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나는 거짓말을 정말 싫어한다. 의뭉스럽고 겉모습과 달리 뒤에서 딴말하고 딴짓하는 사람들은 비겁함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유치원 교사 시절 아이들이 발뺌하며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으로 천연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 나는 아이들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보다는 들킬까 봐 앙다무는 입이라던지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감탄사라던지 괜한 피곤한 척하는 행동에 더 집중했다. 조막만 한 손을 비비기도 하고 꼭 맞잡거나 손에 자꾸만 생기는 땀을 쓱 닦아내는 모습은 무척 귀엽기도 또는 안쓰럽기도 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3번의 기회까지는 눈감아주었다.
보통 거짓말을 할 때면 말이 많아진다. 스스로 거짓말을 들킬까 봐 자기도 모르게 괜한 변명을 늘어놓는 거다. 말하는 사람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바로 알아차린다. 너 또 뭐 했구나?
우리 아버지가 엄마 앞에서 유독 말이 많아지면 엄마는 대번에 눈치를 챘다. 어디 간다 하고 또 할머니댁을 갔다던지, 몰래 물건을 구매했다던지 등등이 그 변명이 숨기고자 하는 진실이었다. 대체 왜 들킬만한 행동을 굳이 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걸 아주 가끔 우리 남편도 한다.
남편이 거짓말을 할 때는 보통 되게 피곤한 척을 하는 추임새가 동반된다. 그가 나보다 빨리 집에 오면 푹 쉬거나 한숨 잠을 잤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인데 내가 일을 마치고 퇴근한다고 전화를 하면 아주 간혹 그는 잠이 들었었다거나 혹은 다른 걸 했다거나 하는 말을 일사천리로 주르륵한다. 평소라면 느릿느릿 말하는 사람이 유독 그럴 때는 말의 속도가 빠르다. 굳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에 살을 붙여서 마무리로는 어후~죽겠다. 그럼 [나는 아~그랬구나. 오늘 하루도 많이 힘들었나 보다] 하면서 넘어가지만 너무 티 나게 그러는 날에는 고개를 갸웃한다. 흐음. 뭐지? 열심히 구획을 설정하려는 듯한 이 문장들은 나만 느끼는 건가?
가끔 궁금하다. 정말 아내가 아무런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 한채 [그랬구나?] 하며 앞에서 웃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건지. 남편의 작디작은 변명은 사실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아주 미비한 것들이다. 남편의 몸관리를 위해서 고칼로리 음식이나 간식, 맥주 등을 못 먹게 하는데 내가 없을 때 홀랑 먹고 나서 아무 일 없었던 듯 증거인멸을 한다거나 사진 보정 많이 하지 말라 난리 쳤을 때 몰래 새로운 계정에 멋진 작품들을 차곡차곡 업데이트한다거나 하는 정도다. (결국 계정은 내게 들켜서 이실직고함 ) 그래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매번 이른 아침마다 칼로리 신경 써서 도시락도 싸주고 그 좋아하던 치킨도 같이 먹고 싶을 사람을 위해 딱 끊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매일 장거리 지하철을 꼬박 서서 오가지만 남편의 운동을 위해 홀로 쑤시는 허리와 다리를 두들기면서 같이 운동 가자고 부탁하는 아내의 노력을 조금 더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남들이 보면 그 정도는 애교지! 할 수도 있을 것들이라 이게 실망할 일인가.. 내가 너무 심한가.. 스스로의 태도를 다시 곱씹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숨기려고 하는 행동은.. 나.쁘. 다.
남편들 진짜 아내에게 빤히 들킬 행동은 행하지 말자. 그 내용이 크던 작던 심각하던 미비하던 속인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 자체로 아내들은 상처받고 실망한다. 사실 숨기고 몰래 한 행동에 대한 실망보다는 숨겨야지!라는 그 마음 자체가 주는 실망이 크다.그럼 나는 감추는 것이 없냐 한다면 딱 한 번 거짓말하다가 내 발이 저려서 말을 한 후로는 무언가를 감추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내뱉는 게 낫지 나는 거짓말하면 내가 병이 난다. 별 일도 아니었고, 아내가 없을 때 했을 혼자만의 아주 작은 일탈이었음에도 나는 하하 호탕하게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런 나 자신이 속 좁고 밴댕이 같아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