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올해 계획 중에는 영화 많이 보기가 포함되어 있다. 한때는 저녁마다 영화 보는 게 낙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소홀해졌다. 짧은 시간 안에 깊은 울림을 주는 건 영화밖에 없는데 뜸하다 보니 왠지 공허함마저 들었다.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영화가 좋다. 다 보고 나서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있고 자극성이 1도 없는 영화를 선호한다. 지금 보면 좋을 것 같은 느낌이 오는 날, 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를 보게 되었다.
청소 일을 하면서 은근히 멸시받을 때도 있지만 긍정적이고 심성 고운 해리스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해리스는 일하는 집에서 디올의 500파운드 드레스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반짝이는 드레스를 보는 해리스의 눈은 나이를 떠나서 꿈을 꾸는 모두의 눈을 상징했다. 꿈이 드레스라고 하면 자칫 허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해하게 된다. 드레스를 사기 위해서 돈을 모으고 그러다가 한순간에 잃기도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해리스 편이다. 간절한 해리스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갑자기 여러 군데서 돈이 생기게 되고 곧장 파리로 가서 디올 매장에 입성한다. 그러나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무시당하게 되는데 다행히 노신사의 배려로 디올 패션쇼를 보게 된다. 가장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돈 많고 무례한 여자가 차지하여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사게 되는 해리스. 그런데 제작 기간이 2주가 걸린다고 한다. 곤란해하는 해리스에게 옆에 있던 남자 직원 포벨은 자기 여동생 방에서 지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디올 드레스를 사려고 왔다가 파리에 머물게 된 해리스에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어쩐지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파리에서의 해리스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빛이 났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노신사와 데이트도 하고 디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해리스를 좋아하게 된다. 영국에서의 일상과 다른 2주를 보내는 해리스는 자신의 꿈을 좇아서 갔던 파리에서 다른 사람의 꿈도 찾아주기까지 한다. 하마터면 디올 드레스 못 맞추고 영국으로 돌아갈 뻔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끝내 해리스는 당당하게 드레스를 품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오자마자 한 번도 입지 못한 드레스를 빌려주게 되는데, 이 또한 해리스의 성격이 드러난다. 어떻게 갖게 된 드레스인데 쉽게 빌려준단 말인가. 나라면 절대 안 빌려줬을 것이다. 해리스에게 단순히 드레스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이니까. 그리고 빌려 입는 사람의 행동으로는 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하다못해 음식물이라도 묻혀올 것 같은 불안함.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사건은 터진다. 불이 붙어서 처참해진 드레스를 보고 해리스만큼 (마음으로) 울었다. 속이 상해서 몸져누운 해리스를 보며 누군가는 “드레스 때문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드레스가 아니다. 한 사람의 소중한 꿈이다. 해리스의 일상을 지켜보면 드레스가 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꿈을 향한 눈빛을 보면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불이 붙은 디올 드레스는 덕분에 신문에 크게 나오게 되고, 파리의 디올 직원들도 보게 된다. 이제 영화답게 결말은 아름답다. 이를 본 디올 매장 사람들은 해리스가 첫 번째로 갖고 싶어 했던 드레스 ‘템테이션’을 선물하게 된다. 돈만 많고 인성은 별로였던 부인이 망해서 이 드레스를 사지 못하게 되어서다. 그리하여 드레스는 해리스의 것이 된다.
해리스가 고급 드레스를 입고 갈 곳은 딱히 없다. 그런데도 드레스를 갖게 되는 해리스를 보면서 나도 같이 기뻤다. 꿈을 이루었으니까. 때마침 중요한 모임에 갈 때 해리스는 이 드레스를 입게 된다. 옷이 날개란 말이 있듯이 해리스는 디올 드레스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타고난 품성과 우아한 드레스는 해리스를 더욱 돋보이게 해줬다. ‘드레스가 뭐라고’가 아닌 해리스가 입은 드레스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꿈에 대하여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영화는 ‘드레스’라는 눈에 보이는 꿈의 상징을 보여준다. 꿈을 꾸고 이루기 위한 사람의 눈빛은 나이를 막론하고 생기가 넘친다. 이루는 과정은 당연히 힘들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게 꿈이 아닐까. 해리스를 보면서 꿈을 위해서는 때론 당차게 나아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극적인 성격의 해리스가 드레스 하나만 보고 파리로 훌쩍 가버릴 수 있듯이 꿈을 향해서는 대차게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는 끝났지만 내 꿈의 여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꿈은 꿈일 뿐인 게 아니고 이루라고 있는 게 꿈이다. 간절한 만큼 행동하게 만든다.
디올 드레스가 꿈이라는 여인에게 뭐라 하지 말길. 누군가의 꿈일 수 있으므로. 해리스처럼 자신의 꿈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멋진 영화 한 편으로 마음이 꿈으로 물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