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칼 Jan 25. 2024

 강릉 여행기

내 맘대로 다녀온. 

굳이 강릉에 갈 이유는 없다. 속초도 있고, 양양도 있고, 흔한 제주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강릉에 다녀왔다. 적당한 핑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역을 앞둔 작은 아이의 말년 휴가 일정 때문이다. 평소 군에서 업무가 바빠 (이해가 잘 안 되지만) 휴가를 쓰지 못했다 한다. 전역 전에는 무조건 다 써야 한다고. 사회인처럼 수당으로 대체할 수도 없으니, 그래서 벌어지는 해프닝은 저녁에 귀대하여 다음날 일찍 다시 휴가를 나오는 것이다. "잠만 자고 나오는데도 그렇게 해야 하나?", "부대 방침이 그러니까요.", '까라면 까야한다'는 그곳에서 아무리 '짬밥' 가장 높은 말년 병장이라도 그러라면 그리해야지. 



그렇게 들낙거리는 휴가 일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일정 속에서 일요일 귀대, 월요인 귀사를 발견한 순간, 



"우리도 가자!"



부대 앞의 펜션을 평일 요금으로 예약하고, 일정을 다른 가족들에게 통보한다. 작은 방은 모두 예약 마감이라니. 큰 방을 예약한다. 같이 갈 수밖에 없다. 대학 입학 전, 무료한 생활을 하는 막내는 무조건, 휴가를 내야 하는 남편도 동행을 권한다. 



"주말에 번잡한 것 싫잖아. 날도 적당하고, 일박이니 부담도 안되고, 좋잖아!" 굳이 군인을 데리고 가서 데려와야 하냐는 일차원적인 남편의 질문에 굳이 답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라도 강원도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헤아려 줄법도 한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 집 유일한 여성의 발언은 사실 권위가 있는 편이다. "엄마가 가자고 하니, 가자, 가야지."



그래서 내 맘대로 다녀온 강릉이 되었다. 



"가 볼만한 데 미리 알아볼까? 오랜만에 경포? 선교장? 유명한 절도 있을 텐데..." 이것저것 검색을 시작하는 남편. "그럴 시간은 안될걸요. 도착하면 오후, 다음날은 오전에 출발해야 하니까." 



그렇게 금방 다녀오는 것은 남편의 기준에 맞지 않다. 비싼 숙박비를 지불하고 고작, 만 하루도 머물지 않다니, 가성비가 꽝인 것이다. 아마 속으로는 생각했겠지. 도대체 왜 가자고 하냐고. 



사실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숙박 취소에 대한 위약금이 발생하는 시점이 되었으니, 가기로 한다. 



"요즘 강릉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뭔지 알아요?"

멀뚱멀뚱 쳐다보는 남편. "커피야!" 



강릉 바닷가에 늘어 선 카페들을 보면 신기하다. 언제 이렇게 많은 커피집이 생겼지 싶다가도, 강릉에서 이젠 가볼 곳이 달라졌다는 신기함과 반가움도 제법 동한다. 그리고 유명한 몇 군데 커피 공장을 떠올리면서, 내심 생각했다.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을 가볼까? 테라로사 본점을 가볼까?'



하지만,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 본점은 휴무일이었고, 테라로사 본점은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을 숙소에 도착해서 알았다는. 그래서 가지 않기로 하고 무안해지려는 순간에. 



"동네 카페가 있을 거야. 대기업표 아닌 오리지널티를 갖고 있는." 



그리고 작은 사랑방에 동네 사람들이 모인 듯한 카페를 발견하였다. 다른 2-3층 건물의 카페는 텅텅 비었는데, 이곳의 테이블은 거의 다 차있다. 물론 테이블 수가 많지 않았지만. 얼른 봐도 동네분들 같은 모습이다. "여기 분들은 정말 커피를 좋아하나 봐! 이 밤에도 이렇게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많잖아?" 그리고, 이 밤에 나도, 우리도 커피를 사서 나온다. 드립백도 기념이라고 몇 개 사면서. 지금 사서 내일 아침에 마실 거라고 한결같이 말하면서 숙소에 돌아왔는데. 



"음! 왜 이리 맛있지!"



한 모금이 두 모금이 되면서 결국 그 밤에 커피 한 잔을 모두 마시고 잤다는. 

정말 다행이었다. 

커피가 맛있어서.  




24시간을 채우지 못한 강릉 여행임에도 다행은 여러 곳에 있었다. 

눈 예보가 있었지만, 우린 눈을 즐길 수 있었고, 

바베큐장 바로 앞의 방이었지만, 아무도 그곳을 사용하지 않아 조용했고,

악평이 있는 식당이었지만, 우리에겐 너무 맛있는 물횟집이었고,

처음 가 본 식당의 아침은 피곤한 속을 달래기에 두배로 충분했고, 

가까운 테라로사에 가서도 나의 통제력이 제대로 발휘되었고, 

밀크 머그컵의 가격이 너무 높아 지름신을 막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억지로 간 듯한 우리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돌아올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었다. 



행운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잡으려 애쓰면 멀어지는 속성을 갖고 있다. 나의 다행을 조심그럽게 모아보자. 아마도 행운이 먼저 찾아오지 않을까? 



https://youtu.be/syzoHD9WeUo?si=v9TY1eTYl6y6ps1O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