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영화를 참 좋아했다. 웬만한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게 제맛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언제 영화관을 갔는지 기억조차 가물하다.
나는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편이 아니다. 딸은 나를 안 닮아서인지 감동받은 영화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고, 어느 대목에서는 되풀이해서 웃고, 또 운다.
난 새로운 걸 좋아하는 편이고, 가족들은 주로 익숙한 걸 즐긴다.
맛집이나 여행장소도 나는 새로운 곳을 뚫는 걸(?) 좋아하고, 식구들은 지난번 좋았던 곳을 한 번 더 가려고 한다.
이런 성향에도 불구하고 몇 번을 봐도 재미있는 영화가 더러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3편까지 나온 마이클 J. 폭스 주연의 "백 투더 퓨처"이다.
주인공의 동네에는 천재지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과학자가 있다.
그는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의 반려견과 같이 사는 엉뚱하고 약간 미치광이로 인정받는 과학자이다. 그가 만든 타임머신을 타고 주인공의 과거와 미래를 오고 가면서 겪는 기발한 발상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코믹하고 흥미진진하며 스토리까지 탄탄한 영화라서 그런지 볼 때마다 신기하게 빠져드는 영화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매사에 자신이 없고, 소심한 성격이다. 평생 친구의 밑에서 무시당하면서 일을 하고 근근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안쓰러운 가장이다.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 주인공 또래인 아버지를 만난다. 역시 그때도 친구에게 괴롭힘 당하고 자신감이 결여돼 있고 표현도 못하는 모습의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의 과거 속에서 주인공은 아버지가 몰래 소설을 쓰는 장면을 목격한다. 아버지에게는 글 쓰는 취미가 있었고 공상과학 소설을 계속 쓰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소심한 탓에 표현을 못해서 아무도 몰랐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글을 쓰는 걸 좋아했던 사실에 놀란다.
그런 아버지를 만나서 주인공의 활약으로 아버지를 평생 못 살게 굴었던 친구를 멋지게 때려눕히고, 엄마의 사랑을 차지하게 되면서 인생은 역전된다. 과거의 시간 여행을 마친 후 집에 와보니 모든 게 달라져있었다.
늘 소심하고 직장 상사인 친구에게 늘 쩔쩔매는 아버지의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성공한 작가의 자신감 넘치는 멋있는 아버지가 된 것이다.
신간 소설이 발간됐다면서 새로 인쇄된 책자본을 어머니와 함께 보고 있다.
난 이 장면을 전 세편의 영화 중에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순간을 결정적으로 바꿀 것인가. 하고 재밌는 상상도 해보고 아쉬워도 해본다.
지나온 날을 돌이켜보면 이게 삶의 전환점이었구나 하는 크고 작은 순간들을 발견한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이 길이 맞는지 모른 채 지나 온 인생길을 뒤돌아보면 왜 이제야 제대로 된 길이 보이는 건지. 아. '저길로 왔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의 내가 알았더라면'이라는 류시화의 책 제목처럼 지금의 내가 그대로 과거로 돌아가서 나를 본다면 무엇을 알려 줄 것인가. 부동산과 주식 정보를 알려 줄래나.
다시 인생을 산다면 제대로 살 것 같지만, 지금의 알고 있는 것을 그때의 내가 알았을 때에나 내가 원하는 인생역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난 다시 나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선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람에게는 사고방식도 패턴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 스누피에서 찰리브라운은 늘 노란색 옷을 입고 다닌다. 찰리브라운이 "오늘은 뭔가 특별한 옷을 입어야지" 하면서 옷장을 열 때, 똑같은 노란 옷이 나란히 걸려있다. 똑같은 옷 중 하나를 선택하면서 말한다. "골랐어! 이 옷이 제일 특별하군!"
그러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의 내가 알지 못하는 이상.
결국, 변화의 시점은 오로지 지금에만 있는 것이다. 과거의 어느 시점이 나의 삶의 전환점이었는 지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 자제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를 반추하는 오붓한 시간여행 속에서 내 숨어있는 꿈도 찾고, 변화할 수 있었던 포인트도 찾아낸다면 지금의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선택의 안목을 높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