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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수 Nov 24. 2020

오가고 머물며, 또 다른 꿈을 꾸다

한 개인의 소소한 공간 연대기_09화 


잔금을 치르고 남편과 함께 집을 보러 갔을 때, 남편은 현관 오른쪽 작은 방을 마음에 들어했다. 크기는 작지만 붙박이장과 베란다까지 있었고, 무엇보다 안정감이 들었다. 남편은 ‘이 방은 내 방’이라는 말과 함께 벽지 색도 본인이 직접 골랐다. 가구는 침대와 책상, 벽에 붙이는 메모판이 전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 편한, 아늑한 방이 되었다. 또 다른 장점은 현관이 제일 가까운 방으로 언제 들어오고 나갔는지가 파악되지 않는 점이다. 


손님방-3개월 동안 손 놓고 기다리다 

사실 이방은 이사를 하고도 세 달 정도 비어 있었다. 손님방으로 콘셉트만 정해놓고 손을 놓아 버렸다. 침대를 들여놓아야 했지만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 보자. 


그럴 때는 기다리는 것이 정답. 리모델링과 이사, 이사 후 어머니의 새 집 적응 등에 신경을 쓰다 보니 침대를 사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발품을 팔고, 결정을 해야 하는 과정을 슬며시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세 달째가 되자 슬슬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침대가 관건이었다. 침대 가격이 만만치 않았고 저렴한 침대는 품질이 담보되지 않았다. 또다시 성능과 가격을 놓고 줄타기를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뽑아 예산을 세우고 두 군데 정도 현장 답사를 해보았다. 늘 그렇듯이 마지막 승자는 품질보다는 가격이었다. 가격도 적당하고 디자인도 나쁘지 않은 매장에 가서 싱글 침대 두 개를 샀다. 


나무 느낌의 심플한 디자인. 계산을 하고 집에 왔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후기를 찾아보니 ‘삐걱거린다’는 댓글, 댓글을 100% 신뢰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환불' 쪽으로 기울었다. 댓글 때문이 아니라 살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침대를 환불했다. 사실 마음에 든 침대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비용 때문에 적정선에 맞춰 플랜 B를 선택했던 것. 모르겠다, 비용은 비용이고 플랜 A로 다시 정정. 침대는 한번 사면 바꾸기도 힘들고, 또 오랜 시간 바꾸지 않음을 생각하며 다시 침대를 골랐다. 원하지도 않은 침대에 누워 있으면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할 수 없다. 내가 움직여 그만큼의 가치를 창출하는 수밖에. 


남은 것은 간단하게 글을 쓰거나 인터넷 검색을 할 때 쓸 책상과 쉴 수 있는 1인용 의자였다. 사실 침대는 현대적으로, 책상은 엔틱 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엔틱 책상을 검색해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차선책으로 집에 쓰고 있는 엔틱 책상을 옮겨 놓기 위해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거실에 있는 큰 책상은 공유 책상이잖아, 거실에도 큰 책상이 있는 데 방에도 큰 책상이 있는 것은 별로야.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거실에 2미터가 넘는 책상을 배치한 것은 모임과 독서, 글쓰기, 다양한 작업을 위해서였다. 손님이 와서 방에 묵는다 해도 책상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거실의 큰 책상을 이용할 수 있는 데 굳이 방에까지 부피가 큰 책상을 놓을 필요는 없었다. 

 

인터넷에서 사야 할 리스트를 찜해 놓고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마침 마음에 드는 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사이즈도 적당했고 화장대로도 책상으로도 쓸 수 있었다. 튀지 않는 나무 소재로 어느 가구와도 잘 어울렸다. 탁자를 결정하고는 의자를 봤다. 홈페이지에서는 보이지 않던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마음을 끌었다. 소재도 나무 소재로 탁자와도 잘 어울렸다. 주말에 조립 작업을 하고 배치를 하니 방 분위기가 살아났다. 


침대 옆에는 협탁을 놓을까 고민하다 몇 년 전 갤러리 우물 전시에서 구입한 소반형 탁자를 놓았다. 의외로 레트로 한 느낌이 잘 어울렸다. 침대 옆에는 자연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 산에서 주워 온 마른 나뭇가지를 슬쩍 걸쳐 놓았다. 이렇게 손님방, 일명 현대 방은 3개월이란 시간을 묵힌 다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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