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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기록

母傳女傳

모전여전

by 부키

"너도 네 엄마 닮아서 꽃을 좋아하는구나?"


꽃을 좋아하는 것이 엄마를 닮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무튼 꽃을 좋아합니다. 그러고 보니, 동생도 꽃을 좋아해요. 물려받은 기질인 듯합니다. 불현듯 들려오는 내 목소리에서 엄마의 그것이 들려요. '뭐야.. 엄마 목소리랑 똑같은데?' 나이가 들어가는 나의 모습도 엄마를 닮았을까요.


모전여전 : 딸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 따위가 어머니부터 대물림된 것처럼 같거나 비슷함



딸은 엄마를 닮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면서 기질이 만들어지니까요. 부모와 한 집에서 같은 환경에서 지내고, 부모를 본받아 자란 사람이라면 당연히 딸의 모습에서는 엄마의 모습이 보일 겁니다. 하지만, 가끔 놀랄 때가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지점에서 확인하게 되거든요.



물론, 아들에게서는 아빠가 보여요. 나란히 누워 자는 부자를 보면 잠자는 자세가 똑같아 웃음이 나오거든요. "누가 그 아버지에 아들 아니랄까 봐 자는 모습도 똑같네?" 식성, 체질도 반반 나누어 갖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아빠를 닮던가, 엄마를 닮던가, 유독 닮은 자식이 있긴 합니다. 그렇더라도 모두의 아들에는 아빠가 보일 겁니다. 유전과 환경은 그만큼 막강하거든요.



지난 주말에는 오랜 친구 어머님의 문상을 다녀왔어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어요. 대학 동기들이라 워낙 오랜 된 사이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 경조사 같은 이벤트가 생겨야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에요. 예전에는 함께 공부하며 지낸 절친들이었는데요. 지금은 사는 곳도 글로벌하고, 하는 일도 다양해서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조사, 특히 조사인 경우에는 꼭 챙기려 해요. 모일 수 있는 기회거든요.



외국에 거주하는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오랜 기간 치매를 앓아오신 분이라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부모를 잃는 슬픔은 준비가 되지 않아요. 수척한 얼굴의 친구와 대비되는 어머님의 영정 사진,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친구의 모습이 보였어요. 미처 준비하지 못해 오래전에 찍은 사진이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내 친구의 나이와 그리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을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안부를 전하는 이야기가 오가고, 대화가 무르익어 가면 아이들에 대한 안부를 묻게 돼요. 대학에 진학 한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게 중에는 고등학생인 경우도 있고요. 아직 공부해야 하는 나이들이라 그 시절 우리의 이야기와 겹치며 오랜만에 회포를 풉니다.



"우리 딸이 워라는 줄 아냐?"

"나중에 무의촌 같은 데서 일하고 싶단다."



외국에서 사는 상주인 친구의 딸입니다. 치과대학을 다니고 있어요. 이젠 졸업이 얼마 안 남았더라고요. 진로를 고민하며 엄마에게 의논했을 거예요. 작게 시작한 고민이지만, 깊이가 날로 커진 느낌입니다. 의사로서 안정적인 직장보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딸의 이야기를 전해요.



"그래서? 뭐라 했어?"

"그러라 했지."

"그럴 것 같네. 너랑 똑같잖아! 누구 딸 아니랄까 봐"



맞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엄마를 많이 닮았습니다. 그 친구의 딸은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딸의 이야기를 전하지만 오래전 우리 친구의 모습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딸에게서 엄마를 보았죠.




그리고 다른 친구가 고등학생 딸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학원에 이제 보내봤거든. 국, 영, 수"

"이제? 고2 올라가잖아?"

"전에는 간다고 하지 않아서, 근데 이젠 다녀보겠다 해서 보냈지."

"잘 다니냐?"

"아니, 국어만 다니고 나머지는 혼자 하겠다네. 스타일이 안 맞는다나 뭐라나... 내 공부가 안된다고."

"그럼 지금은 국어만 다니겠네? 그러라 했지?"

"그렇지, 알아서 하겠지."



당연힌 답을 들은 듯 우리는 놀라지도 않았어요.

"엄마를 보며 자란 공부 환경이 있을 텐데, 그렇게 물량 공세 학원에는 못 다니지." 가끔 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 그 친구도 그랬다는 것이 기억나요. 하지만, 본인은 잘 모르는 듯합니다. "애가 너무 윤리적이라고 담임이 그러신다.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데, 곧이곧대로 정정하고 지킨다고,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하지만, 그 친구가 그랬거든요. 그때는 고지식하다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윤리의식이 높은 거였어요. 그 딸도 그러하더라고요.


아들만 키우는 엄마들은 사실 그 정도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겉모습에서야 비슷한 면을 찾을수도 있겠지요. 눈이 닮았을 수도 있고요. 귀가 닮았다고는 하더라고요. 하지만, 기질이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는 아들이 있어요. 하지만, 딸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애초에 정해진 성 정체성의 차이가 큰 몫을 하겠지요.



그리고 생각합니다.

딸을 보면서 엄마를 알게 되고, 엄마를 보면 그 딸을 알게 되겠다고요.

물론, 아들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엄마, 아빠들,

잘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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