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짜리 봄밤 산책

봄밤은 일각이 천금 같아

by 라온

5월은 늘 짧다. 봄꽃들도 고작 스치듯 곁을 주다 이내 사라진다.

아름답지만 야속하 어느새 지고 만다.

5월의 신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모든 것이 싱그러움으로 물들어 간다.


봄은 새벽도 축복이지만, 밤산책은 그야말로 감성 플렉스의 장(場)이다.

봄밤, 산책을 누리다가 예전에 누군가 보내준 시가 저절로 떠올라 꺼내본다.

소동파의 "춘야행(春夜行)"이라는 시다.


봄밤은 일각이 천금 같아
꽃은 맑은 향기 머금고 달은 그늘졌네.
노래하는 누대에
소리는 가늘고 희미한데

그네 달린 정원에 밤은 깊어만 가네.
- 소식(소동파) -


소식(蘇軾), 소동파라 부르는 시인. 봄밤이 얼마나 아름답고 흘러 보내기 아쉬웠으면 일각이 천금 같다 했을까. 그 기분, 밤에 산책을 하면서 충분히 이해할 것 같았다. 곳곳에 피어있는 붉은 장미꽃 무리를 지나가면서 바람이 피부에 와닿는 상쾌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봄밤은 일각이 천금 같아..."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한 시간의 산책을 저 시의 표현대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산수는 약하지만, 궁금함은 참을 수 없는 성격이다. 괜스레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일각은 15분, 천금은 1,000냥.
1냥은 약 37.5그램이니 1000냥은 37.5kg. 금 1그램의 가치는 현재 시세로 14만 원쯤.
그럼 천금은 대략 5억 원 남짓.

한 시간은 네 번의 일각이니, 조심스레 환산해 보면 약 20억 원.


와우!

봄밤 한 시간이 20억이라니. 이래서 사람들이 봄밤을 그냥 못 지나치는 건가?

나는 지금, 20억 원짜리 산책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억지 같지만, 왠지 갑자기 만수르가 된 기분이었다.


요즘 낮에는 벌써 더운 여름의 기운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늘 아래는 여전히 시원하고, 밤이 되면 공기는 시원하고 상쾌하다.

봄날은 이제 떠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보내고 싶지 않다.


그 천금의 시간인 '지금 여기'라는 순간.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천금 같은 이 밤, 이 순간만은

조금 더 오래 머물러주었으면 한다.

5월이 얼마 안 남은 이 시점에서 귀한 봄밤의 기운을 오늘도 산책을 하면서 만끽해 보려 한다.


20억짜리 봄밤 산책.

오늘도 흥청망청 탕진하는 봄밤을 걸어볼까.


좀 천천히 걸으면 어떠랴.

20억의 귀한 봄날을 누리는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