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 꼭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결혼이 아닌, 내 전문분야인 어린이 영어교육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최근 추적 60분에서 7세 고사라는 주제를 심층 있게 다룬 편을 시청했다. 심지어 과거 일했던 기관의 한 지점이 나오는 것을 보고 괜스레 뜨끔하기도 했다.
기자의 질문에 영어로 조잘조잘하는 유아들. 그 화면을 보고 일부 엄마들은 오히려 혹해서 열심히 학원을 검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어유치원, 사실 말이 유치원이지 공식적으로 그곳은 영어어학원 유아반이라 불리는 곳이다. 대략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없는 동네가 드물 만큼 그 기세가 대단하다. 회사에서 영어교육부서였던 나는 퇴사 후 2000년대 후반부터 그 영어유치원에서 대략 13년을 근무했다. 나는 유학파도 아니었지만, 엄마와 이모 모두 미군기지 내 국제학교 교사출신이었던지라 어릴 때부터 영어와 늘 함께였다. 그래서 굳이 유학이 아니어도 영어를 즐겁게 배울 수 있다는 취지의 영유에 왠지 동질감을 느꼈다. 아이들에게 재밌게 가르칠 나를 꿈꾸며 그 세계로 발을 들였던 것 같다.
초반에 있던 곳은 놀이식과 누리과정을 결합한 곳이었고 그만큼 행사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특정 지역의 학원들이 입학시험 수준을 높이 고나니 점차 대부분의 영유는 즐거운 영어 학습이 목표가 아닌 대치 학원 합격을 위한 일명 7세 고사 프렙을 목표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배우는 교재는 미국 본터에서도 대략 초등생들이 배우는 것으로 문장 구조도 복잡하고 글을 이해하는 능력 또한 상당히 요구한다. 고작 만으로 4.5세 아이들은 영유에서 연필을 쥐고 끊임없이 쓰고 또 쓴다. 집에서 엄마들이 보는 교재에는 동그라미와 excellent 가 가득하지만, 사실 대다수의 답은 원어민이 유도하고 답을 칠판에 적어두면 베껴쓰기로 적은 답들이다. 원어민도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라서 정말 좋은 교사도 보았지만, 대체 본토에서 뭘 하다 왔는지 모를 의심스러운 교사도 많다. 그들의 이력은 본국에서 알바 혹은 단기적인 업무 정도에 그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그러니 어떤 원어민이 배정되냐에 따라서 아이들이 받는 교육의 질은 천차만별이 되는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영유를 다니는 아이들. 물론 처음 1년까지는 신기하다. 그 작은 입에서 영어가 나오고 외국인의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는 모습에서 아마도 부모님들은 뿌듯함을 느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모국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국말이 제대로 터지기도 전에 영어를 주입하면, 아이들은 단어의 의미를 100프로 명확히 이해하고 대답하기보다는 당시 상황과 뉘앙스로 얼추 이해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게 쌓이고 쌓이면 점점 문장 해석이 어려워진다. 도통 이 단어에 을. 를. 이. 가. 중 무엇을 붙여야 하는 건지, 혹은 once upon a time이 대충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우리말로는 분명히 표현이 불가능한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In the forest를 나무가 많은 거!로 대답하는 아이, I give my mom some flowers에서 나는 내 엄마를 꽃들 주었다.라고 대답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거짓말 같은가. 불과 1주일 전 경험담이다. 초반에는 영어로 읽기도, 쓰기도, 문제까지도 풀었던 아이들이 보통 7세 8세가 되서 제대로 해석을 시켜보면 이런 모습을 자주 보인다.
영어는 한국어가 기반으로 튼튼히 자리를 잡아야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입 밖으로 트일 수 있는 것이지 언어에 대한 양분이 부족한 상태에서 알아서 싹 틔고 열매 맺는 분야가 아니다.
일부 학원들은 수준을 높이고 세상 어려워 보이는 교재를 펼치며 학부모의 불안감을 조장한다. 마치 이걸 안 하면 아이가 뒤처지는 것처럼. 그리고 아이가 학원 시스템을 못 따라오면 가르치는 교사를 닦달하고 교사는 아이를 붙들고 아이는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설명을 영어로 들어가며 억지로 연필을 잡는다. 그렇게 적은 답에 excellent! 도장이 꾹 찍히고 [우리 아이 잘하고 있답니다!] 하는 상담 전화가 엄마에게 간다. 만 3.4세에 꼭 어려운 교재를 배워야만, 반드시 프렙시험을 통과해야만 그 아이의 삶이 더 편해지고 영어를 자유자재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에 모국어의 표현을 익히고 다양한 책을 읽어보는 것이 이후 언어의 힘을 기르는데 양분이 된다.
꼭 영유를 보내야 한다! 면 적어도 우리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고, 스스로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가능할 때 보냈으면 한다. 또, 부모님들은 아무리 시간이 부족해도 복습을 꼭 해주길 바란다. 학원 교재의 동그라미가 아이의 힘으로 받은 건지, 교사가 적어준 것인지는 딱 한 문제만 물어봐도 알 수 있으니까. 영유가 아이의 영어를 모두 책임져주지 않는다. 뉘앙스로만 알아듣고 3년을 왔다 갔다 하다가는 놓친 기본기를 바로잡을 그 시기를 잃어버리고 영어도, 한국어도 어려워 머리를 싸매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학원에서 조장하는 불안에 속지 말았으면 한다. 아이들은 충분히 잠재력이 있고, 본인의 속도에 맞게 열심히 성장하고 있다. 잠깐 본 영어실력으로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심각하게 상담하는 그들은 사실 당신 아이들이 어떤 과정 속에서 어떤 속도로 나름 부지런히 자라왔는지 모른다. 비록 도움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 아이가 얼마나 기특하게 자라고 있는지, 또 얼마나 맑고 다양한 매력을 가졌는지 엄마 아빠만큼 잘 알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