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요즘 뭐 하면서 지내?’라는 질문에, ‘열심히 달리고 있어.’라고 대답하고 있다. 복학 전까지 본가에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어찌어찌 마라톤을 신청하여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42km 마라톤이 아닌 10km 마라톤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10km는 그리 어려운 거리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꽤 큰 도전이었다. 1시간 정도를 일정한 페이스로 달려야 하는 10km 마라톤은 살면서 3km 체력검정을 제외하고 장거리 레이스를 해본 적 없는 나에게 쉽지 않은 거리였다.
처음에는 3km 정도를 뛰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니, 3km도 이렇게 힘든데 10km는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앞섰고 10km라는 목표가 그저 멀게만 느껴졌다. 동시에, 42km를 달리는 마라토너분들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이 생겼다.(이는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은 더 달렸다. 유튜브로 달리기 관련 강의도 보고 아버지의 후원에 의해 러닝화도 구매했다. 계속 달렸고, 지금은 3km가 별로 힘들지 않다. 보통 격일로 뛰고 있는데(헬스도 병행하고 있으므로), 달릴 때 7km를 달린다. 1km당 6분 페이스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라톤을 준비하며 읽은 책이다. 마라톤을 준비한다고 하기에 낯 뜨겁지만, 같은 종목에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정도는 엄청난 차이겠지만) 더불어, 하루키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도 반영되었다. 아직 초보이지만, 책을 읽으며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고통스럽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스포츠에 있어서는 전제 조건과 같은 것이다.“(p.255) 말할 것도 없이, 달리는 것은 힘들다. 그렇지만, 그것은 당연하다. 모든 것은 이와 같은 흐름일지도 모른다. 고통은 목표, 사랑, 인생, 창작 등의 전제 조건과 같은 것이다.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혹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한정해서 바라본다는 것과 다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시간을 들이는 것이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된다.”(p.244) 마라톤을 준비할 때, 지름길은 없다. 10km를 달리지 않고 10km 목표선을 통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0km를 달리기 위해서는 당연한 수순으로 5, 7km를 달려야 한다. 종종 요령이나 편법부터 찾는 나에게, 반성이 되는 말이었다.(물론, 때에 따라 꾀가 중요할 수 있지만)
유튜브로 달리기 강의를 들을 때, 절대 남의 페이스에 말리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출발할 때, 초보자들은 다른 러너의 페이스에 말리기 쉽다고 한다. 오버 페이스로 시작하거나 자신의 페이스에 맞지 않는 호흡을 유지하면 본래의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고 만족할 결과도 얻기 힘들다. 그렇기에, 남들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를 밀고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경쟁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는 “추월을 당하는 것에는 아마도 길들여져 있지 않을 것이다.”(p.143) 그렇지만, 보내줄 사람은 보내주고 추월할 사람은 추월하며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치는 것이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하다. 삶 역시 마찬가지다.
“레이스에서 특정한 누군가에게 이기든 지든 그런 것은 러너에게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p.25). 선수나 특정 목적이 없는 한에서, 레이스의 목표는 나에 의해 세워진다. 또한, 경쟁 역시 과거의 나와 이뤄진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신만의 페이스, 마라톤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불과 한 달전까지만 해도, 내가 10km가량을 달릴 줄은 몰랐다. 멀게만 느껴지던 그 거리가 지금은 가깝게 느껴진다. 종종, 지금의 이 상태가 신기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성장’했다는 기분도 든다. 역시 뭐라도 도전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돌이켜보면, 많은 것이 그러하다.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내가 지금은 띄엄띄엄 원서를 읽고, 바벨도 들기 힘들어했던 내가 지금은 고중량에 도전하고 있다.
“내일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그것은 내일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p.162)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문장이다. 지금의 내가 불가능이라고 여기는 것이, 그것에 계속해서 정진하다 보면 언젠가 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일단은, 그냥 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실패하거나 방황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에도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왜냐면 내일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해보자, 이것이 요즘 달리면서 내가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는 문장이다.
다음 주가 10km 마라톤이 있는 날이다. 가을이나 내년 봄에는 하프 마라톤에 신청해 볼까 고민 중이다. 지금은 20km가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만, 언젠가 도전을 거듭하다 보면 ‘충분히 달릴만하다.’라고 생각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당장 이번 주의 마라톤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고, 다음의 마라톤에서 완주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할 말은 해당 책에서 나왔던 문장과 같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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