘못된 점을 수정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기사는 센터의 블로그에 등록되었고, 연말에 기사를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이 모든 과정이 쉽진 않았다. 처음 보는 분을 인터뷰하러 약속을 잡고 초면에 인사 나누며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인터뷰기사를 작성했다. 마을취재 같은 경우 이장님과의 인터뷰 후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이야깃거리를 찾아야 했다. 처음이라 더 어렵게 느껴졌지만 기사를 쓰고 내 기사가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는 경험도 나름 멋졌다.


매월 기사를 작성하면 원고료를 받았다. 블로그 활동으로 돈을 벌어서 더 즐거웠다. 블로그 기자단 1기 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좋은 평가를 얻어 2기 활동까지 연임할 수 있었다. 인정받는 기분은 언제나 좋다.



나의 첫 블로그 강의

블로그 기자단 인연으로 블로그 특강 기회도 생겼다. 내 인생 첫 블로그 강의였다. 예전부터 블로그강의를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블로그를 하면 좋은 점, 블로그로 달라지는 경험, 블로그를 운영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방문자도 적고 조회수도 적은 내 블로그는 전문가의 블로그로 보이지 않았다.


1년간 나의 블로그 기자단 활동을 보고 담당자에게 인정을 받았기에 얻을 수 있었던 정말 뜻깊은 기회였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께 '블로그를 부담 없이 시작하는 방법'에 대해 강의했다.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했지만 너무 뿌듯했다. 거기다 강사비까지 받았다. 감개무량하다.


<좋아하는 것을 돈으로 바꾸는 법>의 저자 멘탈리스트 다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것에 돈과 시간을 들여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을 쌓으면 그것이 '일'이 됩니다."


이렇게 블로그 기자단 활동은 나의 새로운 경력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디지털노매드를 꿈꾸며 다양한 블로그 기자단에 도전하고 있다. 기자단활동 경력이 계속 쌓이고 있다. 내가 젤 잘하는 블로그 활동으로 돈도 벌고 경력도 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다.



창업에 도전, 네이버스마트스토어

코로나 19가 등장하고 2020년은 집콕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강사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찰나 코로나로 인해서 모든 것이 취소됐다. 일시정지된 일상이 답답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유튜브를 통해서 다양한 재테크 자기 계발 경제 채널을 만나게 되었고 다양한 궁리를 하게 되었다. 신사임당, 이미경 유튜브 채널을 보며 재택근무, 디지털노마드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블로그 기자단활동도 그런 취지에서 적극적으로 시도하게 되었다.


재테크, 파이어족, 성공 등 주제로 한 책들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부자가 되려면 다양한 수입원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수익을 자동화를 시키는 게 중요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일주일간 망설이다가 도전해보기로 맘먹었다. 일단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가입부터 했다. 그리고 이후 고객센터를 참고하여 등록과정을 조사했다.


핸드폰에 손택스 어플을 설치하고 간이과세자로 사업자등록증을 신청했다.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고 통신판매업 신고 및 발급까지 총 3일이 걸렸다. 비용은 3만 원도 안 들었다. 나는 서류상 '사장님'이 되었다.


쇼핑몰을 오픈하고 나니 판매할 물건이 없었다. 어떤 물건을 어떻게 팔아야 할까 공부를 했다. 중간유통판매업체를 찾아 쇼핑몰과 연동시켰다. 여기까지 딱히 어려울 건 없었지만 처음 해보는 일이라 실수가 많았다. 실수를 통해 배우며 조금씩 수정해 나갔다.


소득신고를 하고 (이것도 적성에 안 맞아) 정산을 해야 했다. 복잡하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냐만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직접 해보니 확실히 알겠다. 쇼핑몰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리고 나는 서비스업이 안 맞는다. 한 달에 10만 원 정도 순수익이 났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2배로 늘었다.


주문이 들어올까 봐 무서웠다. 10달 정도 쇼핑몰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 한 달에 10만 원을 못 벌더라도 적성에 맞지 않는 쇼핑몰 운영을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전 안 해봤다면 유튜브를 볼 때마다 '누구는 쇼핑몰로 돈 많이 벌었다던데.' 하며 부러워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쇼핑몰을 닫아두었다.


몇 달 후 건강보험공단에서 우편물이 왔다. 1년간 순수익이 100만 원이 넘어 내년부터 남편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 예정이라고 한다. 자격유지를 원하면 폐업신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운영 자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개인 건강보험료를 낼만큼 소득이 많지 않아서 결국 폐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내 돈을 잃지 않고 오히려 100만 원 벌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걸로 대만족!!



경험이 연결되어 일자리창출

블로그 기자단을 인연으로 진천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진천읍 도시재생대학'에 2학기 동안 참여했다. 도시재생대학은 도시재생에 대해 배우고 도시재생이 진행될 우리 지역의 문제점과 개선할 사항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도시재생사업이 본격 진행되기 전,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주민공모사업'이 열린다. 도시재생대학에서는 주민공모사업에 참여하는 방법, 사업계획서 쓰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공모사업이 진행되면 각 사업들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할 코디네이터 활동가가 필요했다. 센터에서 나에게 활동가로 함께 일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기자단 경험이 센터와 연결되면서 나에게 일자리 제안으로 돌아왔다. 활동한 시간만큼 시급으로 돈을 받는 일이었다. 정말 좋은 기회였다.


블로그 기자단 활동을 하며 센터와 소통이 편했고, 공모사업에 참여하는 팀들 중에 평생학습 수업에서 만난 선생님들이 계셔서 소통이 유리했다.


경험이 연결되고 연결되어 일거리가 만들어졌고 수익이 생겼다. 살림, 육아에 방해받지 않을 만큼만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몇 개월만 일하는 단기계약이었지만 아이 낳고 처음으로 큰돈을 벌어 뿌듯했다.


평생학습 활동가들은 일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공모사업은 활동가들이 직접 일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보드게임 동아리 활동을 함께했던 선생님들에게 공모사업 참여를 강력히 권했다. 도시재생대학에서 배운 사업계획서 작성법을 활용하여 동아리 선생님들과 첫 공모사업 사업계획서도 작성해 보았다. 그리고 운 좋게 보드게임 동아리 사업이 선정되었다. 돈만큼이나 값진 경험을 만든 좋은 기회였다.


도시재생 공모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청 공모사업에도 도전했다. 두 번째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작성방법은 도시재생대학에서 배웠고, 글쓰기는 오랜 블로그 활동과 기자단 활동으로 자신 있었다. 두 번째 공모사업 도전에도 성공했다. 나의 쓸모가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후계농업경영인

나는 농업인이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을 따라 벼농사를 짓는 중이다. 농사를 짓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토지'이다. 땅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다.


땅을 구하는 방법. 첫째, 땅을 산다. 현금이 없으면 대출로 산다. 둘째, 땅을 빌린다. 아는 사람끼리 개인적으로 임대계약을 할 수도 있고, 한국농어촌진흥공사의 농지은행에서 농지를 구한다.


농지은행에서 농지를 임대할 때, 신청자가 여러 명일 경우 우선순위에 따라 선발한다. (1순위 청년창업형 후계농업경영인, 2순위 2030세대, 3순위 후계농업경영인) 나는 2030세대 여성농업인에 속한다. 청년창업농인 농민수가 많지 않아 대부분 2030세대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덕분에 임대토지를 많이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30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만 나이로 쳐도 몇 년 안 남았다. 2030세대에서 밀려나면 임대토지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몇 년 뒤 계약이 끝나는 임대건도 있고, 앞으로 추가 임대계약이 어려울 것을 감안해야 했다. 여유자금이 생기면 토지매입부터 조금씩 준비해야 평균 농사량을 유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2021년 12월, 어떻게 논을 살까 고민하던 중 '2022년 후계농업경영인'을 뽑는다는 공지를 보았다.


후계농업경영인은 50세 미만의 농업인 중 농사경력 10년 이하인 농업인만 신청할 수 있다. 후계농업경영인으로 선정이 되면 최대 3억의 자금을 연금리 2%로 대출받을 수 있다. 농지확보가 중요한 벼농사에서 농지구입비용은 물론 농기계구입, 농업시설 구축 등에 사용할 수 있다. 2022년에 나의 농사경력은 10년 차가 된다. 후계농업경영인에 도전할 기회가 2022년, 2023년 단 2번뿐이다.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역대 신청자수를 물어보니 생각보다 경쟁이 치열했다. 준비할 서류도 많았는데 아무것도 몰라서 더 막막했다. 면사무소 산업개발팀 담당자를 찾아갔다. "후계농 신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모르면 물어보는 게 최고다.


필요한 서류에 대해 안내를 받았고 사업계획서 작성 요령에 대해서도 팁을 얻었다. 벼농사는 하우스농사에 비해 사업계획서로 작성할 내용이 별로 없다. 판매경로도 한정적이고 시설이나 농법이라고 할 것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별거 없는 것도 있어 보이게 써야만 사업계획서는 눈에 띈다.


평소 농사일을 할 때마다 일정표를 작성해둔 게 있어서 농업일지 삼아 첨부했다. 월급가계부와 농사가계부를 따로 작성하고 있어서 농사 관련 장부작성도 순조로웠다. 판로는 방앗간 직접판매와 정부수매로 정해져 있어서 딱히 추가할 내용이 없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이것저것 시도했던 농법(?)들을 잘 포장하여 소개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농법들을 조사하여 계획을 세웠다.


후계농 신청은 처음이었지만 사업계획서 작성은 이번이 3번째다. 도시재생대학에서 배운 사업계획서 작성법과 공모사업에 참여하며 작성한 사업계획서 덕분에 요령이 조금 생겼다. 쓸수록 좀 더 잘 쓰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해. 난 또 배운 걸 잘 써먹었다. 기특하다 나 자신.


그리고 2022년 후계농업경영인으로 진천군 전체에서 9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난생처음 내 이름으로 땅을 샀다. "여보, 봤지? 나 3억이나 융통할 수 있는 사람이야!" 오랜만에 큰소리를 빵빵 쳐봤다.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통해 삶에 큰 변화를 느끼며 즐겁게 살고 있다. 나의 본캐는 아내이자 엄마겠지만, 나는 부캐도 참 많다. 블로거, 기자, 강사, 잠깐 사업가, 활동가, 농업인으로 나는 멀티페르소나를 갖고 살아간다.


때론 고민도 많았다. 한 가지 특출 난 게 없어서 이것저것 도전만 해보고 끝나는 건 아닐까? 수박 겉핥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게 경력이 되긴 할까? 경력 쌓기 5년이 끝나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직도 고민의 답을 찾고 있는 중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도전들이 있었기에 내가 책 쓰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 쓸 이야기가 없었다면 책 쓸 엄두도 못 냈을 텐데. 나의 지나온 10년이 이렇게 다채로웠기에 지금 나는 잠을 포기하고 책을 쓰고 있다. 12월 31일까지 책 쓰기 도전에 성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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