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마음
저는 바다와 인접한 곳에 살고 있습니다. 저녁에 답답할 때 20분 정도 걸어 나가면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여름에는 다른 지역보다는 온도가 살짝 낮고 겨울에는 온도가 높은 해양성 기후입니다. 평소에는 살기 좋은 기후 환경이지만, 태풍이 올 때만큼은 다소 걱정이 됩니다. 비와 바람이 정말 무서울 정도로 거세게 밀어닥치면 잠을 설칠 때도 많았거든요. 늘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태풍은 다양한 이름으로 해마다 우리나라를 방문합니다.
십 수년 전 7월 어느 날 태풍으로 비바람이 억수로 몰아친 적이 있었어요. 중부지방에 엄청난 폭우가 내렸죠. 부모님은 강원도에 사셨는데 유독 강원도 지방에 폭우가 내려서 걱정이 됐지요. 강원도 계신 부모님이 걱정돼서 전화를 해보니 불통이 됐어요. 특히 부모님이 계시는 강원도 지역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곳이라 통신 상태가 별로 안 좋았는데 태풍으로 인해 완전히 단절된 거예요.
연락이 안 되니 별별 생각이 일어나면서 온통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손에 아무것도 안 잡혔습니다. 어찌나 불안하던지. 가족이 연락이 안 된 채 밤을 보낸다는 건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심정일 겁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걱정으로 잠도 설친 건 당연하고요. 엄마에게 반가운 전화가 왔습니다.
"걱정 많이 했지? 여긴 괜찮다."
엄마는 우리가 얼마나 걱정을 할까 하는 마음에서 새벽에 비가 좀 잦아든 틈을 타서, 트랙터 뒤에 매달려 아랫마을에 내려와 우리에게 전화를 해주었어요. 가족이 나를 걱정해 주고 염려할 거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답하고자 노인의 몸으로 트랙터 뒤에 기꺼이 매달려 읍내로 내려와서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 연락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다렸던 엄마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렇게 삶은 서로의 믿음 속에 더 견고해지나 봅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과연 인생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요? 내 자신에 대한 믿음 또한 제일 중요한 가치입니다. 나를 믿고, 상대를 믿고 그 믿음에 부응하려는 마음. 이런 게 나를 지탱해 주고 삶아가게 하는 원천적인 힘이 아닐까요? 가족이나 친구 및 친한 지인들과의 믿음이 유지되기 위한 노력이 다소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회사 내에서 동료나 부하 직원들에 대한 믿음은 조건에 의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가능성을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해답은 모두 그 사람 내부에 있으며,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라고 코칭 철학을 정의한 ‘에노모토 히데타케’는 부하에 대한 믿음도 남다르게 표현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부하를 신뢰한다는 것은 결과에 상관없이 항상 부하를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즉, 진정한 신뢰는 좀 더 근본적이고 절대적이다."
- 에노모토 히데타게(2004), <부하의 능력을 열두 배 키워주는 마법의 코칭>, 새로운 제안 -
사람마다 믿음의 기준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신에 대한 믿음이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삶에 어떤 원칙에 대한 믿음, 내 운명을 믿는 사람 등등. 우리는 각자의 믿음대로 살아갑니다. 꾸준함에 대한 믿음도 있습니다. 내가 뭔가를 포기하지만 않고 꾸준히 행한다면 언젠가는 원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도 또 하나의 믿음입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까지는 아니지만, 함께 배우고 나아가자고 약속한 동료, 도반, 친구. 좋은 기회나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생길 때 함께 나누는 것. 모두가 상대방을 위한 관계 속에서의 믿음입니다. 나와 늘 같이한다는 믿음은 같이 잘되고자 노력하는 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니까요. 이런 믿음도 기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기준이 다르면 간혹 실망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개별화된 상대를 존중하는 성숙한 마음에서 진정한 믿음과 성장이 싹틉니다.
상대방의 신념은 깊은 대화와 행동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때론 신념과 행동이 다른 게 표현돼서 혼란스럽긴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상대가 그냥 알아주긴 힘들 수도 있겠죠. 말은 채식주의자라고 해 놓고 어느 식사 자리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행동을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의 신념을 어떻게 믿겠어요. 그러니 사람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알 수 있는 건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밖에 알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오늘 어떤 믿음과 가치관으로 살아갈까요?
태풍이 지나갔네요. 바람이 잦아들고 해가 뜨고 구름이 걷히고 있어요. 이렇게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맑은 하늘이 다시 나온다는 믿음도 그냥 자연 현상의 하나이지만 일종의 믿음 같아요. 믿음은 하나의 원칙 같은 거라고 할까요?
이건 변치 않는다는 하나의 원칙.
믿음에 대한 원칙은 코칭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