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서는 대개 이메일 보다는 내부 메신저를 많이 쓰고, 반대로 로펌에서는 내부 메신저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이메일을 주로 쓴다.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검사들은 대개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아 메신저가 더 편리하지만 변호사들은 나가 있는 경우도 많다보니 메시지를 보내도 바로 답이 안 오는 경우가 많아 그런 듯 하다. 메신저가 1:1 소통이라면 이메일은 수신자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1:다수 소통 수단이 된다. 메신저도 대화 내용을 저장할 수 있고 제3자에게 전달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메일은 저장이 더 쉽고 1:1로 주고 받은 내용이라도 보다 쉽게 제3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래서 검찰에 있다가 로펌으로 옮긴 분들 중에서는 여전히 메신저 습관이 남아 간혹 실수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참조에 여러 명이 있는 메일 체인에 반말이나 너무 편한 표현을 쓰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메일이 주요 채널이다보니 일이 좀 많을 때는 하루에 이메일 2~300통씩 받는 경우도 흔하다. 일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이메일을 너무 자주 확인하지 말라는 자기계발서들이 많은데 사실 쉽지 않다. 화장실을 가던 구내식당을 가던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체크하면서 지나가는 변호사들도 제법 많다. 저마다 일하는 시간이 다르다보니 한밤 중에도 오고 새벽에도 오고 주말에도 온다. 거의 모든 변호사들처럼 나도 휴대전화로도 이메일을 읽고 쓸 수 있도록 연동해 두지만 알림은 울리지 않도록 해 둔다. 그래도 수시로 메일을 열어보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해외연수나 아예 사무실을 그만두면서 휴대전화로 더 이상 이메일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실감한다는 변호사들이 많다.
로펌은 출퇴근시간이 비교적 자유롭다고 하는데 사실 출퇴근 개념 자체가 약하다. 저마다 일하는 시간이 달라 저녁이고 새벽이고 이메일이 날아든다.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주니어들 중에서는 예약 발송 기능을 사용해 일부러 새벽 2~3시에 발송되도록 하는 사람도 있단다. 새벽까지 열심히 일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 그러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퀄리티다. 나는 나름 아침형 인간이라 새벽에 일어나는데 바쁠 때는 출근 하기 전 집에서 급한 이메일들을 처리하고 나온다. 다른 변호사들이 새벽 2~3시에 보낸 이메일에 내가 아침 6시에 답장하는 식인데 대개의 로펌이 그렇게 일한다. 주말도 예외 없다. 나도 처음에는 열심히 일한다는 소리 듣고 싶어 일부러 주말에 이메일을 쓰기도 했었는데 연차가 쌓이면서 이제는 가능한 하지 않는다. 내가 별 생각 없이 토요일 아침에 보낸 이메일 때문에 어떤 변호사의 기분 좋은 주말을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사실 너무 늦게 했다.
이메일에 대한 잔소리를 좀 해 보자. 메일 제목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바쁘다고 구체적인 제목을 쓰지 않거나 별 상관 없는 메일 체인에 다시 회신하는 식으로 이메일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인상이 좋을 리 없다. 제목은 가능한 구체적으로 쓰되 단순한 정보 전달인지, 무엇인가 해달라는 요청인지, 질문인지 명확하게 쓰면 더 좋다. 맨 앞에 [요청], [문의], [상황 공유] 등 잘 보이게 일종의 태그를 붙이는 방법도 좋다. 수신/참조 지정이 귀찮다고 기존에 돌아다니는 메일 체인에 계속 회신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데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메일 체인들을 나중에 읽어보면 서로 전혀 관련 없는 내용들이 붙어 있는 경우도 많고, 이메일 제목과 내용이 아무 상관이 없는 경우도 흔하다. 방금 내가 받은 이메일도 제목은 '정보공개청구'인데 내용은 국민연금에 보낼 공문 초안을 검토해 달라는 취지다. 하루에 10개쯤 받는다면 사실 별 문제 안 되지만 200개쯤 받아보면 나중에 찾기도 어렵다. 이메일 체인이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어지면 해당 이메일 아래로는 다 지우고 새로운 제목을 달아 메일 체인을 다시 여는 방법도 괜찮다. 어차피 기존 메일 체인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누가 시작하든 크게 문제될 일 없다.
수신/참조는 두 번 세 번 아니 네 번 확인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무실에서 법전 구입 희망자 신청하라고 변호사 전원에게 보낸 메일에 아무 생각 없이 습관대로 '전체 회신'을 눌러 전혀 안 궁금한 본인의 구입 의사를 널리 알리는 사람, 개인적으로 보낼 내용을 몇 십명 아니 몇 백명에게 보내거나 '전체 회신'과 '회신'을 구분하는 단순한 일에도 실수하는 변호사들이 늘 있다. send 누르기 전에 부디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시길.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메일은 짧게 써야 좋다. 가끔 본인이 한 일을 자랑하고 싶어 장황하게 풀어 설명하는 이메일들을 보는데 재미도 감동도 없다. 이런 만연체 이메일의 최대 단점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 들어온다는 점인데 가능한 결론부터 간략히 쓰고 요구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부터 쓰자. 결론이나 요청 사항에 밑줄을 긋거나 색을 달리하는 방법도 좋다. 대개 이메일은 대화 형식이다 보니 존칭과 구어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정도로 하고 이하 내용은 보고서처럼 개조식으로 쓰는 방법도 괜찮다. 장황한 이메일로 읽는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뺏는 일이 더 예의 없는 짓이다.
수신자가 10명쯤 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굳이 "알겠습니다"라고 한 줄 보내오는 변호사들이 있다. 이메일 확인했음을 꼭 알리고 싶었던 모양인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가뜩이나 넘쳐나는 이메일로 스트레스 받는데 하나 얹어주는 셈이라 좋은 인상 주기 어렵다고 본다. 업무에 충실하다면 당연히 빠뜨리지 않고 챙겨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꼭 보내고 싶다면 본인 의견이나 진행 방향 등을 간략히 언급하면 좋겠다. 제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식의 카카오톡 메시지 같은 이메일은 보내지 말자.
하도 많은 이메일을 주고 받으니 가볍게 생각하기 쉽지만 이메일도 '글'이다. 말은 흩어지지만 '글'은 남는다. 이메일로 누군가 출력하거나 따로 저장해 두면 나도 모르게 오랫동안 보관될 수 있다. 변호사들도 다들 사람인지라 가끔 감정적인 표현들이 오갈 때가 있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