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소걸음으로 움직인다. 사람의 커다란 모순과 업에 비기면, 아무 자국도 못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인훈, 광장 中
시대의 산출물에는 역사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녹아난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 시기를 그린 문학작품에는 전쟁의 상흔이 스며드는 식이다. 항시 학생들을 가르치며 끊이지 않았던 의문은 '왜 사람들은 이 상처를 묻어두고 살아가는가' 하는 차원의 문제에 있었다. 최근 갑작스럽게 남북 간의 이념대립에 꽂혀 관련 작품들과 연구들을 많이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이 전쟁을 '한국전쟁'의 프레임 안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더욱 거시적인 차원으로 확대해야 함을 느꼈고 베트남 전쟁까지 탐구를 넓히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인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내가 접하는 정보들은 파편화된 것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아, 나쁜 사람들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을 싫어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2018년 초 방문한 베트남은 그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곳이었다. 때마침 박항서 감독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굉장히 우호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어 주었고 South Korea를 매우 좋아한다는 말을 여러번 해주었다. 이질적이었다.
그때 느낀 기시감을 다시 느낀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이데올로기전의 확대 양상을 찾아보면서 2018년에 느낀 모순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남북베트남 간의 접전이 격렬했던 곳을 찾아야 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택한 호치민 행이었고 오늘 구찌터널을 탐구하면서 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강구할 수 있었다.
호치민 전쟁박물관
나의 투어가이드는 베트남이 미국을 대상으로 승리했다는 데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Vietnam War를 American War라고 불렀다.) 또한 그에게 미국이란, 미국의 용병이란 그저 전쟁에서 패배한 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에 더해 베트콩(남베트남에서 활동하던 사회주의자들)의 흔적들을 돌아보면서 베트남인들에게 '적'이란 미군이었고 어떤 측면에서는 미군을 불쌍히 여기기도 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가령, 부비트랩을 보여주면서 이런 트랩을 많이 설치함으로써 미국 군인들이 베트남을 매우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구찌터널. 베트콩의 요새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미군과 협력한 한국군'이란 그들에게 비교적 덜 시급한 문제일 수 있겠다고 느꼈다. 아직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 상황에서 적군의 과오를 파헤치다가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희생된 민간인들을 재조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최근 이데올로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기시감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어린 시절 당연하게 여겼던 진리들이 한순간 엎어지고 내가 생각한 '옳은 길'이 5년쯤 지난 시점에서 돌아보니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식이다. 오늘 보고 온 것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 구성한 역사일 수 있겠으나, 적어도 보는 그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는 계기였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