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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Dec 16. 2024

 결혼 생활

나의 시부모님

 여자들이 결혼 준비에 앞서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바로 예비 시부모님과 첫 대면하는 순간일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한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가 편하지 않고 불편하다. 결혼한 지 무려 40년이 흘렀어도 아직까지 시댁식구와 함께하면 유독 말이 없어지고 구석자리에 앉아서 대화에 제대로 끼지 못 하는 엄마가 그러하고, 종종 시어머니와 무엇이 어려웠는지 불편했는지를 토로하는 친구들이 그러하다. 주변에서 하도 어마무시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첫인사를 드리던 그날 정말 긴장을 많이 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친정에 어른들이나 친척들만큼 기가 센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한정식 집 입구에서 마주한 어머니는 당시 남자친구이자 현 남편인 이 사람과는 이미지가 참 달랐다. 어딘가 강약이 분명할 듯한 눈과 생각보다도 더 또렷한 이목구비의 외모셨는데 내게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주시면서 환영한다 활짝 웃으셨다. 아버지는 키가 정말 크셨고 말투도 목소리도 행동도 모두 부드러우셨다. 아.. 이 사람이 아버지 행동을 쏙 빼닮았구나.. 싶을 만큼 말이다. 우리 집은 늘 엄마가 아팠고 겉으로 봐도 세상 가느다란 뼈대의 엄마라서 그에 비해 정말 건강해 보이시고 혈색이 좋으신 어머니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반면 어머니 기준에서 나는 세상 비리비리하고 몸집 작은 예비 며느리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왜 이렇게 말랐니.. 하며 안타까워하시고 뭐라도 더 먹이시려고 늘 내가 방문드리기 전 날부터 요리를 하신다.

 첫 만남 이후부터 두 분은 내게 아낌없이 마음을 표현하셨다. 내가 약식을 좋아한다는 말에 약식을 해서 보내주시기도 하고, 결혼 준비기간 동안 큰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셨다.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종종 뵙게 되면 항상 나를 기준으로 메뉴를 고르셨던 것 같다. 크게 부담을 갖지 말라, 둘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늘 이 말씀을 주로 하셨는데 그건 두 분의 진심이셨다. 만나고 헤어질 때면 꼭 두 팔로 가득 안아주시면서 [오늘 즐거운 시간 함께 해주어 고맙다] 하시는 어머니의 품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결혼 후에, 시부모님은 매번 조금이라도 더 우리에게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방문을 드릴 때마다 이것저것을 챙겨주신다. 그게 물질적인 것이던지 마음이던지, 부모님의 자식 사랑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싶을 만큼 항상 작은 뭐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냉장고를 다시 열어보시곤 한다. 며느리가 힘들까 봐 설거지는 절대 시키지 않으시고 늘 부엌에서 나를 떠밀어내셔서 내심 마음이 늘 불편했는데 마침내 요 얼마 전부터 처음으로 나랑 남편이 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했다. 음식도 본인이 다 하시고 장도 직접 다 보시고 종일 부엌에서 이것저것 요리를 하셨을 어머니가 설거지까지 하시는 것은 정말 옳지 않다. 결혼 2년이 지나고 3년 차가 되었음에도 정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마침 다른 친척분과 함께 식사를 하는 날, 우리 부부가 싱크대를 온전히 차지할 수 있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며느리 생활은 절대로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오히려 부끄럽고 마음이 불편하다. 간혹 너무 많이 주시려고 해서 시부모님 댁에 가기 전, 남편에게 [이번에는 조금만 가져오자.. 너무 많이 주셔..]라고 볼멘소리를 할 때도 있다. 겨우 공간을 만들어놓은 냉장고가 또다시 꽉꽉 들어차면 가끔은 그게 어찌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지..냉장고가 [제발 숨 좀 쉬게 해주세요!!]내게 SOS를 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사실 어머니가 주시는 반찬을 살펴보면 모두 남편보다는 내가 주로 잘 먹었던 것들 뿐이다. 분명, 며느리가 좀 더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어머니는 오래도록 부엌에서 분주하셨을 것이다. 그 마음을 생각하면, [조금만 주셔도 돼요. 조금만-]을 강조 또 강조하는 내게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싶어서 또 죄송스럽다.

이번 주말 어머니의 생신이 있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여느 때처럼 [어서들 오너라] 하면서 환한 얼굴로 반겨주시는 아버님과 그동안 잘 지냈나며 요리하시다 말고 뛰어나오셔서 나를 안아주시는 어머니의 인사로 그날을 시작했다. 내 앞에는 그날도 온갖 반찬들이 가까이 놓였고 두 분이 미리 챙겨놓으신 커다란 쇼핑백에는 각종 반찬들이 예쁘게 담겨 있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 거듭 강조하셔서 약소하게 케이크와 봉투만 들고 갔는데도 축하해 줘서, 이렇게 시간 내어 와 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하시는 우리 시부모님. 메시지 끝에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우리 며느리 사랑한다] 마음을 전해주시고, 심지어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에도 우리 부부 이름과 함께 사랑한다.라고 써놓으시는 두 분의 사랑은 정말 감히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깊고도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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