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믿음이 함께하는 결혼
교회, 그리고 기도 이 두 가지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늘 함께였다. 외가와 친가 모두 천주교, 기독교여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의 기도를 많이 듣고 자랐다. 너무 예민해서 하루에도 반 이상을 악을 쓰며 울던 나는 신기하게도 외숙모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시거나 찬송가를 부르시면 바로 진정했다고 한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친구를 따라 성당을 다녔고, 오랜 병원 생활이 반복됐던 십 대 시절 즈음 우리 가족 모두 교회를 본격적으로 다녔다. 엄마가 새벽기도를 하고 등교 전, 이후에는 출근 전에 나를 두 팔로 가득 안고 기도를 해주시면, 은혜가 쏟아지고 하는 것은 모르겠고 그냥 하루 일과 중 하나라는 정도로만 여겼다. 가끔 정말 바쁠 때는 귀찮기도 했다. 기도가 뭐라고..
누군가 그랬었다. 가정을 꾸리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아마 기도가 절로 나올 거라고. 처음에는 나보다 훨씬 교회 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나 그럴 거라고 여겼다. 그냥 늘 그랬듯이 주일마다 예배 보면 되는 거 아닌가. 나 스스로 만족스러운 생활을 해내리라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새로운 생활은 물론 너무 좋았지만, 내가 용을 쓰고 고집을 부릴수록 꼭 트러블이 생겼다. 내가 자존감 높은 줄은 알았으나, 이것이 자존감을 넘어 자만이 되었을 때면 나는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그냥 화만 났다. 웃으면서 생활하나 속 안에 응어리가 조금씩 쌓이면서 종종 숨이 답답함을 느낄 즈음, 어느 날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보는데 그 답답함이 기도 중에 누그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두 팔 활짝 벌리고 큰 소리로 통성기도나 방언을 하며 아멘!! 외치는 줄 알지만, 사실 나처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기도하기보다는 그저 속으로 수줍게 몇 마디만 하고 끝내는 사람도 많다. 생전 예배 외에 따로 기도 시간이라고는 가져본 적 없는 내가 그 누그러짐을 잊지 못해서 교회 새벽예배를 아침마다 TV로 보기 시작했다.
종종 '광야에서'라는 찬양을 틀어놓기도 했다. (정말 이따금은 가사가 내 상황 같았다.)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하고, 속상했던 마음, 자꾸 아픈 허리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고 나면 왠지 모르게 든든한 그분이 위로해 주시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 기도 시간은 나를 자꾸만 내려놓게 했다. 집에 대한 불편함, 장거리 출퇴근에 대한 불만, 남편에 대한 섭섭함, 남과 자꾸 비교하려 드는 마음 등 내 욕심에서 비롯된 것들을 한 칸씩 끄집어내리게 했고 내릴수록 마음이 편해짐을 깨달았다. 내 힘으로 무언가 해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 대신에 내가 가지고 있고 하고 있는 물질과 일에 대해 감사하면서 거듭 반성하게 된다. 기도라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니.
그전에는 주변에서 중보기도를 해준 다고 하면 고마운 마음이 다였지만, 지금은 누군가 나를 위해 하는 기도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