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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뚜 May 26. 2024

나의 시골. 할배

이른 새벽, 여전히 나는 짧은 잠을 잔다.

오늘처럼 너무 일찍 눈 떠진 날은 젠장 또 깼네 싶은 낭패감이 든다. 뒤척뒤척 전 굽듯이 몸을 뒤집다가 뜬금없이 날아든 기억이 쏟아진다. 그 시절이 짙어진다.


지금 계산해 보니 내 나이 8세, 따지고보면 6년과 몇개월쯤을 조금 더 산 나이. 그때도 잠귀가 밝아 닭울음소리에 잠이 깨는 아이였다. 시끄러운 소리에 설핏 잠이 깨다 당혹감에 눈을 질끈 감는다. "같이 죽자. 이럴거면 같이 죽자..," 따위의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다.


왜 나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매년 수차례 옷가방을 들고 시외버스를 타고 먼길을 달려 외갓집에 도착하면, 짐가방 들고 서서 엄마와 통화중인 외할매의 말에 귀를 쫑긋거린다.  "괜찮다. 아~가 지혼자 잘 논다. 신경쓰지마라." 따위의 말이 오가고 나는 눈치꾸러기처럼 할매 입만 쳐다본다. 할매와 어린 외손녀는 며칠간의 동거가 시작된다. 온종일 근처 학교 운동장과 정미소를 누비다 밤이 되면 할매 할배의 중간을 파고 들어 잠드는 시간이 지나간다.


외할배는 선비다. 멋쟁이다.

기억 속의 할배는 항상 한가지 모습으로 남아있다. 하얀 삼배도포를 입고 풍채좋은 몸과 하얗고 반듯한 이목구비로 정좌해 앉는다. 앞에는 흰 화선지가 곱게 펴 있고 문진으로 가장자리를 누른다. 연적에서 물을 톡톡 떨어뜨리고 먹을 간다. 붓은 털이 가늘고 하얀 것이 어린 눈에도 참 좋아 보인다. 길죽한 붓대를 손에 쥔 할배는 일필휘재로 오른쪽부터 세로로 반듯하니 한문을 써내려간다. 그야말로 선비의 풍모이다. 그 모습에 홀려 옆에 슬그머니 앉으면 할배는 씨익 웃으며 먹을 내 손에 쥐어준다. 먹물이 튈까 조심조심 아래위로 갈아대는 나는 중책맡은 조수가 된다. 그때 만큼은 혼자 보내진 외갓집에서 선택받은 내가 된다.


그 나이의 어르신들이 그랬겠지만 일제시대와 6.25를 겪은 사연많은 삶이다. 할배도 6.25때 산에서 굴러 다리를 조금 전다. 부자집 장남으로 고생없이 자라던 할배는 험난한 시절을 겪으며 다리도 다치고 재산도 많이 잃는다.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정미소 기술을 배워오고 기계를 수입해 꽤나 큰 규모의 정미소를 시작했다고, 이건 나중에 주워들은 이야기이다. 내 눈에 할배와 정미소는 별개였기에 나중에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충격을 받기도 했다. 정미소가 할배꺼였나?  


어린 내가 본 정미소는 할매꺼였다. 맨날 곡식 가루가 햇볕에 뽀얗게 날리는 정미소의 일층과 이층을 오르내리고 기계를 돌리는 건 외할매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나는 빛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2층 창을 통해 쏟아지던 빛과 그 빛을 타고 오르는 곡식 가루의 뽀오얀 모습이 뇌리에 아직도 선연하다. 삐걱이며 돌아가는 기계와 닳아 흐물해진 체인과 껍질 벗고 가마니로 쏟아지는 하얀 쌀의 따스함이 정미소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구석구석 쌓인 지푸라기 더미에 몰래 낳아둔 닭알을 찾아내는 건 내가 즐기던 놀이였다. 정미소는 내 인생 최초의 아름답고 따스한 풍경이었고 놀이터였다.


할매에게 정미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뼈만 남아 자그마한 할매는 재바른 몸놀림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정미소 일이 없을 때는 강변으로 나가 쑥도 뜯고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버려진 빈병도 모은다. 온종일 움직이는 할매는 살 붙을 여가가 없다. 반대로 할배는 걸음도 선비걸음에 누가봐도 배짱이이다. 언제나 깨끗하게 닦아 잘 정비된 자전거를 타고 이른 아침 읍내로 나가면 해그름이 되어야 돌아온다. 탁주한잔 하고 신작로를 따라 페달을 밟는다.


할배가 돌아오면 마당이 분주해진다. 저녁상이 준비되는 시간, 사랑방 문이 활짝 열리고 긴 다리 네개의 텔레비전이 문앞으로 돌려진다. 아랫 마당으로 평상이 옮겨온다. 할매는 외삼촌을 보며 "얘~  모기물린다. 불 피워라." 하면 부지런히 외삼촌이 말린 풀에 불을 붙이고 평상아래서 연기가 올라온다. 나는 그 냄새가 매캐하면서도 좋았다. 평상에서 된장찌게에 밥을 비비고  작은 접시에 내몫의 계란후라이가 배분되면 사랑방 텔레비전으로 연속극을 보며 밥을 먹는다. 깊어지는 여름밤 긴 식사가 이루어진다. 식사 후 통째 내어지는 수박은 마당의 우물에서 길어낸 냉수에 미리 담겨져 있던 덕에 시원하고 달다. 잊을 수 없는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너무 다른 두사람은 떠 맡겨진 어린 외손녀를 가운데 재워두고 오늘도 부부싸움이다. 그때의 나는 두려웠다. 저러다 정말 두사람이 죽어버릴까 봐. 내가 젤 좋아하는 두 사람이 깜박 졸다 깨면 죽어 있을까 봐. 눈은 감고 자는 척은 했으되 그들을 지키기 위해 잠들지 못했고, 자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더랬다. 어린 나는.


이제는 그게 사소한 부부싸움이며 할매의 넋두리였다는 걸 알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큰 일이었다. 얘기를 들으면 가슴 아플까 봐 엄마에게 말하지도 못했을 만큼 큰 일.


그랬던 할배, 할매가 이제는 없다. 오래전 우리곁을 떠났다. 그때의 할배보다 더 많은 나이의 되어버린 내 아빠는 그들처럼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다. 사는 건, 아무 것도 확실하거나 정해진 게 없다. 단 한가지 누구도 피하지 못하는 죽음 외에는.


오늘 새벽, 뜬금없이 할배 생각이 났다. 덕분에 긴 추억여행 중이다. 잊고 있던 것들의 선명한 기억, 무섭도록 익숙한 기억이 여전히 머릿속에 숨어 있었다.

나에게 시골이란 언제나 외갓집이고, 정미소였으며 먹과 벼루이며 붓 쥔 할배의 손이다. 할배의 넓은 등이며 내가 자주 차지하고 앉던 할배의 무릎이다. 아스라한 온기이며 따뜻한 사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존감의 근원이다. 나는 예쁘고 사랑받는 아이였다. 언제나 그곳에서는. 그 확신의 이면에는 할매가 있었고 할배가 있었다. 그랬구나. 나는 사랑받는 예쁜 아이였었구나.


아직 어둑한 새벽,

할배가 보고 싶다. 정미소 2층에서 창을 올려보다 돌아보면 그곳에 할매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면 진짜 좋겠다.


나는 시골을 잃어버렸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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