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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리스너 미라신 Dec 13. 2020

18개월 딸의 말말말.

나도 말을 할 줄 알아요.


둘째는 뭐든지 빠르다는 말을 몸소 느끼고 있다. 지나가면 기억이 사라질 것 같아 적어본다.

18개월 딸의 말말말.



"아빠 왔어?"


요즘 새로 지어진 아파트나 빌라에는 월패드가 기본으로 있다. 30년쯤 전엔 문에 있는 동그란 구멍(밖을 볼 수 있는)이 참 신기했다. 밖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니! 20년쯤 전엔 인터폰이 신기했다. 문 앞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거실에서 밖에 누가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니!

그런데 지금은 인터폰을 지나 비디오폰을 지나 월패드의 시대다. 월패드는 정말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마치 벽에 붙어 있는 스마트폰이라고나 할까. 특히 가장 유용한 건 입주자의 차량이 입차시 울리는 알람이다. 그 알람으로 남편의 퇴근을 알 수 있다. 


남편의 차량이 들어온다. 월패드가 켜지면서 차량번호가 뜨고 알람이 울린다. 띠링띠링 소리가 울리면 아이들은 신나서 뛰기 시작한다. 아빠가 맛있는 걸 사 오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신이 날까. 알람이 울릴 때마다 '아빠 오셨다, 아빠 왔어.'를 이야기해 주었더니 둘째가 어느새 그 말을 배웠다. 이제는 알람이 울리면 제일 먼저 귀여운 목소리로 "아빠 왔어?"를 외친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후다다닥 뛰어가 아빠에게 안긴다. 남편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뭐예요?"


어른이 되면 신기한 것, 새로운 것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설사 만나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잘 묻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아이는 참 순수하다. 세상에 모든 것이 새롭고 이제 막 말을 시작한 아이는 새로운 것을 만날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묻는다. "뭐예요?" 

요즘은 뭐예요의 남발이다. 할머니가 음식을 할 때, 아빠가 맛있는 간식을 사왔을 때, 엄마가  빨래를 할 때, 오빠가 책을 읽을 때. 끊임없이 "뭐예요?"가 들린다. 어떤 때는 그 말이 듣고 싶어 일부러 아이가 처음 볼 만한 것을 꺼내보기도 한다. 일상이 지루한 엄마에게 아이의 "뭐예요?"야 말로 새로운 것이다.




"빵"


매일 저녁 아들과 나는 책을 읽는다. 10권은 읽어야 한다며 들지도 못할만큼의 책을 낑낑 들고 오는 녀석. 따스한 온기가 있는 이불 속에 들어가 아이와 꼬옥 껴안고 도란도란 책을 읽는다. 내가 읽어줄 때도 있지만, 종종 아이가 읽어줄 때도 있다. 내가 읽어준 내용을 기억하고 그대로 기억해서 성대모사까지 하는 아이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런 오빠와 엄마를 봐서인지 둘째도 요즘 책에 관심이 많다. 책장에서 책을 빼와 '책'을 외친다.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다. 오히려 '짹'에 가깝다.) 읽으라는 뜻이다. 

얼마 전, 아들의 놀이치료를 하러 센터에 방문했다. 40분 동안 기다리며 무얼할까 고민하는데 둘째가 책장에서 책을 빼와 읽기 시작한다. 하얀 양, 보라색 고양이, 검은색 개, 초록색 개구리 등등. 자기가 아는 동물이 나오면 울음소리를 따라한다. 그러다가 금붕어가 나왔다. 내가 '이건 금붕어야'하고 말하는데 아이가 당당하고 크게 외친다. "빵!" 

그 소리를 듣고 보니 정말 빵처럼 생겼다. 겨울의 별미인 붕어빵 말이다. 역시 붕어빵 좀 먹어본 아이 답다. 당분간 그 책 속 물고기의 이름은 금붕어가 아닌 빵이다.



"빨리와"


스와힐리어로 이런 말이 있다. 'Haraka haraka haina baraka.' 서두름에는 축복이 없다는 의미다. 탄자니아에서 해외봉사를 하는 동안 그들의 느림에 속이 터질 것 같은 때가 많았다. 'Haraka'를 외치면 항상 저 말이 돌아왔다. 그럴 땐 이렇게 응수하고는 했다. 'Haraka haraka ina baraka.' 빨리빨리가 축복이거든! 하고 말이다. 


그만큼 한국인은 '빨리' 익숙해져있다. 외국인노동자나 유학생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도 아마 '빨리'일 것이다. 오죽하면 아이들 만화인 슈퍼윙스에서도 한국을 소개하는 단어로 '빨리'를 택했을까. 아이와 보면서 웃음이 났다. 그래서인지 둘째도 '빨리'란 말을 빨리 배웠다. 엄마가 필요하면 한 손을 흔들며 뭉게지는 발음으로 "엄마 빨리와"를 외친다. 빨리 가지 않을 수 없는 귀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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