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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Dec 04. 2024

결혼 생활

나는 나무늘보같은 아내일까?


 앞서 말한 대로 나는 10년 이상 유치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내가 일하던 유치원은 일반적인 유치원이 아니고 공교육에서는 영어어학원유치부, 일반인들에게는 영어 유치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나는 유학파도 아니고 영어를 전공으로 하지 않았지만, 늘 영어는 나랑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여서 학창 시절에도, 취업을 준비했을 시절에도 영어는 나의 무기였고 특기였다. 일반 회사에서 신입 사원으로 활동할 때 우리나라에서 영어 유치원이라는 사업이 강남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었다. 늘 수치로 능력을 평가하는 회사가 지긋지긋했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하는 삶이 힘들어서 날마다 다른 분야로 튀어야지.. 생각만 가득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들어선 영어 유치원이라는 세계는 하루 종일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선생님이 힘든가 봐!!!] 하면서 우르르르르 달려와 볼에 입을 맞추거나 작은 팔로 힘껏 나를 안아주는 순간이 있어 버텨낼 수 있었다. 봄, 가을, 겨울마다 다가오는 큰 행사 준비가 어느 순간 버거워지고 수화기 너머로 [감히!!! 우리 아이에게!!!!!]라는 말을 시작으로 들리는 고성을 버티기 힘들어졌던 것은 약 9년 차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그런 일들은 너무 많이 일어났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아이 아버지까지 뛰어들어와서 내 얼굴을 향해 윽박지르던 일도 있었고 무조건 사과 또 사과를 하며 고개를 조아렸던 일들은 늘 존재했다. 기껏해야 1년에 두세 번 정도 일어나는 일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나는 한 없이 무기력해져 갔다. 해가 갈수록 교사가 아이를 훈육하거나 행동을 고치려 하면 안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친구들을 밀치고 귀찮게 하거나, 수업이 싫으면 교실 바닥에 드러누워서 한바탕 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랠 때는 혹여나 내 목소리가 너무 커서 학부모가 항의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뿐이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까르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내 귀에서는 삐~하면서 이명이 이어지고 혹여나 휴대전화에서 [전화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메시지를 받을 때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대처할 때 침착하고 대범하게 한 들 수화기를 들기 직전까지 나는 속으로 덜덜 떨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어 유치원이라는 기관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던 해는 첫 학기가 시작하고 고작 3달 만에 나의 몸무게가 9kg 줄었던 해였다.


 결혼 이후 지인의 부탁으로 보조 교사를 하다가 과외 제안이 들어왔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감사하게도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어쨌든 교실에서는 1대 다수의 아이들을 대해야 했다면 과외는 1대 1로 마주하니 훨씬 피로도가 덜하다. 그리고 나의 시간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가르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오전 시간에는 집안일도 하고 미리 요리도 해놓는다. 다만, 기관에서는 4대 보험을 포함하여 매달 같은 날 월급이 들어오지만 과외는 아이들마다 교육비 날짜가 다르고, 독감이 도는 시기, 명절, 방학 시기에는 빠지는 날들이 많아 매달 내게 들어오는 금액은 일정치 않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기관에 있을 때와 비슷하거나 혹은 그 보다 적은 액수를 버는 달이 있기도 하고 이제 나이가 찬 아이들이 학원으로 빠지게 되면 나는 학생이 줄어들고 만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대치동, 압구정동의 이름 있는 학원에 합격을 해서 가는 것이니 좋게 생각하려면 또 좋은 일이지만 왠지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나는 새벽 말씀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는 하는데, 뒹굴거리면서 쉬거나 한가하게 책을 보거나 하는 일은 되도록 의도적으로 안 하려고 한다. 내가 안락함을 누릴 동안 분명 남편은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할 것인데 우리 강아지와 뒹굴거리기만 하기에는 내 양심이 너무 찔린다. 수업 준비를 하거나, 밀리지 않도록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저녁에 돌아올 남편이 내가 집에 없어도 따듯한 식사의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부지런히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집안일이라는 건 왜 이리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지 사실 크게 뭐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느새 시계는 일하러 나갈 시간을 가리키곤 한다. 분명 기관에서 다시 근무하면 아마 좀 더 생활이 편안해지지 않을까. 남편의 심적 부담이 아무래도 덜 하지 않을까 하지만 또다시 그 아우성 속에 뒹굴 생각을 하니 마음이 까마득하다. 요즘처럼 직장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도 내가 있던 직군은 늘 경력직 교사가 부족해서 아직도 간혹 일해 달라는 연락이 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지 않는 나는 너무 태평한 것일까. 여행이 있는 달이거나 가족의 생신, 서로의 생일이나 기념일이 있는 달이면 아무래도 지출이 많아지는데 그럴 때마다 왠지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작고 하찮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유튜브나 SNS를 보면 부모님을 위한 것이라며 현금이 줄줄이 나오는 박스를 준비하는 장면들이 보이던데 내가 만일 그런 아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분명 나도 일을 하기는 하지만 풀타임 근무가 아니다 보니 왠지 혼자 농땡이 피우는 이미지가 그려지고 만다. 남편은 늘 내게 '쉬엄쉬엄 하고 너무 무리하며 일하지 말아요' 하지만, 종종 회사 가기가 괴로워서 한숨을 깊이 내쉬는 그를 보게 될 때면 왠지 내가 너무 나무늘보와도 같이 느릿 느릿 한가한 존재로 느껴진다. 종종 꿈에서 유치원이 나온다. 교실에 앉아서 아이들의 숙제를 열심히 채점하는 나를 의식하면, 내가 그래도 월급을 받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잠시 들지만 떼거지로 달려오는 아이들과 학부모에 휩쓸려서 늘 흠뻑 땀에 젖어서 번쩍 눈을 뜬다. 그때부터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 만일 아이가 선물같이 찾아오면 어쩌지. 그럼 당장 승강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부터 알아봐야 할 텐데. 아니 그럼 점점 장거리 과외가 힘들어질 텐데. 잠깐 그러면 지출도 엄청 늘어날 텐데!!!! 그런 밤이 지나고 나면 더더욱 사명감에 불타서 나는 수업을 준비하고 일을 하러 나간다. 지금도 나가기 전에 뭐라도 요리라도 해놓고 나갈까. 뭐라도 해놔야 그래도 집에서 내가 좀 쓸모가 있는 일을 했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다른 주부들은 어떠실까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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