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 나의 정기 진료를 위해 2개월에 1회 정도는 대학병원 방문이 이루어진다. 코로나 이후 남편은 감염이 두렵다며 자동차로 출, 퇴근을 시작했다. 지금은 대중교통 혐오 또는 두려움 아니면 불편함의 이유로 자가용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2개월에 1회 정도의 대학병원 방문은 택시를 이용하고 있다.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 차로는 30분 정도가 걸린다. 버스로는 1시간 거리여서 택시를 애용하고 있다.
택시는 참 편한 교통수단이다. 여러 사람과 부딪힐 일도 없고, 서서 갈 일도 없으며, 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바로 데려다주지 않는가. 그래서 난 택시를 애정한다. 그런데, 요즘 택시가 불편해지고 있다. 난 엘리베이터나 버스, 지하철 등 여러 사람이 같이 이용하는 곳에서는 가능하면 대화를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이유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이지만, 사실 나의 얘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나와 나의 지인이 나누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듣는 것이 불편하다. 택시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과 함께 타더라도 말을 잘 나누지 않는다. 좁은 차 안에서 택시기사님이 우리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싫어서이다. 그리고, 택시기사님만 빼놓고 우리끼리 얘기하는 게 꼭 기사님을 소외시키는 것 같아 불편해서이다.
그런데! 택시기사님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택시기사님들이 자꾸 말을 건다. 그것도 "오늘 날씨가 참 좋죠~.", "아이고, 차가 많이 막히네요."와 같은 일상의 대화가 아니다. 주제가 있고, 내 생각을 정리해서 답해야 하는 심오한 주제의 말을 건다.
첫 번째는 이랬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3개월치 약을 처방받아 양이 꽤 많았다. 비닐봉지에 담긴 약을 들고 부스럭거리며 택시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00동 00 아파트로 가주세요.",
"네~ 출발합니다. " , "그런데 어디 아프세요? 약이 꽤 많네요."
"아.. 네, 정기적으로 먹는 약이 있어서요. "
"아이고, 그랬구나, 그런데 왜 이 병원을 다녀요? 여기 사람 죽어나가기로 유명한데."
"네? 아.. 그래요? 의료사고 같은 게 많았나 보네요. 저는 그런 위중한 건 아니어서 괜찮아요."
"아니, 그 사람들 다 아가씨처럼 별거 아닌 줄 알고 약 받아먹다가 나빠져서 죽었어요. 위중해서 온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 병원 다니면 다 죽어나가요."
"..................." 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으로 불편함을 전했다. 아니, 전한 줄 알았다. 택시기사님은 침묵을 동의의 메시지로 해석했고, 집까지 오는 30여 분간 내가 단골로 다니는 병원의 의료사고, 의사들의 실력부족, 그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진짜인지는 모른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이 병원을 다니다가 죽어나갈까 봐 진심으로 걱정한 것인지, 이 병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인지 알 길은 없다. 그렇지만,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두 번째는 이랬다. 역시나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님이 물어왔다.
"어디가 아파요?"
"아... 정기검진이에요."
"정기검진을 받아야 할 만큼 몸이 안 좋으시구나. 아이고, 어쩐데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약 조금 먹으면 낫는 거예요."
"아이고, 약도 계속 먹어야 하는구나. 젊은 사람이 힘들어서 어쩐데요. 병원 약이 독해서 많이 먹으면 몸을 더 안 좋게 만들어요. 종교 있어요?"
으응..? 전개가 이상하다. 갑자기 종교? 식은땀이 등 뒤로 흘러내렸다. 혹시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인가? 여기서 대답을 제대로 안 하면 집이 아니라 종교시설에 데리고 가서 가둬버리는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난 무사히 집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아니요. 종교는 없어요. 기사님은 종교가 있으세요?" '아주 자연스러웠다. 잘했어.'
"저는 종교가 있어요. 종교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살아갈 길을 알려주죠. 그래서 병도 나을 수 있는 거예요." 룸미러로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택시기사님과 눈을 마주치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도 종교를 꼭 가져요. 들어봐요. 노래로도 믿음을 드러낼 수 있어요." 택시기사님은 찬송가를 틀었다. 그리고, 고운 목소리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좁은 택시 안에서 약 10여 분간 기사님이 직접 불러주는 찬송가를 들으며 천국이 눈앞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고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 맞는지 확인하며 집 앞에 도착한 순간 너무 감사한 마음에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나는 종교가 있다.
세 번째는 이랬다.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00 대학병원으로 가주세요."
"어머니가 어디 아프세요?"
"그냥 정기검진이에요." 택시기사님들의 질문세례를 겪어봐서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었다.
차가 출발한 지 5분 정도 지났을 때, 기사님이 입을 떼었다.
"따님은 부모님에 대한 효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으음...? 내가 지금 택시를 타고 있는 게 아니던가. 어디 교육장에 와있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갑자기 불쾌함이 들었다.
"그런 걸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 대답하기가 힘드네요." '오케이! 매우 쌀쌀맞게 잘 말했어. 더 말을 걸진 않겠지!'는 내 착각이었다.
"부모에 대한 효 중 가장 중요한 건 건강하게 지내시게 하는 거예요. 아파서 힘들게 지내시게 두는 건 불효죠. TV 같은 데서 말하는 효도방법은 다 쓸데없는 말이에요. 그런 거 믿으면 안돼요."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부모의 건강을 지켜주는 게 효라는 얘기를 듣는 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택시기사님은 다른 의도였을지 모른다. 엄마를 모시고 병원진료를 가는 기특한 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촉이라는 게 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건강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아프시지 않게 해 드릴 순 없지만 치료받게 해 드리는 게 자식이 할 일이죠." 뾰족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기사님은 그 뒤로 말을 잇지 않으셨다.
네 번째는 이랬다. 택시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기사님 휴대폰이 울렸다. 거리낌 없이 전화를 받으시는 모습을 보며 운전 중 통화는 금지 아닌가 라는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스피커폰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의 내용을 대략 이랬다. 어떤 사람이 택시를 이용하고 집 앞에 도착한 뒤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도망갔다. 그 일과 관련해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검찰에서 전화가 왔다. 꽤 흥미를 끄는 내용이라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기사님은 침착하게 통화를 종료했고, 나는 안 들은 척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아가씨, 택시 요금 안 내고 내린 적 있어요?"
"네? 저요?? 아니요!!! 저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르는 거예요. 내가 일주일 전에 저 앞 아파트에 손님을 내려줬는데 돈을 안 내고 도망갔어요. 그게 다가 아니에요. 얼마 전에는 또 송금해 준다고 하고 도망가고. 그런 사람들 다 아가씨처럼 멀쩡하게 생겼어요."
하아.. 또 뭐지... 나 돈 안 내게 생겼나.. 여기서 난 그런 사람 아니라고 카드를 먼저 드려야 하나, 현금이라도 들고 앉아있어야 하나..
"아... 그러셨군요. 기사님이 많이 당황하셨겠어요. 저는 그런 사람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하하하, 아가씨가 그렇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거지. 세상 똑바로 살아야지. 젊은 사람들이 아주 이상한 짓을 많이 해요. 우리 같이 하루 벌어먹고사는 사람들 등쳐먹을게 얼마나 된다고. 어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의 손에는 카드와 현금 둘 다 들려있었다.
다섯 번째는 이랬다. 아들과 함께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에서 카톡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는 아들은 고개를 핸드폰에 처박고 있었다.
"뒤에 있는 아들은 몇 학년이지?"
"6학년이요." 무뚝뚝한 아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래, 이제 중학생이 되겠구나. 근데 그렇게 핸드폰만 하고 있으면 어쩌니? 중학생이 되면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국영수 중심으로 기초를 먼저 다져야 해. 너 공부는 잘하니?"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아들은 고개를 들어 기사님을 바라봤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것 같았다. 내가 나설 순간이다.
"매일 핸드폰만 하는 건 아니에요. 공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고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그게 문제예요. 부모들이 애들이 얼마나 핸드폰 중독인 줄 모르고 오냐 오냐 하니까요."
아.. 또 혈압이 오른다. 전생이 있다면, 난 택시기사님들을 괴롭힌 사람이었을 거다. 아니면 이렇게 매번 다른 주제의 이야기로 당황스러울 일은 없었을 거다.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택시 타면 기사님들이 말을 거냐고. 대부분 말을 안거다고 했고, 말을 걸어도 일상적 얘기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아서 그런 걸 거야.' '좀 부족해 보여서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싶으신 거 아닐까?' 후자가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직접 묻지 않는 한 어떻게 알겠는가.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택시.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이야기 코드가 맞다면 서로로 대화도 하며 즐겁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나에게 택시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오늘은 또 어떤 말을 걸까.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한다.
사람 간의 소통은 사회를 이루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소통은 공감할 수 있어야 가능해진다. 누군가는 공감하지 않는다면 소통이 아니라 언어폭력이 될 수도 있다. 수다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 재미있어서 떠들어대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공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을 겪으며 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남편에게 이 사건들을 전하며, 차를 놓고 다니기를 은근히 종용했지만 실패했다. 공감되지 않는 주제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