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
불러도 삼월에는 주인이 없다
동대문 발치에서 풀잎이 비밀에 젖는다
가끔 포털에서 ‘최승자’라는 이름을 검색한다. 시인의 근황이 궁금할 때다. 불러도 삼월에는 주인이 없다고, 동대문 발치에서 풀잎이 비밀에 젖는다고 노래한 시인. 삼월이 오고,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 시인. 그의 시는 때론 비관적이고 음울했지만 메시지는 강했다.
얼마 전 대형서점 한 코너에서 발길을 멈췄다. 최승자 시인의 시집, ‘이 시대의 사랑’ 때문이었다. 예전 시집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멋진 표지로 갈아입은 시집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곳에 멈춰 섰다. 태생은 멋졌으나 고정된 틀에 박혀 자신의 색을 잃어버린 체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었을까? 표지와 내지 디자인이 바뀐 시집은 세련되다 못해 도도해 보였다. 마침 시집을 펼쳐 든 사람들도 보였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오래전 발간된 시집이 세월의 벽을 넘어 다시 이 시대를 향해 사랑에 대한 물음을 던진 것이었다.
시집의 제목, 시인의 이름과 캐리커처, 아주 가끔씩 바뀌는 표지 테두리의 색만 빼고는 문학과 지성 시인선은 고집스러울 만큼 같은 디자인을 유지해 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디자인은 문학과 지성 시인선의 정체성이 되었고, 또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무려 40년 넘게 같은 디자인을 유지해 온 문학과 지성 시인선의 디자인 변화는 그 어떤 변화보다 반가웠다.
책 표지는 네온 그린 컬러로 과감하면서 도발적으로 ‘이 시대의 사랑’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듯 ‘훅’하고 가슴에 들어왔다. 이미지 사용을 최대한 절제하고 타이포그래피만으로 표지를 구성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시인의 글은 곧 그대로의 이미지인 것을 디자이너가 놓치지 않은 것 같아 내심 기뻤다.
‘이 시대의 사랑’이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성큼성큼 나를 찾아온 듯한 날. 집에 돌아와 시인의 시집을 펼쳤다. 그리고 종이에 시인의 시를 옮겨 적었다. 마침 삼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