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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린 Aug 14. 2020

안개의 고장

춘천에서


 외할머니부터 엄마, 나까지 3대에 걸쳐 춘천에서 나고 자랐다. 토박이라는 단어가 너무 잘 어울리는 집안이다. 남들은 춘천 하면 툭하고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데 나에게 이보다 더 낭만 없는 도시는 없다. 그래서 틈만 나면 다른 도시와 나라를 들락거린다. 이 지겨운 도시를 잊고 싶어서 떠난 40일간의 여행에서 우습게도 나는 더욱 춘천을 떠올렸다. 눅눅한 호스텔 안. 티비에는 날씨 예보를 하는 뉴스가 연신 보도되고 있었다. 스위스에서 머무르는 3박 4일 동안 쭉 짙은 안개가 껴 있을 것이라는 예보였다.  맑은 날 정상에 올라가면 장관이라던데 못 봐서 어떡해요. 투숙객들의 앓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지만 안개를 뚫고 리기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 Mt. Rigi >
< Mt. Rigi >


 산악열차가 비탈길을 올라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안개의 품으로 들어간다. 원근감의 극치다.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인다. 한 발자국 걸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열 발자국 다가가면 엷은 실루엣을 드러낸다. 장관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이는 것이지. 오랫동안 앞도 뒤도 안 보이는 안갯속을 헤집고 춘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춘천 >


 춘천은 본래 안개의 고장이다. 분지 지형에 호수로 둘러싸여 있으니 새벽이면 어김없이 안개가 껴 있었다. 두 부부가 네 가족이 되고 처음 얻은 집은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 앞에 위치한 아파트였다. 강둑 건너편에는 봉의산이 반쯤 헐벗고 있었다. 베란다에 앉아 안개를 걸치고 있는 산을 바라보면서 엄마는 꼭 여자가 누운 모양 같다고 했다. 아침에 등교할 때면 강둑 근처에 대 놓은 아빠 차를 타러 동생과 조르르 걸어갔다. 항상 안개 때문에 차를 찾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했다. 잠이 덜 깬 채로 안갯속을 걷다 보면 몽롱하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했다. 계절 냄새를 맡듯 새벽안개의 축축한 냄새를 맡으면서 걸었다. 그렇게 계절과 상관없이 묵직하게 가라앉은 안개는 유년시절 일상이 되어 거처를 옮긴 뒤에도 어딘가에는 분명 안개가 껴 있을 꺼라 짐작했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등성


 안개를 진득하게 보고 있으면 뒷편에 있는 풍경이 배어 나온다. 나는 그 신비롭고 여유로운 안갯속이 좋다. 10여 년이 지나 다시 강이 흐르는 아파트 앞으로 이사 왔을 때 새벽안개의 부재는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안개는 내가 춘천을 떠올리는 매개체다. 어느 나라나 도시를 가더라도 춘천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안개다. 안개의 부재를 애석해하며 지인과 대화를 나눴고, 고속도로와 경춘선이 뚫리면서 움푹 눌려있는 도시에 바람길이 생겨서 안개도 자연스레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안개처럼 모호해진 추억 가운데서 춘천을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서울로 가는 ITX안에서 김영하 작가의 말을 들었다. '우리가 쉬는 날 호텔로 향하는 이유는 집에 있는 일상의 상처와 기억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다.' 근래 들은 것들 중에 가장 와 닿는 말이다. 나에게 춘천이라는 도시는 수많은 추억들로 만들어진 오랜 집 같은 존재다. 춘천 어느 곳을 가도 일상의 상처와 기억이 곳곳에 점철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있는 지금 안에서 안개의 고장을 생각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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