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다움 Nov 11. 2023

우아한 정작가의 어느 분주한 수요일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칼바람이 부는 맑은 날씨(금)

    

오늘은 24시간 중 15시간을 일해야 하는 날이다. 새벽 5시에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찬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차가운 바람의 손길은 오소소 소름을 돋우며 머리를 맑게 해 줬다. 광명역으로 이동해서 KTX를 탔다. 달리는 기차 창문으로 바라본 바깥은 어슴푸레 동이 터오고 있었다. 발그스름한 빛은 조금씩 하늘을 물들이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기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새벽부터의 일정이 피곤한지 다들 잠에 취해있었다. 요즘 너무 바빠 잠을 보충할 시간이 없어 잠깐 눈을 붙일까 고민했지만 지금 일을 처리하고 밤에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노트북을 켜고 논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논문학기라 더 조바심이 난다. 자판을 치는 소리가 옆 사람의 곤한 잠을 깨울까 조심조심 타자를 치다 보니 손가락에 쥐가 날 것 같다. 그렇게 2시간 30분을 달려 부산역에 도착했다.    

  


오늘은 부산 벡스코에서 출간기념회가 있는 날이다. 2022년 발간된 첫 책 이후 5번째 책이 출간됐다. 출간한 책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작가로서 인정 받았다. 해외출판도 이루어지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아직 많은 책을 출간한 것은 아니지만 5번째 책은 새롭게 도전한 분야의 책이어서 더 의미가 있다. 자녀교육서, 에세이를 주로 출간했으나 이번에는 리더십을 주제로 한 자기 계발서를 출간했다. 출간 전부터 예약판매만으로 10만 부 이상 팔리며 많은 기대를 받고 있어 전국을 순회하며 출간기념회를 하고 있다. 슬초 2기 동기인 나반장님이 대표로 있는 라라앤글 출판사와 손잡고 쓴 첫 번째 책인데 성과가 무척 좋다.      


해운대에 위치한 부산 벡스코에 도착하기 전 바다구경에 나섰다. 바다는 늘 변함이 없을 텐데도 파도거품은 더 차가운 하얀색을 띠고 있다. 그래서인지 겨울바다는 볼 때마다 쓸쓸하면서 고요하다. 터보의 회상을 들으며 바다를 걷고 있으니 5년 전이 생각났다. 첫 책 발간 후 다음 작품을 쓰면서 방황하던 나에게 읽고 쓰는 삶의 루틴을 만드어준 ‘슬기로운 초등생활 브런치 작가 되기’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시기다. 그때 만난 글쓰기 동료들은 다들 대한민국 출판계를 쥐락펴락 하는 작가들이 되었다. 함께 성장하며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었던 5년은 참 소중하다.      


 출간기념회가 열리는 그랜드 볼룸은 이미 입장이 시작되어 1,000석이 가득 차 있었다. 가족과 함께 온 분, 친구들과 함께 온 분, 혼자 온 분 다양한 분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었다. 소곤소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작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뭉클하다. 슬초 2기 작가님들의 축하영상으로 시작을 알렸고, 책 소개와 함께 북토크가 진행되었다. 북토크 이후에는 이은경 작가님의 특강이 진행됐다.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친절한 말투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강의를 이어가는 이은경 작가님을 보니 더없이 든든하고 감동이 온몸에 가득 찼다. 감동이 온몸에 가득 차 풍선처럼 하늘로 날아갈까 봐 걱정이 될 정도다.


 3시간여의 출간기념회가 끝나고 밥 먹을 새도 없이 다시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방배동 대학원으로 이동했다. 논문을 교수님께 점검받는 날이다. 언제나 온화한 분이지만 논문 점검 때만은 무척 날카로워지시는 교수님과 대면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 3층에 위치한 교수연구실에서 논문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연구실은 해가 잘 드는 남향에 위치하고 있어 늘 햇빛이 들어온다. 햇빛은 흰머리의 교수님과 연구실의 삼 면을 둘러싸고 있는 책과 만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햇빛이 교수님의 은발 같은 흰머리에 내려앉자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게 오전에 봤던 파도의 부서짐 같다. 교수님이 논문을 검토하시는 20분이 2시간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일찍 일어나서일까 졸음이 몰려와 눈꺼풀이 자꾸 감긴다. 저녁에 있을 동기 모임을 떠올리며 잠을 쫓아본다. 드디어 교수님의 입이 떨어졌다.

“자네 책 쓰고, 강연 다니느라 무척 바쁠 텐데 논문을 완성할 시간이 있었나? 제출해 봄세.”

“네? 통과인가요? 와~~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 덕분입니다!”

논문이 통과되었다. 물론 심사가 남았지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교수님께 감사인사를 드리며 내시처럼 뒷걸음질로 연구실 문을 나와 닫힌 문을 보며 90도로 다시 인사를 했다. 이제 한 가지 숙제가 끝났다.      


찬바람이 쌩하고 부는 겨울 초입임에도 봄날의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 같다. 어디선가 나는 꽃내음을 맡으며 나의 사무실 겸 사업장인 ‘느슨한 책방’으로 돌아왔다. 직장을 그만두며 동네에 책방을 차렸다.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며 동네에서 글을 매개로 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시작했던 책방은 작가로 유명세를 타며 5층짜리 건물의 1, 2층을 차지하고 있다. 1층은 책을 전시하고 판매하며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공간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3개의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학교 끝나고 학원이 아닌 책방으로 와서 책을 보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공간, 독서모임을 하는 분들을 위한 세미나실, 어린아이들도 책을 몸으로 경험하며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되어 있다. 늘 모든 공간이 북적이고 있어 내년에는 한 층을 더 확장해야 하나 고민이다. 책방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늘 설레고 즐겁다.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만나기도 하고, 여러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기도 한다. 함께 독서모임을 했던 사람들이 작가로 데뷔하는 것을 보면 뿌듯함에 눈물이 난다. 여러 생각을 하며 2층 구석에 위치한 사무실로 들어가 오늘의 일정을 정리했다. 큰일 2가지를 끝내고 나니 마음이 한 결 가볍다.      


어느덧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제 동기모임에 참석하러 갈 시간이다. 모임 장소인 신라호텔 앞에 도착하자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에 눈이 부셨다. 슬초 브런치 2기 모임 동기들은 쟁쟁한 작가들이 포진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이은경 작가님과 이름을 떨치고 있는 많은 작가들의 모임은 전 국민들의 관심사다. 오늘 드레스코드는 골드여서 검정원피스와 재킷에 골드색 구두를 신고 왔는데 발이 너무 아프다. 역시 하던 대로 금빛 운동화나 신을걸 그랬나 보다. 아픔을 참고 우아하게 미소 짓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모임 장소로 향했다. 앗! 은경샘이 머리를 감고 먼저 도착하셨다! 뛰어야겠다.

 오늘은 다시 5년 뒤를 상상해 보자고 동기들에게 말해봐야겠다.     

아, 내일은 싱가포르로 떠나는 날이다. 이번에 가면 6개월간 머물며 다음 책을 기획하고, 글을 쓰며 지낼 예정이다. 싱가포르의 카페에 앉아 현지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출판사에서 날아온 출간제의 이메일을 체크하겠지? 비행시간에 늦지 않게 오늘은 과음은 하지 말아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