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강사 2년, 활동가에서 선생님으로

벼농사로 돈벌면서 딴짓하는 업글인간

나는 주부고, 아들 둘 육아맘이고, 주말엔 남편과 논으로 쫓아다니는 농업인이다. 농사로 번 돈, 남편의 월급으로도 생활이 가능하지만 용기 있는 나는 남는 시간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열심히 딴짓을 했더니 배움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없는 평일 낮동안 나는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배운 걸로 경험을 쌓았다. 경험이 쌓이니 돈 벌 기회도 생겼다. 마침내 아주 작지만 선물 같은 돈을 벌었다. 고3 수능시험을 끝내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11월이 생각난다. 시급 1900원도 감사해하며 한 달 동안 일해서 받은 월급이 무척 뿌듯했던 기억. 


아직 나는 5년 단위 인생계획의 '경력 쌓기' 중이다. 남편은 "돈 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놀아!"라고 말하지만, 가만히 있기엔 이미 늦었다. 나도 혼자 힘으로 돈 벌어서 애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고, 친정에 필요한 거 있으면 사드리고 싶다. 친한 사람들에게 밥도 사고 커피도 사주고 싶다. 재테크도 하고 싶고, 부자가 되는 꿈을 꾸고 싶다고!!



선생님이란 호칭

내가 진천에서 만나는 사람 중 대부분이 나를 '지나쌤'이라고 부른다. 2019년부터 나는 '쌤'이 됐다.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서로 '쌤'이란 호칭으로 부른다. 여기서 '쌤'은 '선생님'의 줄임말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식당에 가면 직원 아무나에게 '사장님'하고 부르는 거나, 엄마 친구 아주머니들은 모두 '이모'라고 부르거나, 어린이집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어머님, 아버님' 하고 부르는 느낌이다. 선생님은 아니지만 우린 서로를 '쌤'이라고 부른다. 내가 만난 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던 쌤은 80대셨고, 가장 나이가 어렸던 쌤은 20대 초반이었다. 쌤이란 호칭은 나이와 상관없이 평등하게 부를 수 있는 좋은 호칭이다. 



활동가에서 강사로

도서관 쌤들은 자격증 취득과정이나 강사 양성과정을 통해 지역 활동가가 될 수 있다. 수업이 끝나면 평생학습관에서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학습동아리 결성을 장려한다. 평생학습관은 다양한 학습동아리들을 양성하고 결성된 학습동아리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재능기부(봉사활동)를 적극적으로 독려한다. 이때부터 수강생들은 활동가가 된다.


활동가는 재능기부를 통해 강의경험을 쌓는다. 초보라 수업이 서툴러도 봉사라서 이해받고 연습할 수 있는 기회이다. 기관에서 인정할 만큼의 경력이 쌓이면 평생학습관 프로그램에 강사로 활동할 수 있다. 육아맘들이 아이를 키우며 자기 계발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경험을 쌓기에 참 좋다. 시간과 돈에 제약이 없다면 무료로 배우고 경험도 쌓을 참 좋은 기회이다.


강사비를 받으며 수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강사로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기 위해서 학교나 돌봄 센터, 공공기관 등에 강사로 채용이 되거나, 직접 프로그램 제안서를 제출하여 나만의 수업을 확보해야만 한다. 쉽게 말해 경험을 쌓았으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 알아서 취업하듯 이력서도 내고 영업을 뛰어야 한다.


여기에서 대부분이 고비를 느낀다. 돈을 벌기 위해 제대로 된 취업을 하거나 힘들어서 포기하고 살림에 전념하는 쌤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남편 덕분에 돈 벌 걱정 안 하고 경험 쌓기에 주력하며 취미생활처럼 버텼기에 활동가에서 강사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찾아왔다. 강사로 도전할 기회가 왔는데 수업들이 다 취소되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잠잠해지기 시작한 2021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강사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수업이 많지 않지만 코로나 상황을 겪고 나니 모든 것이 감사했다. 강사비를 받으며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그렇게 학교로 찾아가는 수업을 시작했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쌤에서 선생님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쑥스럽지만 기분은 좋다.



교육청 학습지원단

활동가 및 강사로 수업한 경험들이 쌓여 경력이 되었다. 경력이 생기자 또 다른 기회가 왔다. 진천군교육지원청에서 처음으로 학습지원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발견했다. 학습지원단은 도움이 필요한 학교에 파견되어 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았다. 이력서에 그동안의 경력, 자격증, 활동내역을 빽빽하게 채웠다.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진땀 흘리며 압박면접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당당히 진천학습지원단 1기로 선정되었다. 진짜 학교로 찾아가는 '선생님'이 되었다.


이제까지의 수업은 특정 주제에 대해 서론 본론 결론으로 정해진 시간 동안 알려주는 게 목표였다. 같은 수업을 여러 곳에서 반복하는 수업이라 하면 할수록 수업이 쉬워진다. 반면 학습지원단은 학습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맞춤 지원을 해야만 했다. 한 학기 동안 진도를 짜서 부족한 학습을 채워주고 다양한 놀이활동을 통해 자신감과 집중력을 높이는 수업을 했다. 매주 다른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의 학습태도나 수업반응을 살피고 관찰했다. 이를 바탕으로 또 다음 주 수업을 준비한다. 처음 도전하는 수업방식이라 적응하고 익숙해질 때까지 쉽지 않았다. 


학습지원단 덕분에 2022년은 무척 활기찼다. 1년 계약직이지만 고정적으로 일주일에 3일씩 수업을 나가니 안정적인 수입이 생겼다. 주 10시간 정도 근로라 육아와 살림, 농사일에 부담 없이 일할 수 있었다. 첫 몇 달간은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도 받고 힘들었지만 이 또한 경험하고 넘어가야 하는 성장단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교교육을 직접 경험해볼 기회였다. 교육청의 행정시스템을 경험해볼 수 있었고 학교에서 활동하며 초등학교 수업분위기와 학교생활을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놀이선생님으로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보니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고충을 많이 보고 느꼈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수고를 이해할 수 있었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학습 지원단이 되고 매주 초등학교를 방문하며 담임교사 선생님들의 노력과 고충이 보였다. 학부모로서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더 잘 보였다. 학교에서 이런 걸 배우구나. 학교생활에서 이런 점은 어렵구나. 집에서 이런 점을 보충해줘야겠구나 등등. 학습지원단 경험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학습지원단을 마치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제껏 활동가로 선생님으로 유아어린이, 초등학생까지 만나보았으니 기회가 되면 중학생, 고등학생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사춘기 학부모가 되기 앞서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만나보고 싶어졌다. 





얼마 전 2023년 학습지원단을 새롭게 모집했다. 1년 계약직이기 때문에 해마다 새롭게 신청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선정되지 못했다. '한번 해봤으니까' 하는 마음에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1년간 활동을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 낙담하기도 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나? 다른 사람들보다 부족한 점은 뭐였을까? 불합격 발표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날 밤 마음을 바꿨다.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지원했나 보지. 그리고 내년엔 더 좋은 기회가 오려는 게 분명해!' 아직 마음은 옹졸하지만 마치 대인배인 것처럼 쿨한 척 이겨내 본다. 괜찮아, 좋은 경험 했잖아.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책 쓰기부터 끝내는 거야!

          


이전 10화 N잡러 3년, 블로그로부터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