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는 사랑이야
겨울에 먹는 고구마는 더욱 특별하다. 이제는 밖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구마 기계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에 엄마 손을 잡고 길을 가다가 고구마 기계를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종이봉투 안에 담은 뜨끈한 고구마를 품에 가득 안고 걸으면 손난로만큼 따뜻했다. 집에 와서 종이봉투 그대로 펼치면 까맣고 투박한 고구마를 엄마가 껍질을 까주셨다. 그제야 본래 모습을 드러낸 고구마는 잘 구워져서 투명한 노란빛을 띠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걸 호호 불면서 먹으면 뜨겁고 달았다. 어린 딸이 맛있게 먹는 데 집중했다면 엄마는 껍질 덕분에 손이 까매졌다. 그러고 보면 엄마의 사랑이 없던 시절이 없었다. 아득한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얼마나 맛있어? 아, 맛있다야? 아니면 아-맛있다야?”
나는 어릴 적부터 구수한 입맛을 가졌다. 고구마, 두부, 옥수수를 야무지게 먹을 때면 언니는 신기한 듯 물어봤다. 자기에게는 그저 그런 음식이 동생은 맛있다고 하니까 궁금해했다.
“언니야, 고구마는 always 아-맛남이야!”
그중에서 고구마는 단연 1등이다.
주말에 시댁을 다녀오면서 고구마를 받아왔다. 시할머니는 90세를 훨씬 넘으신 연세에도 파, 무, 고구마, 부추 등등 직접 농사를 지으신다. 지난번에 한 상자 가득 받아 온 고구마를 다 먹었다고 하니까 더 챙겨 주고 싶어 하셨다.
“물 고구마 줄까? 밤고구마 줄까?”
“밤고구마 주세요.”
진정한 고구마 마니아라면 물 고구마, 밤고구마, 호박고구마 가리는 것이 없지만 남편은 무조건 밤고구마 파다. 그러다 보니 나도 요즘에는 밤고구마가 훨씬 좋아지고 있다. 어머님과 할머니께서는 고구마 이외에도 무, 김치, 갈치, 갈비찜까지 바리바리 챙겨 주셨다.
아침부터 고구마 굽는 냄새가 집안 가득하다. 나처럼 고구마를 사랑하는 강아지 때문에 자주 굽는다. 사료만 주면 슬쩍 본 다음에 ‘흥!’하고 지나쳐 버려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걸 추가해서 주는데 고구마를 제일 안 질려한다. 역시 나의 강아지답다.
고구마를 언제 줄 거냐고 쳐다보길래 “식으면 줄게.” 말했더니 알아듣고서 기다린다. 사랑아, 그거 아니? 안 식은 고구마 껍질을 까면서 내 손가락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리고 아직 식사 시간이 아니잖니.
가끔 고구마를 오래 보관하면 싹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고구마는 싹을 도려내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살면서 힘들었던 기억, 상처들도 고구마의 싹처럼 도려낼 수 있다면 좋겠다.
연말이 다가오니까 주변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1년 동안 안 좋은 소식이 있었던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의 상흔들도 도려낼 수 있기를 바란다. 각자의 소울푸드를 먹으며 따뜻한 12월을 보내면 좋겠다. 새해에는 더 좋은 날이 가득하길.
기다리다 못해 삐친 사랑이에게 고구마를 대령해야겠다. 엄마가 까주시던 고구마 껍질을 나도 사랑이에게 해준다. 사랑이 전달되는 기분이다. 고구마의 달달한 향기 덕분에 ‘고구마 테라피’ 를 하게 된다.
"고구마 냄새가 끝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