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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Feb 15. 2024

중학교 입학 준비, 결제하셨나요?

전교생 중 혼자 다른 학교 배정받은 아들을 위한 입학 준비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3월에는 중학생이 된다. 


1월의 어느날 중학교 배정일, 우리 집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었다. 전교생 중 우리 아들 혼자만 Y중학교에 배정된 것이다. 마을버스는 30분에 한 대만 다니고, 시내버스는 2번을 갈아타야하는 곳이었다. 중학교 지원서를 쓸 때 2순위에 그 학교를 적었던 내 손을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아들은 문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학교에서, 집에서 눈물을 보였다. 마음이 무너졌다. 미안함과 안쓰러움, 속상함, 걱정스러움이 소용돌이 치며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침몰하는 배가 된 기분이었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 아이라 친구를 잘 사귈까, 따돌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은 결국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중학교 입학 후 초기에 아들이 기죽지 않고 당당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선, 피지컬을 키워야 한다. 평균 키 조금 아래인 신장으로는 무시당할 수도 있으니 키 크는 한약을 지었다. 한약을 짓기 전 처음 검사해본 예상키는 충격적이었다. 아빠보다 작게 나왔다. (남편! 아들은 무조건 아빠보다 10cm는 큰다며!!) 병원에서는 엄마 키가 중요하다며 엄마 키를 정확히 말하라고 취조하듯이 나의 키를 물어댔고, 어디서든 반올림하던 나의 키는 적나라하게 민낯을 드러냈다. 키가 작은 게 나 때문인걸까. 내 키가 크지 않아서? 난 작지 않다. 크지 않을 뿐. 반에서 늘 22번~25번을 왔다 갔다 했던 나는 딱 중간 크기다. 나보다 작은 엄마들의 아들들도 큰 키가 꽤 있던데. 어쨋든 저 예상키가 맞는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지갑을 열자.

보름치가 20만원. 얼마나 먹어야하는지도 모른다. 초등 저학년 때 남들 다 하는 예상 키 검사도 안했는데...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약이라니.. 현타가 오기도 했다.


  다음으로 복싱장을 등록했다. 집에서는 성질이 지랄 맞아도 밖에서는 자기 표현 잘 못하고, 의외로 순진해서 남들 하는 얘기 다 믿는 순진한 아들(엄마 눈에만 그럴 수도 있다.)은 빵셔틀 하기 딱 좋은 타입이다. 누가 조금만 꼬셔도 넘어갈테니 말이다. 같은 초등학교 출신 아이들이 우리 아들을 셔틀 삼는 게 자꾸 떠오른다. 큰일이다. 자기 몸 정도는 지킬 수 있는 무술을 가르쳐야 했다. 폭력으로 누군가를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배우는 거라고 신신당부했다. 너무 잘해서 선수하라고 권유 받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그건 나중에 조심스레 거절하면 되니 더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하고. 이제 키도 커지고, 무술도 할 수 있게 될테니 걱정을 한 스푼 덜었다. 어머나, 그리고 보니 아들 키가 조금 자란 것도 같다. 


  아, 갑자기 요즘 유행한다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개근거지"

학기 중에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하지 않고 개근하는 아이들을 빗대어 비하하는 말이다.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라는 인식에서 생겨난 말인 것 같다. 일단, 우리 가족이 겪고 있는 현상으로만 보면 현장체험학습을 1일도 쓰지 않은 우리 아들은 "개근거지"가 맞다. 학생은 학교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여행을 가더라도 주말이나 방학에 가야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과 휴가가 많지 않은 현실의 짬뽕속에 빠진 부모의 자기 세뇌때문이다. 틈틈히 주말을 이용해 여행을 다니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행이라는 게 말주변 없는 아들이 설명하기에는 하찮아 보일 수 있겠다는 근거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넌 여행 어디 가봤어?"라는 새로운 친구들의 질문에 머뭇거릴 아들을 상상해버리고 말았다. 요즘 애들은 해외여행도 많이 다니던데... 우리 아들은 해외여행을 언제 가봤더라. 하아...  생각을 하지 말껄. 눈덩이처럼 커지는 생각을 걷잡을 길이 없다. 


급하게 핸드폰을 집어들고 검색을 시작했다. 베트남, 코타키나발루, 푸켓, 일본, 보라카이 등등. 근데 결정할 수가 없다. 정말,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그리고, 멀다. 해외 여행은 최소 3박 5일 이상은 가야한다. 그 동안 엄마가 혼자 잘 있을까? (엄마와 합가해서 살고 있으며, 엄마는 치매가 있어 요즘 깜박하는 일이 매우 잦아졌다.) 별일이야 없겠지만, 귀찮다고 밥을 안 먹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약을 제대로 챙겨먹을지도 걱정이다.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엄마랑 같이 가기는 힘들다. 그래, 가까운 제주도로 가자. 해외는 아니지만, 제주도라도 다녀오면 아들도 할 얘기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초등 졸업 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왔다. 3박 4일의 여행은 꽤 좋았다. 부모님들을 모시고 다녀왔던 지난 2번의 제주 여행과는 다르게 오름도 가고, 성산일출봉도 오르고, 밥도 간단히 먹기도 하며 그저 즐길 수 있었다. 여행사 직원이 된 것 같았던 부모님들과의 여행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핸드폰과 한 몸이 되어있던 아들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번 여행 좋았어~"라고 말했는데 진위를 의심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제 중학교 입학 준비로 남은 것은 운동화, 실내화 가방, 옷 구입이다. 발이 훌쩍 크기 때문에 핫딜로 사줬던 이름없는 메이커의 운동화는 이제 사면 안된다는 남편의 강력한 주장을 받아들였다. 아디다스도 안된단다. 나이키여야 한단다. 나이키 운동화를 2개나 사야한다니... 옷도 다 짧아졌던데.. 살이 찐건지, 허벅지가 굵어진건지 바지는 꽉 끼고, 옷들에는 언제부터였는지 보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교복입는 데 사복을 꼭 사야하나... 싶은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다음 달 내 통장은 안전한걸까? 

제주에는 동백꽃과 유채꽃이 만발했다. 저 예쁜 꽃들처럼 우리 아들의 중학교 생활도 예쁘기만 했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모든 결제를 끝내고 나중에 든 생각은 이렇다. 나는 혹시 그냥 카드를 쓰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를 위한 소비는 아니었지만, 소비를 위한 이유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핸드폰으로 쇼핑몰들을 검색한다.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것들을 결제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 지금 아들을 중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아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게 돕기 위해 결정한 것들이 나의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나? 남편도 불안함을 쇼핑으로 다스리나보다. 아들 등교시킬 때는 라이딩을 해주기로 했는데, 하차감이 중요하다며 차를 바꾸겠단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가 급하게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건 소비 단위 자체가 다른데? 

아,  그러고보니 제주의 숙소에서 중학교 1학년 교과수록 도서 11권을 결제했더랬지... 독서는 중요하니까. 


 이제 보름 뒤면 낯선 곳에서, 낯선 아이들과 일과를 보내야 할 당사자인 아들은 어떤 마음일까? 부모의 불안함이 전염되어 아이마저 불안해하지 않도록 단도리해야겠다. 잘해낼거라 믿어주며 언제든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상의할 수 있는 부모로 뒤에 있어주는게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결제이다. 우리 아들의 중학생활이 꽃같이 예쁘고 향기나는 멋진 날들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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