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를 올리고
몇 번의 비가 오가더니 하루 공기가 달라졌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진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한낮의 태양도 그리 뜨겁지 않으니 굳게 내려졌던 블라인드를 올린다. 거실 한 켠에 해가 들어온다. 반갑게 맞은 계절이다.
남향집은 여름에 해가 짧고 겨울에 해가 길다. 지난여름의 최대 과제는 해를 피하는 것이었다. 햇빛을 최대한 막아내는 것이었다. 짧게 들어오는 햇빛에도 더운 열기는 결코 짧지 않았기에.
주말 오전에 집에 있는 남편은 모든 창문을 활짝 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면서 환기도 된다며, 일견 동의하는 면도 있지만, 잠시의 틈을 두고 얼른 닫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이렇게 들어오는 바람이 더 덥다며. 모르는 소리라고. 올여름은 그렇지 않다고. 해를 막아야 한다고.
용케도 여름이 갔다. 늦게까지 더워 좀처럼 해와 친해지지 않으니 답답했는데, 어느 순간 해가 부드러워졌다. 이제는 해를 들여도 되겠다. 해 맞을 준비에 부산하다. 밀린 청소를 하고, 갑자기 신발도 다 꺼내 빨았다. 줄기가 상해 가는 화분을 해체해서 물꽂이도 했다. 한 줌 해를 들이는 것이 이리 부산스러울 일인가.
그런 것들이 있다. 아무리 절망하려야 절망할 수 없는 것들. 오히려 내 절망을 고요히 멈추게 하며, 생생히 찰랑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열어 보여주는 것들 _<내 이름은 태양꽃>, 한 강
해가 길어지고 있다.
절망하지 않고 다시 들이는 해에게 오늘의 절망을 맡겨보자.
지금 이 순간이 빛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