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결혼 후 맞들 린 여행

by forever Young

여행, 누군가는 여행을 위해 돈을 벌고 모은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삶의 터전을 떠나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 왜 기대되고 유쾌한 일이 된다는 거지? 장소물색, 숙소 검색 및 예약단계, 게다가 가서도 익숙지 않은 장소를 헤매고 길을 잃고 찾고 하는 이 모든 과정들이 나는 귀찮았다. 돈이 모아지면 평소 봐왔던 브랜드 옷을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이나 쇼핑몰로 달려가는 것이 더 즐거웠다. 쇼핑에는 세상 계획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나였지만, 가족 여행이든 친구와의 여행이 잡히면 늘 뒷걸음치며 적극적으로 계획 짜는 일에서 빠져나가려고 뺀질거렸던 것 같다. 동생은 나와 해외여행을 준비하며 세상 안일한 나의 태도에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 여행은 서로 너무 달랐던 두 자매의 오열로 끝났다.


남편은 너무 성실히 사느라 여행을 간 적이 드물었다. 늘 그는 이직. 석사를 이루느라 고군분투였고 그나마 친구. 동료. 아버지와 가는 등산과 캠핑이 그가 한 여행의 대부분이었다.

해외여행을 아주 즐기는 나는 아니었지만, 태어나서 성인이 돼서야 첫 비행기를 탔다는 말에 깜짝 놀랐었다. 아내가 세상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탓에 그는 연애 내내 단 한 번도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여행은커녕 1박을 넘긴 적 없이 늘 꼬박꼬박 12시 전에 집에 데려다주는 것을 사명처럼 여겼다. 그러다 보니 서로 어떤 여행지를 좋아하는지 어떤 여행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신혼여행을 앞두고 남편이 정성껏 빈틈없이 작성한 계획표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조식시간부터 산책시간, 쉬는 시간, 이동시간, 게다가 혹 날씨나 뜻밖의 차질로 인한 것을 감안하여 짜인 2안까지

거의 회사 연수 스케줄표를 보는 기분이었달까.

나는 가면 가고 못 가면 다른 곳 가보지 뭐~하는 세상 단순한 여행자인지라 이런 실수하나 없을 시간표가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는 전적으로 내게 모든 것을 맞추었어서 여행 중에 우린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아. 물론 그 스케줄을 대다수 소화했고 우린 매일 20000보에서 30000보를 걸어 다녔다. 친구들은 신혼여행이 아니라 산악행군 아니냐며 놀라워했지만 우리는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그 이후 나는 강남 8 학군에만 머물던 내 삶의 범위를 벗어나 멀리멀리 다니기 시작했다. 강원도.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남해까지 우리 부부는 연휴가 끼거나 혹은 갑작스레 즉흥적으로 여행을 다녔다. 지방 펜션이 그렇게 잘 갖춰져 있는지도 처음 알았고, 시기마다 축제가 여기저기서 열리는지도 처음 인지했다. 메밀꽃축제. 데이지꽃 군락지. 황하코스모스 축제. 양귀비축제 등등 본래 꽃 좋아하는 나는 갈 때마다 대만족이었다. 남편의 여행 준비 과정도 많이 변해갔다. 늘 칼같이 계획표를 만들어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계획표 작성을 내려놓았다. 바다가 좋은 날은 그냥 바닷가, 비가 오면 분위기 좋은 카페, 날이 좋으면 한 없이 산책하는 숲 이렇게 그날의 감정과 날씨에 따라 다소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 다니며 그는 벚꽃시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예쁜 풍경을 보는 것이 마음에 어떤 위안을 주는지를 알았다고 한다. 여행을 즐기지도, 많이 다니지도 않았던 우리 둘은 그야말로 한을 풀 듯이 참 많이도 자주 여행을 떠났다. 통장이 헉헉 거릴 만큼.. 하하 그래도 그 순간들에 대한 후회는 없다. 남편과 함께 눈에 담고 마음으로 느끼는 여러 장소에 대한 기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올해는 서로 자기 계발을 위한 1년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다.

여행으로 꽉 채운 마음을 양분으로 삼아서 이제는 내가 갖추고 있는 능력을 더 키워보는 해로 채워보고자 한다. 어떤 모습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 보련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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