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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뚜 Sep 09. 2024

내가 좋아하는 시간


약속도 해야 할 일도 없다.

푹 쉬고 싶은 시간, 쉴 수 있는 시간.

피곤에 쩐 몸은 밤새 뒤척이며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한다. 쉬고 싶어서 노렸던 시간이건만 쉽게 쉬어지지 않는다. 해열진통제를 삼키고, 침대 머리에 베게를 겹쳐 등받이 삼고 누운 뒤 의미없이 켜둔 티브이 채널만 돌려댄다. 아무래도 리모컨 건전지의 운명이 오늘 안에 끝날지도 모르겠다. 부지런한 손가락 덕분에.


이런 시간이 좋다.

바쁜 것 하나 없고, 꼭 해야만 하는 일도 없고, 나를 찾는 사람조차 없다. 조용하다. 좋다. 좋은데 낯설다. 잠들기 쉽지 않으나 시간을 즐기는 중이다. 오래 누워있었더니 허리도 아프고 스멀스멀 뇌가 가동하기 시작한다. 고역이 되는 시간에는 벌떡 일어나면 된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면 되는 일이 있다. 자발적 청소로 집이 환골탈퇴한다. 공간이 깨끗해지며 질서를 잡아간다. 바쁜 일과에 흐트러졌던 물건들이 제 자리를 찾아간다. 이런 규칙성이 좋다. 각자의 자리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보기에 편안하다. 이 시간과 공간이 주는 만족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거의 두달을 동동거렸다.

휴일도 없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보니 가끔은 도망가버릴까 하는 어처구니 없고 실행할 수도 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업무도 삶도 모두 버거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버티니 끝은 왔고 무사히 지나가기는 하더라.

고조되던 긴장은 뚝 잘려버린  절단면 같았고, 무너진 긴장감에 오히려 내 몸에 탈이 났다. 바스라질까봐 겨우 버티던 정신도 무너졌다. 아프다. 몰아붙였던 시간에 대한 값을 톡톡히 치르라는 듯이 아우성이다. 잘 끝났으니 되었다고 위로하지만, 사실 몸도 마음도 혹사를 당했으니 괜찮으면 이상한 거겠지.


대학도 4년이면 졸업인데, 인생의 큰 해일이 지나간지 4년째이다. 이제 졸업 할 때도 되지않았나? 그해 8월에는 그와의 마지막 여행이 9월에는 영원한 이별이 있었지. 그것은 돌아돌아 주기적으로 내 심장을 도려낸다. 그렇게 네번째 맞는 9월이다. 올해는 바빠서 기억할 시간도 없었고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고된 업무로 인해 마음이 힘든 시간은 명함도 못 내밀고 지나갈 줄 알았다. 유독 바빴던 이번 여름은 끝이 났다.


오랜만에 맞는 조용한 휴일.

나는 약을 먹고 누워 아픈 전신의 아우성을 듣는다. 모르는 체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던 그 해, 그 시간은 깊은 기억 속으로 숨겨 두었던 것을 들춘다. 아파 누운 머리는 여전히 고요 속에 소란하고 쌓아둔 시간의 두께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쌓아 감춰 두었던 그날의 기억이 날것으로 팔딱인다. 그래서 그랬다. 벌떡 일어나 청소를 시작했다. 깨끗하니 좋았다. 만족감에 흐뭇하던 머리는 아픈 전신의 아우성에 번쩍 정신이 든다. '아차차, 나 아파서 약 먹고 누워 있었지.'  온종일 한 몸이었던 침대로 돌아간다. 쉬어야겠다.


두달만의 휴일은 느긋하다.

몸은 휴일인데 기억이 소란하다. 그래도 그 해를 추억하며 조금 더 그를 기억하는 이런 시간도 좋다. 어차피 잊지 못하는 거 예쁜 추억이라도 꺼내 보자 싶다. 그렇게 꺼내어진 추억, 그것은 슬프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도 나는 좋다. 살아 있으니 힘들고, 살아 있으니 슬퍼지는 것 아니겠나.


모든 시간은 다 좋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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