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사람이 되기까지

by 부키

김영하 작가는 젊은 시절 삶의 목표가 ‘유능과 교양’이었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잘한다는 유능한 사람,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교양을 쌓은 사람. 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기 시작할 때의 솔직한 마음과도 통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듯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유능과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는 타인과 연결되길 바랐다. 나의 문장을 건네보고,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독서 모임을 시작하였다. 내가 꾸리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준비하며, 참가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애썼다. 그렇게 수년이 흐른 뒤 알게 된 것은 가장 많이 도움을 받은 것은 나라는 것이다.


오래 읽은 사람에게는 관점이 생긴다

오랜 시간 책과 함께 하다 보면 유독 마음에 들어 하거나, 불편해하는 부분이 있다. 작가와 작품을 떠나 반복적으로 밑줄 긋고 기록하는 대목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 나를 알게 되고 확인하게 된다. 미처 몰랐던 나의 애호와 불호, 이에 대한 생각이 반복되면 나에게도 관점이라는 것이 생긴다. 반복되는 이슈를 만나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고착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나의 관점을 지지받고 싶은 마음과 혹시 모를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마음, 나의 시각이 생기는 것은 동시에 그것을 의심해 볼 여력도 생기는 것이다. 그 마음을 함께 나누며 질문을 건네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나만의 질문인지, 다른 이에게도 질문으로 남아있는지. 혹여나 답을 얻게 될지. 관점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래 읽은 시간 속에서 쌓이는 것이다. 오래 읽은 사람은 결국 자신만의 질문을 갖게 된다. 그래서 함께 읽기를 시도한다.


질문은 연결을 만든다

처음 모임을 만들었을 때는 “여러분은 어떻게 읽었나요?”라는 매우 자유도 높은 질문을 던졌다. 아직 덜 익은 관계에서 부담스러운 질문은 피하기로 하였다. 각자의 소감을 나누고 나름의 평가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회원들은 매우 만족했다.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경청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관점들이 만나 충돌한다면 이를 견디는 것이 배움이다. 경청은 타인의 생각을 견뎌내서 수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임이 반복되면서 우리가 나누는 것이 ‘책인가 개인사인가’의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질문과 관점을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두에게 제안했다. ‘질문을 가져오기로 할까요?’라고. 특정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유익하다. 하지만 책을 공통의 매개체로 만든 질문과 토론은 밀도가 높다. 처음 시작을 균형 있게 맞출 수 있다. 책에서 인용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중심에 두고 진행된 모임은 단순히 독후감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다. 서로의 관점을 확인하는 공간이 된다. 관점들이 섞이고 수정되며, 연결되는 시간은 우리 모두를 한결 나은 독서가로 만들고 있었다. ‘바보 같은 질문을 가져오라’고 요구하는 독서 모임이 있다고 한다. 어떤 질문이든 허용되는 곳에서 각자는 나름의 기준으로 질문을 만들고 다듬는다. 질문이 오가는 속에서 더 단단한 연결이 맺어지고 있다.


함께 읽게 하는 사람의 착각

오랫동안 다이어리에 쓰는 한 줄이 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독서가’가 되겠다는 다짐. 타인의 성장을 돕고, 그 안에서 나의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브랜딩의 교과서적 원리이다. 그래서 독서 모임을 운영하면서 내가 이끌고, 회원들을 돕고 독려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들의 독서력이 올라가고 생각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며 뿌듯해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1순위로 참여해 주는 회원들을 보며 별다른 고민 없이 관성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회원들이 나의 발전을 칭찬했다. 책을 선정하고 해석하는 것, 사람들이 편하게 이야기하도록 배려하며 진행하는 것, 생각이 깊어지고 뾰족해지는 것이 보인다는 등, 내가 그들에게 주고자 했던 것을 오히려 받고 있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나의 계획은 나를 발전시키는 것이 되어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는데, 남을 돕고자 하는 것이 나를 도운 것이다. 돌이켜 보면 다른 이에게 독서를 전하겠다는 마음이 결국은 나의 독서를 키우겠다는 욕심이었을 것이다. 나는 모임을 운영한다고 생각했지만, 모임이 나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역할은 타인을 통해 나를 발전시키는 일

남들 앞에서 말하기 어렵다는 회원이 있었다. 조용히 듣기만 해도 되는지 물어온다. 어떤 분은 처음부터 줌 화면을 끄고 계신다. 몇 번을 거듭해도 뵌 적이 없다. 하지만 기다린다. 아마도 이야기하고 싶어 지실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대한 비난이 두렵고, 그전에 자기 검열에서 상처를 입기도 한다. 어떤 말이든 쉽게 하는 사람 역시, 편하지만은 않다. 뱉어낸 말을 다시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의견을 정리해서 모임에 임한다. 질문도 많이 정리되어 간다. 처음에는 어떤 책을 읽어도 나올법한 질문,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같은 것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보다 뾰족하고 깊이가 있는 질문이 보인다. 작가의 의도, 인물의 성격, 사건의 전개 등에서 질문을 만들고 나누게 된다. 서로가 놀라며 흡족해한다. ‘우리가 해내고 있어!’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운영을 시작한 사람에게서 보인다.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많이 발전했다. 전체의 의견을 듣기 위해 나를 낮추고, 상대방의 주장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고 한다. 각자의 역할이 생기고, 이는 서로를 지탱하게 한다. 가장 크게는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제는 운영도 함께 경험한다. 선뜻해보겠다는 분들을 보며 조금 부담이 덜어지고 있다. 모임의 리더 역할은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신뢰를 감당하는 자리다.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순간, 나의 생각이 깊어진다.

함께 읽는 모임에 참가하며 깨달은 것은, 독서는 혼자 시작하지만, 관계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관점에서 나의 생각이 흔들렸고, 다른 해석을 만나면서 유연함과 단단함을 배운다. 다른 사람의 독서를 돕겠다고 시작한 모임에서 나는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이 되었다. 역할은 단순히 선언으로 만들어지진 않는다. 계속되는 시행착오의 경험 속에서 단단해진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 그리고 다시 묻게 된다. 이런 읽는 삶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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