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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Dec 02. 2024

결혼 생활

뻔한 변명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나는 거짓말을 정말 싫어한다. 의뭉스럽고 겉모습과 달리 뒤에서 딴말하고 딴짓하는 사람들은 비겁함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유치원 교사 시절 아이들이 발뺌하며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으로 천연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 나는 아이들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보다는 들킬까 봐 앙다무는 입이라던지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감탄사라던지 괜한 피곤한 척하는 행동에 더 집중했다. 조막만 한 손을 비비기도 하고 꼭 맞잡거나 손에 자꾸만 생기는 땀을 쓱 닦아내는 모습은 무척 귀엽기도 또는 안쓰럽기도 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3번의 기회까지는 눈감아주었다. 


보통 거짓말을 할 때면 말이 많아진다. 스스로 거짓말을 들킬까 봐 자기도 모르게 괜한 변명을 늘어놓는 거다. 말하는 사람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바로 알아차린다. 너 또 뭐 했구나?

우리 아버지가 엄마 앞에서 유독 말이 많아지면 엄마는 대번에 눈치를 챘다. 어디 간다 하고 또 할머니댁을 갔다던지, 몰래 물건을 구매했다던지 등등이 그 변명이 숨기고자 하는 진실이었다. 대체 왜 들킬만한 행동을 굳이 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걸 아주 가끔 우리 남편도 한다.

남편이 거짓말을 할 때는 보통 되게 피곤한 척을 하는 추임새가 동반된다. 그가 나보다 빨리 집에 오면 푹 쉬거나 한숨 잠을 잤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인데 내가 일을 마치고 퇴근한다고 전화를 하면 아주 간혹 그는 잠이 들었었다거나 혹은 다른 걸 했다거나 하는 말을 일사천리로 주르륵한다. 평소라면 느릿느릿 말하는 사람이 유독 그럴 때는 말의 속도가 빠르다. 굳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에 살을 붙여서 마무리로는 어후~죽겠다. 그럼 [나는 아~그랬구나. 오늘 하루도 많이 힘들었나 보다] 하면서 넘어가지만 너무 티 나게 그러는 날에는 고개를 갸웃한다. 흐음. 뭐지? 열심히 구획을 설정하려는 듯한 이 문장들은 나만 느끼는 건가?


 가끔 궁금하다. 정말 아내가 아무런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 한채 [그랬구나?] 하며 앞에서 웃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건지. 남편의 작디작은 변명은 사실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아주 미비한 것들이다. 남편의 몸관리를 위해서 고칼로리 음식이나 간식, 맥주 등을 못 먹게 하는데 내가 없을 때 홀랑 먹고 나서 아무 일 없었던 듯 증거인멸을 한다거나 사진 보정 많이 하지 말라 난리 쳤을 때 몰래 새로운 계정에 멋진 작품들을 차곡차곡 업데이트한다거나 하는 정도다. (결국 계정은 내게 들켜서 이실직고함 ) 그래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매번 이른 아침마다 칼로리 신경 써서 도시락도 싸주고 그 좋아하던 치킨도 같이 먹고 싶을 사람을 위해 딱 끊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매일 장거리 지하철을 꼬박 서서 오가지만 남편의 운동을 위해 홀로 쑤시는 허리와 다리를 두들기면서 같이 운동 가자고 부탁하는 아내의 노력을 조금 더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남들이 보면 그 정도는 애교지! 할 수도 있을 것들이라 이게 실망할 일인가.. 내가 너무 심한가.. 스스로의 태도를 다시 곱씹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숨기려고 하는 행동은.. 나.쁘. 다.

남편들 진짜 아내에게 빤히 들킬 행동은 행하지 말자. 그 내용이 크던 작던 심각하던 미비하던 속인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 자체로 아내들은 상처받고 실망한다. 사실 숨기고 몰래 한 행동에 대한 실망보다는 숨겨야지!라는 그 마음 자체가 주는 실망이 크다. 그럼 나는 감추는 것이 없냐 한다면 딱 한 번 거짓말하다가 내 발이 저려서 말을 한 후로는 무언가를 감추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내뱉는 게 낫지 나는 거짓말하면 내가 병이 난다. 별 일도 아니었고, 아내가 없을 때 했을 혼자만의 아주 작은 일탈이었음에도 나는 하하 호탕하게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런 나 자신이 속 좁고 밴댕이 같아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다.


아아. 미친 듯이 사고 싶은 거 쇼핑하고 싶은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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