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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혁 Apr 26. 2023

나 달리기 좋아하네…? (3)

역시 운동은 장비빨!

KK 그리고 N군과 마라톤을 하기로 한 날, 집에 와서 마라톤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나의 마라톤 도전을 듣고, 가장 놀랐고 좋아한 사람은 바로 아빠였다. 왜냐하면 아빠의 취미 역시 마라톤이었기 때문이다. 앞의 문장이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의 아빠는 마라톤과 거리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큰 심장 수술을 여러 번 겪으신 아빠는 현재 오래 달리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마라톤을 도전하려는 모습을 본 아빠는 어떤 기시감과 추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마라톤을 처음 시작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아빠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에, 가족끼리 마라톤 대회에 가서 결승점을 통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본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마라톤을 하였던 아빠, 그리고 지금 마라톤을 하려는 나. 이러한 구도가 주자들이 바통을 넘겨받는다던가, 어떤 세대교체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뭉클하기도 했다.


 여하튼, 아빠는 마라톤을 하려면 반드시 신발이 있어야 한다며 조만간 당신과 함께 신발을 사러 가자고 했다. 아니, 이게 웬 떡이람. 나는 냉큼 알겠다고 대답했고 서둘러 날짜를 잡았다. 신발값은 그날 아빠와 늦게까지 술을 기울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사흘 후, 아빠와 함께 운동품 매장을 가서 이것저것 신어보고 제일 마음에 드는 신발로 구매했다. 그날 아빠는 마라톤 할 때 함께 입으라면 운동복 상의와 반바지도 함께 사주었다.  그날 저녁에, 새로 산 신발과 옷을 입고 뛰어봤는데 여태껏 뛰었던 중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경신했다. 역시 ‘운동은 장비빨’이다…


 나는 ‘운동은 장비빨’을 굉장히 믿는 편인데, ‘무엇을 하기 위한 어떤 최상의 상태가 있다.’라고 믿는 사람이라고 풀어 말할 수 있겠다. 그 최상의 상태는 객관적일 수도, 주관적일 수도 있다. 최근 어떤 방송인이 ‘이 조명, 온도, 습도‘라고 말한 것이 밈이 되었다. 그 순간이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지만, 오글거린다는 느낌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저 말에 깊은 공감을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난 책을 읽을 때 너무 밝지 않은 조명을 선호하고 책에 맞는 음악을 골라 틀어놓는다. 또, 기록을 위해 수첩과 펜을 옆에 두고 핸드크림이나 음료 역시 가까이 둔다. 이러한 환경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앞의 조건이 만족되면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다. 또, 책에 더욱 몰입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처음의 문장과 같은 맥으로, 독서를 하기 위한 나만의 최상의 상태가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시를 든다면, 작년에 제일 기억에 남는 추억을 꼽자면 친구들과의 여행 중, 야외에서 노래를 들으며 고기를 먹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아직 선연한 것은 ‘조명, 온도, 습도’가 완벽했기 때문이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저녁, 후끈한 열기가 아직 남아있지만 바람이 불어 선선한 날씨, 적당한 습도. 그리고 흘러나오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 그 모든 것이 조화로웠기 때문에, 이토록 생생하게 그때를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은 그 순간만을 위한 최상의 상태였던 것이다.

 

 어쩌면 이번의 신발과 옷 역시 비슷한 맥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사준 신발을 신고 옷을 입고 달리는 것. 실제 제품이 좋아 가볍게 뛰었던 것일 수도, 아니면 마음이 들떠 기록이 단축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마라톤을 위한 어떤 최상의 상태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이 신발, 옷’이 나의 마라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나의 마라톤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고 응원해 주는 아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최근, 5Km를 달리는 일도 그리 힘들지 않다. 5Km를 완주하고도, 피로도가 그리 크지 않아 다음날도 비슷한 페이스로 달릴 수 있다. 과거에는 3km도 힘들었는데, 지금의 상태를 보면 확실히 실력이나 체력이 늘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버거웠던 거리가 지금은 만만하게 느껴진다. 꾸준함과 도전의 가치를 깊이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언젠가 10Km도 웃으면서 뛰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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