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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수 Oct 12. 2020

공간에 대한 짝사랑만 키우다

한 개인의 소소한 공간 연대기_02화  


싱글 라이프를 접고 시작한 엄마와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잡지사 기자 생활을 접고 시작한 편집, 기획자 생활도 재미있었다. 그즈음 입양한 강아지 보리와 함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홍제천이 가까이 있는 우리 집은 의외로 장점이 많은 곳이었다. 지하철 3호선을 이용할 수 있었고, 을지로, 광화문 등 시내와 가깝고 북한산,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었다. 세련된 맛은 찾을 수 없었지만 나 같이 예스러움과 촌스러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2003년 같은 단지 23평 아파트 가격을 알아봤다. 당시 가격은 1억 3500만 원. 당장 살 수는 없었지만 전세를 낀다면 약 5천만 원만 있으면 매수가 가능했다. 몇 집을 보다가 한눈에 마음에 드는 집을 보고 그동안 모아둔 5천만 원으로 계약을 했다. 당장 들어갈 수는 없지만 내 집이 생긴 것이다. 3년 뒤 전세금을 내주고 23평 ‘내 집’으로 이사했다. 2006년 12월 6일이었다. 이사를 한 날 밤 함박눈이 내렸다.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 역시 하얀 눈처럼 폭신폭신할 것만 같았다. 300만 원을 들여 간단하게 도배와 페인트, 부엌 일부만 손을 봤지만 이전에 비해 두 배 정도 넓어진 공간에서의 생활은 흡족했다. 


침대만 겨우 들어갔던 내 방은 책상까지 놓을 정도로 넓어졌다. 8평 오피스텔에서 13평 전세로 또 23평 내 집으로의 공간 이동에 대한 만족감은 높았고, 그 만족감은 이 집에서 ‘평생 살아도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나는 변화 대신 안정을 택했고 더 이상 새로운 공간을 탐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변화가 생겼다. 내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결혼과 함께 어머니의 싱글 라이프가 시작됐다. 집은 어머니가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냥 두고 내 짐만 뺐다. 내가 살았던 13평 전셋집 주인이었던 오랜 친구는 세월이 흘러 내 남편이 되었다. 프러포즈를 받고 한 달 반 만에 결혼 날짜를 잡았다. 촉박한 시간 탓에 결혼식 준비에만 집중하고 집 인테리어는 신경도 쓰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대충 보고 가장 평범한 브랜드의 식탁과 소파, 장식장을 마련했다. 친구가 만들어준, 거실 벽면을 채운 맞춤 책꽂이를 제외하고는 거실은 여느 집처럼 텔레비전과 소파가 차지했다. 방 3개 중 안방은 5개월 후에 들어올 시부모님을 위해 비워놓고, 우리 방은 문 앞으로 정했다. 하나 남은 방에는 옷장을 짜서 넣었다. 23평으로 이사 갈 때 알게 된 인테리어 업체에게 블라인드와 옷장, 빨래걸이와 선반 등 몇 가지만 부탁했다. 


새 아파트였지만 인테리어 콘셉트도 없었고 통일된 색감도 없었다. 하나하나의 오브제들이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각각의 자태를 뽐내는 양 그렇고 그런 집이 되었다. 5개월 후 시부모님과 함께 부모님 짐도 함께 들어왔다. 다른 곳과 달리 부엌은 내 살림과 시어머니 살림살이가 합쳐지다 보니 더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내 신혼집은 좋은 말로는 다채롭고 나쁜 말로는 개성이라고는 1도 없는 그런 집이 되었다. 

 

사실 나는 감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을 찾기 어려웠던 잡지사 기자 시절에는 요리 담당으로 촬영 콘티를 짜고, 촬영을 앞두고는 직접 소품을 구하러 다녔으며 외국 잡지를 보면서 꾸준히 감각을 키웠다. 디지털카메라가 없었던 때였으므로 촬영 현장에서는 폴라로이드로 시안 컷을 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체크하며 컷의 완성도를 높였다. 인터뷰 촬영은 물론 요리 촬영까지 촬영 며칠 전날부터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촬영계획서를 작성했다. 촬영계획서만 보고도 완성 컷의 느낌을 알 수 있어야 사진팀 부장의 오케이 사인이 났다. 

 

촬영이 끝나면 디자인팀과 담당 지면에 대해 늘 의견을 교환했다. 서체의 크기는 물론 편집 레이아웃까지 디자이너는 아니었지만 편집 기자로 디자이너만큼의 노력을 했다. 값이 만만치 않은 외국 책도 디자인 레이아웃이 좋으면 구입했고, 출장이라도 가면 무거워지는 가방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 나라의 유명 서점을 방문해 리빙 잡지를 챙겨 왔다.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국내에서 출판된 ‘작은 집 꾸미기’, ‘완벽한 수납’ 등의 단행본도 간간이 사 모았고, 건축가가 쓴 집 이야기, 리모델링과 관련된 책은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공간과 집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그 관심이 실생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개성과 취향이 담긴 공간을 좋아하고 꿈꾸어 왔지만 내 삶을 담은 현실 속 공간은 늘 비슷비슷한 모습이었다. 특히 단순한 이사가 아닌 결혼,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좀 더 내 취향이 담긴 공간을 꾸밀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무슨 이유였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촉박한 결혼 날짜는 겉으로의 이유였다. 그럼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 머릿속에 자리한 공간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다. 공간에 대한 짝사랑만 키운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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