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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린 Jun 01. 2021

향자

혜린에게

 

 매 해 편지 보내주어서 고맙습니다. 이맘때쯤이면 자꾸만 우편함을 쳐다봐요.

 저는 그동안 제가 부모님을 빼닮은  알았어요. 아시다시피  눈은 아빠처럼 빛이 나고 뺨은 엄마처럼 발그레하잖아요. 그런자꾸만 이모처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져요. 모든 사람들은 조응하는 관계라고 하던데 이모의 일부가 거울이 되었나 봐요. 작년에는  사랑 앞에 서서 스스로를 의심했던 시간들로  해를 보냈어요. 이모랑 있었던 시간들 안에서는 있을  없는 일이잖아요? 이모한테 받은 사랑은 크기를 가늠할  없기 때문 일거라 생각했어요. 의식하지 못한 채로 사랑받게  주어서 감사합니다.

 질문에 답을 하자면 제가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건 양념게장 때문이었어요. 어떤 날이면 이모가 양념게장을 내어주셨잖아요. 어린 마음에 이모부 주려고 남겨놓은 게장에 손을 댈 때면 낯선 얼굴로 저를 꾸짖으셨어요. 꼭 이모부께 주려는 것에 단호했어요. 그게 마냥 서운했는데 이모랑 떨어져 지낸 지 10년이 지나서야 문득 그 양념게장이 떠오른 거예요. 이모부가 술에 취해 다툰 다음날에도 이모부를 위한 게장은 꼭 있더라고요. 사랑이구나. 시시하지요 게장이라니.


혜린 드림.


*


 향자는 외동아들과 알콜 중독자 남편을 가진 나의 이모다. 향자의 오랜 보살핌 속에 자랐지만 내가 아는 건 이름 석 자와 단출한 문장 하나뿐이다. 몇 해 전 알게 된 정보가 하나 있는데, 향자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과 거리가 있는 공장으로 출근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나도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정보의 출처는 모처럼 모인 여덟 형제가 벌인 술판이었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다!!!”

잠결에 깨어 문 가까이 귀를 댔을 때 처음 들은 말이다. 기름칠 안된 문고리를 살며시 돌리며 문을 열었다. 쇠 긁는 소리가 났지만 어른들의 소리에 금방 묻혀버렸다. 이모들과 삼촌들은 날 선 손가락으로 서로를 가리키며 언성을 높이고 있다.


“엄마가 막내아들 초등학교 보낸다고... 흑.. 나도 어린데!! 나도!! 나도 학교 가고 싶었다고!”


 이모는 어린 시절 잘린 가방 끈을 육십 넘어서까지 잡고 있었다. 향자의 엄마는 식솔들이 조르르 앉은 식탁에서 고기반찬이 딸들 앞으로 가면 으레 아들들 앞에 놓는 사람이었다. 향자의 아픔은 가난과 사상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불행이다. 누구든 깊이 품은 슬픔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향자는 술만 마시만 역류하듯 아픔이 비집고 나오는 것 같았다.


  향자는 아름다웠다. 길게 늘어트린 곱슬머리는 유독 갈색 빛을 띄었고 아무렇게나 난 주근깨들도 흩뿌려놓은 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아름다움을 가지고, 소외받던 집 밖에서 만난 남훈을 이모는 사랑했다. 남훈은 중장비를 끌며 돈을 긁어모으는 마을의 유지였다. 이모네 집은 아르누보 스타일의 가구들로 가득했다. 온갖 꽃 장식으로 가득한 가구들은 이모와 제법 잘 어울렸다. 남훈이 알콜 중독자가 된 시점을 짚어보자면 아이러니하게 둘 사이에 아들이 생긴 후였다. 향자와 남훈 사이의 일을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후에 향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향자는 향기 없는 꽃 사이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주로 티비를 틀어놓고 창밖을 보는 데에 시간을 쓰다가 남훈이 오면 어르고 달래서 재우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남훈이 일보다 술에 쏟는 시간이 많아지자 향자는 또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카트를 끌고 아파트 입구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기도 하고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더 이상 향자의 보살핌이 필요 없게 될 쯤에는 식당을 전전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스물이 넘어서야 엄마와 함께 이모를 찾아갔다. 이모는 이제 이모부와 살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뿐인 아들은 예고 없던 일로 결혼을 하게 됐고 이렇게 된 이유가 다 엄마 때문이라고 불행 아래서 컸기 때문이라고 원망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줄글처럼 말하는 이모 앞에서 나는 애먼 가구들만 보았다. 나무 시트지가 가장자리부터 벗겨진 책상 위에 편지지가 이리저리 겹쳐져 있다. 이모는 아직까지 식당일을 하며 월세방 한 켠에서 티비를 틀어놓고 편지를 쓴다고 했다.


*


혜린에게.


 꽃가루가 부유하면 어쩔 도리없이 네 생각이 나. 5월엔 너의 생일이 있지. 일 년에 한 번 편지를 쓰면서도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가 먼저 생각난다. 아픈 데는 없지? 작년에 안식년 가지면서 여행 간다고 했을 때 이모가 용돈 하나 쥐어주지 못했던 게 미안해서 마음에 남네.

 요즘은 네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지 궁금하다. 이모는 이제야 외로움을 느낀다. 사실 그 안에 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어. 싸우기 바빴거든. 시간이 지나서야 외로움밖에 서서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됐어. 감정과 나란히 설 수 있게 됐다는 말이야. 나이가 들었나 봐. 사랑받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해. 사랑을 해야 하고. 불안할 때 사랑을 이용해 보기도 하고. 문득 궁금해진다. 처음 사랑을 느꼈을 때가 언제였니. 매번 어떤 질문으로 끝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 오늘은 이걸로 해야겠다.


*


 향자의 말은 낱말로 흩어져 마음 이곳저곳을 떠다녔다. 향자가 문득 떠오른 밤이면 바짓가랑이 붙잡듯 아주 급하고 처절하게 깍지를 껴 기도했다. 제발 행복하게 해 주세요. 향자를 생각할 때면 아무 신이나 붙잡고 애원했다. 수취인 없는 기도를 할 때마다 나는 교리 없는 종교인이 된다. 기도는 진심이고 오롯이 향자의 행복만을 바랬다. 무엇이든 진심이면 된다지만 진심 없는 기도가 어딨겠는가. 듣는 이 없어도 기도를 한다. 그래도 한다. 아무 날처럼 아침이 밝아온다. 외침은 희미해지고 나는 다시 무결한 무교인으로 돌아온다.




* <향자>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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