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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리스너 미라신 Dec 01. 2020

엄마, 밑에 누구 있어?

층간소음도 추억이 될까?


우리 가족은 1년 전까지만 해도 층간소음 가해자였다.



남편의 귀농으로 이사를 했다. 첫 집은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민간임대아파트였다.

주차장이 적어 추운 겨울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먼 거리 공터에 주차를 하고 걸어와야 했던 이전 집과 다르게 주차장이 넓고 좋았다.

20년이 넘은 아파트라 안방은 크고 거실은 좁아 가구 배치에 애를 먹었던 곳을 벗어나 30평대의 넓은 평수를 맞이하니 마음이 덩달아 커지는 듯했다.

동향에 앞에 산이 있어 해를 만나기 어려웠는데, 하루 종일 따뜻한 해를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4년을 지내면 분양전환 시 우선순위를 준다는 말을 들으며 이 집이라면 평생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귀농 첫 집은 참 좋은 집이었다. 따뜻한 햇볕이 비치는 창가에 누워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따스한 햇살이 우리 가족의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사 후 1년이 지났을 무렵, 아래층에 살던 가족 -초등학교에 다니던 남매와 사람 좋아 보이는 부부-이 이사를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관리사무소에서 온 전화가 인터폰을 울렸다.


"선생님~ 아래층에서 너무 시끄럽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조심해주세요."


당황스러웠다. 뭐가 시끄럽다는 거지? 내 주변을 둘러봤다. 거실엔 혹시 모를 층간소음에 대비한 두께 4cm 매트가 깔려있고 첫째는 아빠랑 목욕 중이고 둘째는 자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당황스러워 아무 말도 못 하고 '예-'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첫 인터폰을 끊고 나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와 씻고 나온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다시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언제 어떻게 시끄럽다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저희가 애들이 있기는 한데 지금 하나는 자고,  하나는 목욕 중이거든요."


조금 뒤 다시 인터폰이 울렸다.


"천장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쿵쿵거렸다고 하시네요."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뭐 어쩌랴. 일단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 매주 인터폰이 울렸다. 솔직히 아이가 있는 집에서 층간소음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인터폰이 울릴 때마다 아이를 혼내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좋았던 집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뒤꿈치를 들고 다니는 첫째.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잠들기까지 고작 집에 두 시간 있는 건데. 남들은 어떻게 남자아이가 저렇게 제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놀 수 있냐고 하는데. 인터폰이 울리는 소리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이를 혼내는 횟수가 많아졌다.


아이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보았다. '리톨아, 아파트는 우리만 사는 게 아니라서 쿵쿵거리면 밑에 사시는 분이 시끄럽다고 싫어해.' 만 4살이 되지 않은 아이가 이해할 리 만무하다. 설사 이해했다 하더라도 실천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매일 설명하고 혼내고 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우리 가족은 지쳐갔다. 인터폰이 울릴까 조심했고, 벨이 울리면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이사를 생각하게 한 전화가 올해 봄, 오후 6시에 울렸다.

아이들과 남편은 시부모님 댁에 가고, 나는 오랜만에 열심히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는 중이었다. 그때 듣기만 해도 움츠러드는 인터폰 벨이 울렸다.


"너무 시끄럽다고 아래층에서 얘기하시네요."


아니- 청소기 소리도 시끄럽다고 하면 뭐 어쩌라는 건지. 지금까지 죄송하다고 굽신거렸는데, 저 전화를 받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진짜 제대로 쿵쿵거려?!'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저 지금 청소기 돌리는 중인데요. 청소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신가 보네요. 지금 청소 마쳤다고 전해주세요."


관리사무소가 무슨 죄가 있으랴. 그분들께 화를 낼 수는 없어, 화를 꾹 누르고 기계적인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빵이나 먹거리라도 사다 주면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싫었다. 청소기 소리에도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부탁 따위는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니까.


임대아파트 계약기간인 2년이 채 되기도 전해 우리는 이사를 결심했다. 그즈음에 읽었던 책의 영향이 컸다.


층간소음의 문제도 있다. ‘상황’을 바꾸는 것보다 ‘아이를 바꾸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겁니다.
“대출 빚이 있어서 이사를 할 수 없어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럼 아이보다 집을 선택하시는 건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결국에는 “아이를 선택해야죠!”라며 이사를 하더군요. 그 뒤로 마음이 상당히 편해졌다고 합니다.

- 책 <오늘부터 훈육을 그만둡니다>  중


아이보다 집을 선택할 수는 없지. 멋진 뷰가 없어도, 해가 들어오지 않아도, 집이 넓지 않아도 아이가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되지 않을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1층 매물을 찾아 나섰다. 전세, 월세, 매매까지. 1층 찾기가 힘들 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한 달을 기다리다 지금의 집을 만났다. 한 빌라의 2층 필로티.


그리고 여름, 우리는 이사를 했다. 층간소음의 가해자에서 벗어났다. 남편은 더 이상 아이를 혼내지 않았고, 나는 청소기를 마음껏 돌렸으머, 아이는 발 뒤꿈치를 들지 않고 걷게 되었다. 그 누구도 인터폰 벨이 울릴까 노심초사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행복을 찾았다. 물론 대신 대출을 얻었지만...



바닥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걸 제일 좋아하는 첫째. 양손에 장난감 자동차를 꼭 쥐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거실에서 안방으로 굴린다. 신나게 놀다가 가끔 고개를 번쩍 들고 물어본다.


"엄마, 밑에 누구 있어?"


시끄럽게 할 때마다 에 사는 사람이 싫어한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나 보다. 이사 6개월 차인 지금도 아이는 가끔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 아무도 안 살아."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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