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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여름 Jan 18. 2024

가끔은 무기력해도 괜찮아

그럴 때 있잖아요



감정에 기복이 있듯이 생활에도 기복이 있다. 새해가 시작되고 으쌰 으쌰 하던 내게 별안간 무기력이 찾아왔다. 신나는 것이 없고 좋아하던 것도 미지근해졌으며 만사가 귀찮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놓고 할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만 해도 집 청소를 말끔히 했으니까. 다만 정리와 청소는 다르다. 청소기를 밀고 물걸레로 바닥을 닦은 후에 손걸레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닦아냈다. 현관에도 먼지를 쓸고 닦으며 내 눈에만 티가 나는 집 청소를 하고 나니 다시 기운이 빠졌다.  글쓰기는 띄엄띄엄하고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정말 왜 이럴까?’ 했다. 이유가 없는 일은 없을 거라며  원인을 찾으려고 생각을 쥐어짜본다. 그중에서 건강에 대한 걱정이 반은 차지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받았던 수술들이 차례차례 다시 고장이 난 것처럼 되돌아온 것 같다. 앞으로 내 몸에 또 어떤 변화들이 생길지 모를 두려움과 통증이 동반된 영향도 있었다. 생각의 반은 건강으로 꽉 채워져 있고 나머지도 작고 얕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걱정 꾸러미들이다. 나는 작은 걱정 앞에서조차 쩔쩔매는 때가 많다. 한 살 더 나이 먹는다고 사람이 쉽게 변하는 법은 없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는 중이다. 지난 일주일은 심경의 변화에 당황하면서 빨리 누그러지기만 기다렸다. ‘나 왜 이러지?’만  생각하면 더 심각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생은 참 재미있어. 역시 살아볼 만해.’ 했었는데 이게 뭐람.

걱정을 하면 걱정 안으로 더 파고든다. 큰일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힘든 날들에는 약도 없다. 


문득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나에게만 벌어진 일이 아닐 거라고 ‘나만 그렇겠어?’ 슬쩍 밀쳐내 본다. 예전에는 혈액형으로 성향을 파악했다면 요새는 MBTI로 나뉘곤 한다.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과 있을 때 편안함과 동시에 내가 유별난 게 아니라는 안도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책에서 찾곤 한다. 글로 읽게 되면 더 크게 다가오는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읽게 되는 책과 또는 읽고 있던 책에서 다정한 글을 마주하면 안심한다. ‘그럴 수 있는 거네.’ 하면서.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어렸을 적부터 샤워를 하고 화장품을 신경 써서 바르고, 영양제를 챙겨 먹고, 주변을 잘 정돈하면서, 사람들과 주기적으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무난하게 사는 일들이 버겁게 느껴진다고 했다. 일상 속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어렵고 힘들다고 덧붙였다. 나는 글쓴이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런데 이 트윗에 우울증이다, 다 귀찮으면 대체 어떻게 사느냐는 의견들이 달리고 병원 상담을 추천하기도 했다. 그중 몇몇은 의견이 달랐다.

“이 사람은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거다.”

“작은 일 하나하나 신경 쓰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 봉현 - 


이따금 삶이 버거울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런 중에 누구는 더 부지런해지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지금까지도 잘해왔다고 한다. 성향의 차이겠지만 나는 후자다. 힘든 와중에도 자신을 돌보고 할 일을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 모두 책임감 있게 사는 사람들이니까. 사실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먹기 싫어도 아침을 챙겨 먹고, 짧게라도 운동을 하고, 강아지를 살뜰히 보살피며 집을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잘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기분이 그럴 뿐이지 그럼에도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으니까. 

‘나 왜 우울한 것 같지?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호들갑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건 그럼에도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있는 나를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이제는 내가 나를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해주기로 했다. 오늘도 나를 잘 보살폈고, 가족들도 잘 챙기는 내가 대견스럽다. 

그까짓 무기력한 마음은 어느새 스르르 사라질 테니까. 




영화 '브리짓 존스 베이비'는 무기력했던 와중에 재미있게 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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