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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현재학 Oct 21. 2021

[봄날은 간다] 사랑과 다양한 변수들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의 이름조차 모르더라도, 모두가 다 아는 대사 두 개가 있다.



"라면 먹을래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두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듯, 이것은 사랑이 시작하고 사랑이 끝나는 이야기이다.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는 방송국 PD 은수와 함께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는 일을 한다. 일 때문에 단 둘이 풍경이 좋은 곳에 가서 소리를 녹음한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기 좋은 환경이다. 이들은 서로 사랑에 빠진다.



은수는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한다. 집 앞까지 바래다준 상우에게 그 유명한 대사를 남긴다. "라면 먹을래요?"


상우는 소년의 감성을 가진 남자다. 상우는 소년처럼 사랑에 푹 빠지고, 끝없이 계속 사랑에 빠져있고만 싶어 한다. 반면에 은수는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면서도, 적정한 선 이상의 무언가를 같이 하는 데는 조심스러운 여자다.


여기서 변수가 나타난다. 결혼이라는 변수. 은수는 한 번 결혼을 했었던 여자였다. 그리고 그 기억을 잊지 못하는지 책 사이에 결혼날의 사진을 간직해놓는다. 반면에 상우는 늘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산다. 어른들이 내세우는 핑계는 할머니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 결혼을 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 커플은 결국 결혼의 문제로 싸우게 된다. 상우는 밥을 먹다 말고, 아버지가 사귀는 사람 있으면 데려오라는 말을 했다고 해버린다. 한 번의 결혼 실패를 경험했던 은수는 조심스럽다. 그날 은수는 걱정이 많은지 다른 남자와 술을 마시고 들어온다.


그다음의 이야기는 흔히 겪게 되는 사랑의 실패가 이어진다. 여자는 서서히 사랑이 식어가고, 남자는 그렇게 식어가는 여자의 모습이 불안하다. 그래서 그런지 상우는 "이제 뭐할 거야? 이 일도 끝나가는데?"라는 말도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상우는 기분이 좋지 않아 핑계를 대며 다른 곳에 가려하고, 은수는 빨리 집에 와서 라면이나 끓여달라고 한다. 자존심이 상한 상우는 "내가 라면으로 보여?"라고 화를 낸다. 은수는 그런 다툼이 일어나자마자 상우의 모든 물건을 문 앞에 쌓아놓고 누워서 자는 척을 한다. 그렇게 이별의 국면은 시작된다. 마침표를 찍는 상우의 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영화에서 유명한 두 대사는 연애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은수라는 캐릭터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할 수 있다. 사랑을 쉽게 생각하는 여자 혹은 사랑을 두려워하는 여자. 은수가 설렘만을 즐기고, 조금 감정이 상하기 시작하자 바로 애정이 식어버리는 여자.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은수가 두려워하는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결혼을 이야기하자 견디기 힘들었고, 연인 간의 자존심 다툼이 일어나자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툼이 라면처럼 일상적인 일에서 일어난 것이라 더더욱 결혼 이후의 어두운 미래처럼 보였을 것이다.


결국 이 영화에서 다루는 사랑의 시작과 끝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다양한 변수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직업의 독특한 특성 때문에 시작된 사랑은, 남자의 가정환경 혹은 여자의 힘든 과거와 같이 바꾸기 힘든 각자의 사정에 의해서 끝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주는 미학은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이다. '나쁜 여자' 혹은 '성급한 남자' 같은 초점이 아닌 '봄날'. 그렇게 우리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그들이 같이 경험했던 몇 달의 시간을 '봄날'로 보고자 한다는 것. 그게 이 영화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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