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두어 번 언급한 대로 우리 집에는 반려견이 있다. 2023년 6월 19일생의 수컷 스탠더드 비숑이고 우리 집에 온 날은 9월 11일이다. 어릴 때부터 워낙 강아지를 좋아했지만, 일이 배로 늘 것을 예감한 엄마는 절대로 반려견을 허락해주지 않으셨다. 반려견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가 잠자던 나의 꿈을 일깨운 일이 있었으니 바로 남편 동료의 강아지를 3일 대신 돌봐주게 된 일이다. 동료분의 가족들이 제주로 여행 갈 동안에 강아지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던 찰나에 남편이 돌봐주겠다고 수락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나도 한 번은 강아지와 함께 하는 하루가 어떤지 궁금했기에 막판에는 데리고 와도 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숑이라는 말에 비숑의 성격은 어떠한지 열심히 검색도 했다. 검색에서는 깨발랄하고 엄청 활달해서 종종 비숑타임이라는.. 신들린 듯이 날뛰는 때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 성향으로 따지자면 극 E인 초외향적인 견종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3일간 우리 부부와 함께 있었던 이 비숑은 어찌나 조용한지 마치 없는 듯했다. 강아지를 데리고 하루 산책만 세 번을 나갔고 나갈 때마다 달리고 걷고를 1시간씩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녀석은 집에만 오면 나를 건들지 마쇼!라는 표시로 방 문 뒤에 얼굴을 숨기고 코를 거하게 골면서 잠을 청했다. 고작 3일이었지만 우리 곁에 딱 붙어서 잠도 자고 부르면 달려오고 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기특하던지 이 녀석이 본래 가족들에게 돌아가던 날, 남편과 나는 섭섭함을 넘어서 심란할 지경이었다. 그때부터 남편의 반려견 폭풍 검색이 시작되었다. 아마 나보다도 남편이 더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삶을 동경하게 되었달까.
무심결에 바라본 남편의 네이버 장바구니는 온통 강아지 물품으로 가득했다. 살 거냐고 물으면 [아. 혹시 모르니까 우선 담아만 보는 거야!]라고 하던 사람은 유튜브로, 구글로도 온갖 검색 엔진을 동원해서 강아지를 공부하고 있었다. 다른 견종보다도 비숑! 구름 같은 털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망울은 남편의 마음을 확실히 훔쳤음에 틀림없었다. 처음에는 [이 집에 강아지는 안돼] 했던 나도 열심히 비숑만을 전문으로 하는 브리더를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펫 숍을 안 가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강아지들을 보면 하나같이 아직 한참은 어미견과 함께 있어야 할 너무 작은 아이들 뿐이었고, 하나같이 미니 사이즈를 선호하는지 안내하시는 직원분들도 다 커도 몸집이 많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강조하셨다. 사각 케이스 안에서 바들바들 몸을 떠는 작디작은 강아지를 보면서 나는 전문 가정 브리더에게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미 내 마음은 반려견 보호자 그 자체였다.
내가 최종적으로 결정한 브리더는 전주에 계시는 분이었다. 평생을 함께 할 가족을 만나는 일인데 전주가 대수랴. 아마 부산이었어도 우리는 부지런히 방문을 했을 것이다. 미리 미팅을 예약하기 전에 우리는 그분이 올린 사진을 찬찬히 보면서 마음에 가장 들었던 아이가 누군지를 미리 견주분께 전달했다. 전주로 달리는 동안 얼마나 마음이 떨렸는지 모른다. 큰 주택과 널따란 마당으로 이루어진 집 안으로 안내를 받고 브리더께서 태어난 지 3개월이 좀 넘었다는 비숑 6마리를 안고 우리 앞에 오셨다. 우리 부부의 첫마디는 [우와!! 얘네 크다!!]였다. 펫 숍에서 본 아이들보다 적어도 2배는 되어 보이는 오동통한 흰 솜뭉치들이 우리 앞에서 장난감을 물고 뜯고 뒹굴고 쉼 없이 꼬리를 흔들었다. 서로 자신을 봐달라고 펜스에 매달려서 핥고 난리 부르스인 상황에 남편의 눈에 들어온 아이는 물고 있던 장난감도 양보하고 시끄러운 것이 싫은지 조용히 구석에서 나머지 동배 친구들이 놀다가 투렛 뱉어버린 인형을 조심스레 입으로 물어보는 아이였다. 덩치는 제일 컸는데 어찌나 치이는지 세상 처진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앉아서는 이 소동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아. 우리가 사진에서 골랐던 아이다! 하나같이 비슷한 얼굴이라 구분도 어려웠음에도 남편은 우리가 강아지들과 함께 놀아보는 1시간 반 동안 내내 아주 정확하게 그 아이를 6마리 중에서 귀신같이 찾아냈다. 보통 인연이 닿을 아이는 느낌이 온다던데 남편은 정말 자기처럼 뼈대도 크고 그러나 세상 순둥한 얼굴의 아이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브리더도 헷갈리는 얼굴 속에서 그때마다 남편은 그 아이 아니고 옆에 아이요! 하면서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아이를 고르니 브리더도 감탄했다. [아빠가 될 인연인가 봐요] 하시면서.
그날이 작년 9월 11일이다. 통통하고 통뼈였고 마음은 세상 여려서 친구들에게 반격도 못 하고 아장아장 구석을 찾던 2.4kg 강아지는 나의 품에 안겼고 [기쁨]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우리 가족과 살아가는 순간마다 늘 기뻤으면 해서 지어준 이름이다. 첫날 자신의 구역을 알려주려고 펜스를 설치해 놨는데, 이 녀석 어찌나 힘이 좋은지 펜스의 틈마다 그 작은 발을 턱턱 걸고는 암벽을 등반하듯 올라 멋지게 탈출을 했다. 넣어 놓을 때마다 끝없이 탈출하는 기쁨이 때문에 펜스는 설치 후 열흘도 안 되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낑낑하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펜스의 꼭대기에서 점프와 착지까지 완벽하게 하는 모습에 우리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한 번은 퇴근 후 보니 펜스 안을 온통 똥 밭으로 만든 채로 온몸을 뒹굴었는지 그야말로 응가 자체가 되어서 남편을 반기기도 했다. 그날 남편은 비명을 지르며 강아지 목욕이며 청소까지 몇 시간을 진땀을 뺐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서로 끊임없이 강형욱이나 설채현과 같이 내로라하는 반려견 전문가들의 글과 영상을 찾아보면서 공부를 하고 또 했다. 배변 훈련을 어떻게 하는지, 산책을 어떤 목적을 갖고 시켜야 하는지, 사회성을 어찌 기르는지 등등. 이 작은 생명과 함께 하는데도 이렇게나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정말 초반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이 아이 교육시키는데 다 사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보 반려견 보호자인 우리는 그렇게 기쁨 이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