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올 것이라.
돌들이 물 위에 떠있다.
더 신기한 것은 돌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것이다.
물이 얼음이기 때문이다.
평소 즐겨 산책하는 천변을 오랜만에 나가 보았다. 춥다고 밖에 나가보려 하지 않으니, 나는 계속 한 겨울 한 복판에 있다. 하지만 정말 추운지 잘 모르고 산다. 지하에서 지하로 움직이고, 높은 온도는 아니어도 늘 훈기가 있는 집에 있으니. 바깥공기의 매서운 차가움은 소식으로만 전해 듣는데.
그러면서도 온갖 아는 척은 다하고 있었다.
"날이 왜 이렇게 추워요?"
"오늘 엄청 춥다니까, 단단히 챙겨라!"
정말 그러한지 피부로 느껴보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부러 나가지는 않았지만, 다소 날이 풀린듯하여 완전 무장을 하고 나서 본다. 큰 도로로 가도 될 일이지만, 언제나처럼 천변을 따라가기로 한다. 역시나 날이 추웠나 보다. 흐르던 물이 얼어있다. 아마 사람들도 궁금했을 것이다. 정말 얼은 것이 맞는지. 그래서 그렇게 돌을 던졌나 보다. 얼음을 깨고 싶기도 했을까? 제법 큰 돌이 있다.
어릴 때 집 앞에는 버려진 나대지가 있었다. 겨울에는 물을 대고 스케이트장으로 만들던 곳, 겨울에는 어김없이 물이 얼었고, 동네에 노천 스케이트장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렴풋한 기억에, 연탄난로에 어묵 같은 간식도 팔았던 것 같다. 날이 무딘 스케이트를 구해서 겨우 타보곤 했던 기억. 지금 그곳에는 상가 주택들이 즐비하다. 이젠 아무도 그곳의 간이 스케이트장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지구가 너무 따뜻하다고 난리다. 하지만, 그 말은 더울 때는 너무 덥고, 추울 때는 너무 춥다는 말이다. 혹은 덥지 않을 때 더워지고, 춥지 않을 때 추워진다는 말과 같다. 익히 우리가 알던 기후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혀 얼 것 같지 않았던 동네 하천이 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말 신기해한다. 돌을 저렇게나 많이 던져볼 정도로. 이젠 서울의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면서.
하지만, 그래도 다시 기온이 올라가는 겨울날이 있다. 삼한사온이라는 겨울의 특성이 약해졌다 해도 계속 춥지는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얼음이 녹아 돌이 아닌 오리가 헤엄치고 있는 곳이 있다. 다른 곳보다 해가 잘 비치는 곳이다. 한쪽은 얼음에 접해 있지만. 어디에 선가는 얼음이 녹고 있다. 곧 본모습을 회복할 것이다.
자연이 본래의 모습을 찾아 주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 모습을 잃고 난 후에야 알게 된다. 얼음으로 변했지만, 그 밑으로는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겨울 추위가 거세어 물이 얼었어도, 겨울을 버티기 위해 분투하는 그곳의 생물들이 있다. 그 생물들의 분투가 얼음을 녹이고 있는지도.
아직 겨울이 한창이다.
하지만, 어제의 거센 겨울은 아닐 것이다.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변화가 멈추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 나의 다행을 전한다. 변해 주어 감사하다고, 버텨주어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