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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Dec 19. 2024

 결혼 생활

외유내유?  

 




늘 남편을 사랑하고 장점을 칭송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에 들지 않거나 화가 날 때가 있다.

그저께가 딱 그런 날이었다.  종종 강아지를 데리고 방문하는 편의점이 있다. 사장님이 우리 강아지를 너무 예뻐해 주셔서 생긴 인연으로 가끔 간식도 챙겨주시고 커피도 공짜로 주시는 분이다. 게다가 외국계 학교에서 오래 일하셨던 분이라서 영어를 가르치고 주로 영재반 아이들을 보았던 나랑도 연결고리가 생겨 종종 그곳에서 이야기의 장을 열곤 한다. 사장님은 항상 우리 부부를 볼 때마다 서로 너무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웃음이 난다고 하시는데 그중 하나가 내면의 단단함이라고 하신다. 남편은 무리를 하거나 조금이라도 몸이 힘들면 바로 겉으로 티가 많이 난다. 아마 편의점에 들어갈 때도 [어후-죽겠어요] 라던지 목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세상 기운 없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사장님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비틀거리는 남편 옆에 온 힘으로 버티고 있을 내가 상상된다고 한다. 남편의 직업 특성상 야근이 크게 없고 보통 직장인들에 비해서 퇴근도 굉장히 빠른 편이다.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수업 준비를 하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7-8시에 퇴근하는 나와 달리 대략 6시 전이면 퇴근을 하는데, 아주 이른 시간 퇴근을 해도, 혹은 정시에 퇴근을 해도 남편은 늘 온 힘을 다 쓰고 온 사람 같다.


  간혹 헬스장에 가면 정말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으시는 분들이 보이는데 정말 궁금하다. 저들은 직장 퇴근이 몇 시일까. 저 사람들도 아이고 죽겠다. 피곤하다. 를 매일같이 말하면서 퇴근을 하고 뻗을까. 나는 직장에 다닐 때 어땠더라. 내가 직장생활을 했을 때, 그야말로 온몸으로 애들과 씨름을 하면서 하루 9시간을 꼬박 한시도 앉을 틈 없이 일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집에 퇴근할 때마다 죽겠다 죽겠다 한 적은 사실 많지가 않다. 오히려 그래도 야근이 없는 직업이고 숫자로 따지는 실적이 필요 없기에 남들보다 강도가 낮음을 감사했다. (아. 물론 힘들었던 상담이 있는 날은 나도 죽겠다. 했던 것 같다.)


최근 남편이 큰 행사를 준비하며 몇 일간을 분주하게 일했다. 주말도 없이 꼬박 7일을 일했는데 그즈음 잠시 운동으로 조금 튼튼하게 만들어놓았던 내 허리가 고장이 났다. 걸을 때마다 좌골이 어찌나 아픈지, 그리고 지하철역마다 뭔 놈의 계단은 그렇게 많은지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화가 잘 지경이었다. 오르는 것은 그나마 낫다. 내려가는 건 정말이지 지옥이다. 내려갈 때마다 으악. 윽! 하면서 내려가는데 순간 한쪽 다리 힘이 훅 빠져서 그만 요란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오른 손목은 삐끗했는지 아프고 가뜩이나 뻐근했던 허리 통증은 정말 척추를 타고 전율이 전신으로 퍼져 찌르르르- 아. 정말 이 수업만 끝나고 내가 지옥철에서 버텨서 집에 가면 바로 누워야지. 생각을 수도 없이 했던 날이었다. 그런데! 급성 장염기가 있다면서 너무 아프다고 전화 통화를 하는 우리 남편....... 아........... 왜... 또 왜 아픈 거냐........ 장염 걸린 남편에 대한 걱정보다는 집에 가서 내가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에 순간 울컥 화가 났다. 사람이 매일 힘들다 죽겠다 생각을 하면 그 몸이 동화라도 되는 것인지. 보통 무리를 하거나 피곤하다 하는 빈도수가 늘어나면 남편은 대번에 감기나 장염이나 아니면 위경련 등이 오는데.. 대부분 오후 6시에, 두 세정 거면 가는 거리를  차를 타고 오가면서 아프다고 하니 조금 얄미울 지경이다. 결국 나는 퇴근과 동시에 남편의 상태를 한 번 본 후, 해열제를 건네주고 대충 밥을 먹고 온종일 쉬를 꾹 참아서 방광이 터질 지경임에 분명한 강아지를 데리고 절뚝이며 산책길에 올랐다.


뚜벅뚜벅 걸으면서 생각해 봤다. 내가 골골거릴 때면 늘 만사 제쳐두고 밤을 이틀 삼일 꼬박 새우면서도 내 곁에서 나를 간호했던 남편이 떠오른다. 하긴, 내가 장염으로 일주일 넘게 앓았을 때도, 열이 치솟을 때도, 허리통으로 고생할 때도 업어주고, 요리하고, 약을 사 오고 헐레벌떡인 남편이 오히려 더 툴툴거려도 시원찮을 판인데.. 혼자서 강아지랑 두런두런 잠시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간 사람처럼 떠들고 나니 대체 왜 내가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차분해졌다. 남편이 알면 많이 속상해할 것이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내가 뿔따구가 났다는 사실을!

어후 속 터져!! 하며 뛰어나간 산책은 거의 고해성사와 회개를 하는 산책이 되었다. 오늘따라 우리 강아지 표정이 [으휴. 엄마 고만 삐지고 얼렁 들어가 ]하는 듯했다. 끙끙 앓다가도 헛소리를 하면서 아파서 미안해~~~~ 매가리 없는 소리로 심지어 사과까지 하는 남편. 여보 속 좁게 굴어서 나도 미안해. 근데.. [죽겠네. 죽겠다] 소리는 조금 줄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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