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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Dec 12. 2022

해피엔딩

온 국민들을 하나로 만드는 환희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한 주간을 보냈다. 나도 세상이라는 공간 속에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휘슬이 울릴 때까지 선수들과 같이 최선을 다해 뛰어보고 싶은 감동의 순간을 선사한 멋진 

월드컵 무대였다.


그 에너지를 담아서 인지 아이를 청소년 관현악단 연습으로 보내는 길도 숲길을 산책하는 나의 발걸음도 

힘차다.

이번 주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그곳에 가면 시간도 생각도 멈추는 곳.

나를 올곧게 바라볼 수 있는 도서관을 가기로 했기에 설렘이 더하다.


아이들은 내게 말한다.

“엄마는 그 답답한 공간이 뭐가 그렇게 좋아?”

“그곳에 가면 다 있거든. 너희들도 이 글의 기쁨을 좀 더 느꼈으면 좋을 텐데...”

“엄마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우리보다 아마 영상물을 더 좋아할 걸요?”

“아, 맞네! 집에 TV를 보려고 해도 안테나를 돌려 가며 전파를 맞춰야 하고, 좋아하는 프로를 보려면 하루 종일 그 시간에 딱 맞춰서 기다려야 했으니... 컴퓨터나 휴대폰은 한참 후에나 구경을 했으니까....”

엄마는 너희들보다 더 심하게 빠져 있었을 거 같아.

엄마의 너무 빠른 항복으로 피식 웃고 만다.


오랜만에 여유가 있던 차라 그동안 잘 가지 않았던 지역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한참 책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는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동안 이사를 가고 전학까지 하게 되어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아이의 친구네 가정이었다.


이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그 친구네 가정은 담임 선생님이 국민아빠라는 별명을 지어 줄 만큼 자녀의 학교 행사에 항상 아빠 엄마가 함께 참여하고 틈이 나는 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하고 아이를 위해서 라면 아빠가 친구들 앞에서도 기꺼이 재미있게 망가져 주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그 아이의 학업에 조금 도움을 주었을 뿐인데도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꼭 한번 따로 만나고 싶다는 얘길 했다.

그래서 아주 오붓하고 따뜻한 우리 엄마들만의 시간을 마련하여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토록 행복한 가정에 무슨 얘기를 할까? 설레임과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한참 시간이 무르익을 때쯤 마음을 여는 이야기를 했다. “언니, 제가 왜 이사를 나왔는지 알아요?

그 학구열이 넘치는 지역에 살아가면서 점점 제 자신을 잃어가는 거 같았어요. 모두 그룹 그룹 지여진 틈 속에서 자녀를 위해 좋은 정보나 소식을 얻어 보려고 이곳저곳에 기웃거리고 손뼉 쳐주고 실없이 웃으며 쓸데없는 소리로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는 제 자신을 볼 때마다 집에 오면 텅 빈 공허함이 엄청 밀려왔어요. 괜히 나약한 나의 모습에 남편에게만 신경질을 부리고... 벗어나고 싶었어요. 나를 찾고 싶었어요.


정말 의외의 말이었다. 그랬구나. 그런 생각을 가졌었구나.

이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학교가 있는 단지라 

어려서부터 많은 아이들이 학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지금 이사 간 곳은 어때? 조금은 다양한 아이들과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저는 더 행복한데 

자꾸만 두려움이 밀려와요.

내 감정으로 인해서 아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차피 이 나라 시스템에서 자라려면 통과해야 하는 것인데도...

언니는 어때요? 언니에게는 늘 무언지 모를 힘과 평안함이 느껴져요.


나도 정말 자기와 같은 성향이었어. 늘 소심하다 못해 왕따의 영이 흐를 만큼 위축되고 기가 죽은 상태... 

주변만 맴돌고 착한 사람 이미지에 갇혀 말 한마디 뻥긋하지 못하는 어두운 사람.


그런데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아주 리더십도 좋고 재능도 많은 아이가 “나는 주변에 늘 아이들이 많지만 막상 마음을 털어놓고 속마음을 나눌 친구는 없어요.”

아주 유능하고 유쾌한 어른이 회사에서 많이 인정도 받고 친구들도 늘 불러주지만 내가 돈을 쓰지 않고 몇 번 약속을 거절하면 남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아~ 정말요? 나만 그런 게 아니에요? 이제 조금 마음이 놓이네요.


정말 그랬어. 모든 사람은 죽을 때까지 혼자라는 두려움을 저버릴 수 없고 사람 영혼 안에 구멍이 있어서 그것을 잠시 잠깐 채워가며 아닌 듯 살아가지만 영원한 것은 늘 메마르다는 것을...


그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 그 존재를 알고 난 뒤부터는 앞으로 닥칠 수많은 문제와 순간순간 두려움이 몰려올 때도 있지만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끄러움 당하지 않고 부요함을 주신다”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돼.


언니는 어떻게 그런 믿음이 왔어요?

지금까지 내가 주인이었을 때는 아무리 열심히 애를 써도 운명의 시간 앞에는 꼼짝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지.

그래서 나와 닮은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들의 묶여있는 상태를 풀어주고 벗겨 내주는 기도 속에 

있으면 하나님은 이 아이들의 각각 빚은 모양대로 세상 앞에 빛을 비추게 하시지.

이 기도문으로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축복해주고 자신을 날마다 살려내고 있으면 당연히 아름다운 결말을 

맺게 해 주셔...

제가 그동안 순간 다급할 때 얼른 들어달라는 완전 틀린 기도만 했군요.


수줍은 얼굴로 미리 준비해 온 예쁜 케익을 내민다. 

나는 다른 사람이 건네준 쿠폰으로 차와 작은 조각 케익을 

나눴을 뿐인데... 

올해 마무리를 향해가는 아름다운 날. 

행복한 만남.

우리의 마지막은 해피앤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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