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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Nov 16. 2024

전복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4가지(1)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빈말이야?”

“처음엔 빈말이었고, 네가 그날 세계지도까지 펼쳐가면서 얘기하는 걸 보고는 진심이 되었고.”     


한중 콘텐츠 산업 비즈니스 상담회가 있다며, 같이 가보지 않겠냐기에 흔쾌히 ‘그러마’ 하고 북경으로 날아온 참이었다. 따펑이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맥주 한잔을 하자고 했다.      

한중 콘텐츠 산업 비즈니스 상담회

“그래서 석가장은 언제 올 거야?”

“…”     

나는 말없이 맥주만 마셨다.      


“네가 필요한 게 배경 아니었어? 석가장에 오면 강의실도, 여행사도, 온라인시스템도, 방송실도, 심지어 ‘알리’라는 네임밸류까지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데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하니? 석가장에서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하고 싶다고 하는 건 다 할 수 있어.”     


‘그래서… 그래서 안 가는 거야.’     

반 남은 맥주를 마저 들이키며 ‘대기업의 돈에는 수백, 수천 명의 목숨값이 서려 있으니 함부로 투자받지 말라’던 베트남 친구들의 말을 생각했다.     


올해 여름, 대련팀과 마음이 맞지 않아 사무실을 정리하고 남방으로 간다고 했더니 따펑이가 석가장에서 차를 몰고 찾아왔다. 우리는 중국 진주식 해산물 요리를 먹으며 빼갈을 두 병이나 비웠고, 나는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들을 하고 싶은지 떠들면서 술기운에 몹시 들떴었다. 빼갈을 반 병쯤 비웠을 때는 가방에 늘 넣어 다니는 세계지도를 꺼내 짚으며 심천에서 홍콩으로, 베트남으로, 말레이시아로, 10년 뒤에는 중동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는 어학교육이나 유학시장에 기댈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오프라인 고객 체험의 영역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말했다.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앞으로 대상 고객도 입시생에서 직장인으로 전환하고 이직, 인생 제2막, 3막의 재교육 입장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승산이 있을 거라고 했다.      


따펑이는 석가장에 꼭 한번 오라고 했고, 여름이 끝날 무렵 방문한 석가장에서 따펑과 그 주변의 인프라를 보고는 섣불리 이곳에 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규모가 너무 컸다. 따펑이가 말한 것처럼 교육 센터뿐 아니라 방송 장비, 온라인 구매 시스템, 호텔, 여행사까지 손 뻗으면 쉽게 닿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신기루처럼 즐비했다.      


석가장에 실업자가 많으니 한국에 인력 파견을 하는 인력중개소 사업을 먼저 하고, 너는 한국어강의를 맡으라는 따펑이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한번 발 담그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돈이 빨리 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래서 더 싫었다. 돈만 벌기 위해서라면 퇴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뤄보고 싶어서 퇴사를 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래서 창업을 한 것이 아닌가.      


새벽 2시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따펑은 다음 거처를 어디에 둘 것인지 거듭 물었으나 끝까지 답을 안 하자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너는 성공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 걷고 있는 길들을 빠르게 실패하도록 해. 한 걸음도 소홀히 하지 말고 제대로 빠르게 실패하도록 해. 그게 네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응원한다. 그리고 석가장도 염두해 둬.”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재난 같은 사건에 부딪혔을 때,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기회를 만났을 때 삶이 전복되지 않으려면 삶의 철학을 닦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내가 왜 이 길 위에 서 있는지, 앞으로 어떤 시간을 살고 싶은지 부단하게 고민하고 나만의 철학과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길을 걷는 중에 같이 일하고 싶다, 도와주고 싶다, 투자하고 싶다는 사람을 참 많이 만났다. 정부지원사업 투자를 받게 해 줄테니 중국 대학에 교수 자리를 알아봐달라, 1억을 투자해 줄 테니 미얀마 유학 사업을 해 보지 않겠냐, 학생 수대로 수당을 줄 테니 당신네 센터 원장으로 오지 않겠냐, 온오프라인 설비를 지원해 줄 테니 인력 파견 사업을 같이 하자 등 불과 1년 동안 많은 제안을 받았고, 솔깃하기도 했고, 흔들리기도 했지만 숱한 날들의 고민 후 내린 결정은 늘 '다른 사람의 발등 위에 얹혀가지 말고 내 다리로, 내 속도로 가자는 것'이었다. 


전세 사기를 당하고 소송을 이어가는 동안 새삼 느낀 것은 돈이 중요하지만 돈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순간에 보증금에 변호사 선임비에 소송비용까지, 전 재산을 잃은 후 사는 게 환멸이라 앞으로 더 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성장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지구 위에서 자기 속도로 시도해 볼 수 있는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서 그런 대로 동굴을 통과할 수 있었다. (사실 여전히 통과하는 과정 중에 있는 것도 같다)


하고 싶은 게 있고, 비전이 크면 클수록 비웃는 사람도 많고, 이리저리 그럴 듯한 제안을 하는 사람도 많다. 무수한 소리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걸으려면 자리 철학으로 두 다리를 무장하고 버텨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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