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문이 열리고 초롱한 눈에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쳐다본다.
"혼자있어요?"
"네."
"이거, 우리가 농사지은 건데. 베트남 오이. 맛있다. 한번 먹어봐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오늘도 나는 직원복지를 누리는 중이다. 신자분들이 드문드문 가져다 주는 먹거리는 건강하거나 맛난 것들이다. 사랑을 담아 오는 봉지 하나, 가끔 손에 쥐어 주는 오이 두개나 고추 몇개는 단연코 이 직장 최고의 복지다. 집에 가져간 오이는 손 한뼘 길이로 짤막하며 처음보는 모양의 오이였다. 베트남 오이라는데 많이 낯설다. 깨끗이 씻어 껍질째 와작 씹으니 껍질은 앏고 달다. 오이 특유의 시원함으로 갈증도 해소시켜 준다.
엄마는 집앞 공터를 분양 받아 작은 텃밭 농사를 짓는다. 꽤 연식이 되어 이제 제법 농꾼이 되었다. 해거름에 상추랑 고추, 오이를 따서 저녁반찬으로 내 놓으면 어떤 성찬도 안부럽다. 신선해서 더 배가 되는 맛에 절로 앓는 소리가 난다.
엄마가 농사 지은 오이는 참으로 못생겼다. 본적 없는 비주얼의 빵빵함을 자랑하며 삐뚫빼뚫 제 멋대로다. 오이는 정성이 반이요 어설픈 농꾼의 실력이 반으로 만들어낸 추상화이다. 보이는 것과 달리 맛은 좋다. 역시 품 팔이 값은 있는 모양이다.
엄마 집에서 누리는 복지는 오일장이다. 여간해서 만나기 힘든 오일장을 도시에서 만나는 이런 행운은 복지 중에 복지라 할 만하다. 대단지 아파트에 정기적으로 여는 그런 장과는 판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오일장은 전국을 도는 상인들이 만들어 내는 만물상이다. 농사지을 씨종자부터 강아지, 닭까지 없는 것이 없다. 최근에는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뻥튀기 아저씨도 있었으니 여기는 재미난 관광코스이기도 하다. 중간 중간 갓 구운 전을 파는 가게도 있고, 해장국 한사발에 소주 한잔 할 집도 있다. 채소전에 나란히 누워 미모를 자랑하는 오이는 먼 곳에서도 눈길을 끄는 나의 최애 템이다. 검은 봉지 한 가득 몇천원이면 족하다. 풍성하니 좋고 맛은 덤이다.
나는 엄마집으로 이사를 왔다. 노쇠한 부모님은 자꾸 아프고 나는 외롭고 고단하여 살림을 합쳤다. 떨어져 산지 오래 되었으니 많이 불편하리라 각오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다 큰 딸의 위장 사정이 걱정이다. 볼때마다 뭐라도 먹으라는 잔소리같은 사랑을 남발한다. 오늘 아침은 식탁에 장날 사온 오이가 맛있게도 무쳐져 된장찌게 옆자리를 차지했다. 편찮으신 아빠가 한수저 한수저 조심히 퍼 올리는 밥 위에 오이가 올랐다. 오이에 눈길이 가고 엉덩이는 어느새 식탁의자에 놓인다. 잘 먹지 않는 아침식사인데 홀린듯 수저를 들고 목구멍으로 넘긴다. 다른 날과 다르게 아침 식사가 참 잘 넘어간다. 엄마의 사랑이 넘어간다. 이래서 내가 오이와 된장찌게의 조합을 사랑한다. 모처럼 든든한 아침식사 후 출근길에 오른다.
베트남 오이면 어떻고 국산 오이면 어떤가? 오이라는 이름을 단 모든 것이 좋다. 시원하고 아삭한 것이 참 좋다. 품종 계량으로 아삭이 고추도 나오지만 아삭한 것은 오이를 따라올 것이 없다. 얘기하다보니 또 침이 고인다.
이 아침, 밥 그릇 비우고 출근하는 오늘,
오이야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