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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수 Aug 07. 2024

폭염에 지지 않고
연꽃 보며 평안을

- 조계사 연꽃 축제 -

입추를 하루 앞둔 날, 폭염을 뚫고 조계사에 다녀왔다. 시어머님 기일이기도 하고, 요즘 간절히 바라는 일들이 있어 마음을 기댈 양으로 겸사겸사 다녀왔다.


나는 독실한, 혹은 반듯한  불교도 축에는 절대 끼지 못한다. ‘부처님 오신 날’을 포함해  기껏해야 1년에 3~5번 정도 절을 찾으니 ‘나이롱 불심(佛心)’을 가진 ‘나이롱 불자(佛子)’라고나 할까.


불심 깊으셨던 어머니 손을 잡고 어릴 때부터 자주 절에 다녀 모태 신앙을 갖게 된 데다 시어머님과 언니 또한 독실한 불자이셨기에 자연스레 불교에 가까워졌을 뿐이니까. 수계를 통해 법명도 받고, 불교 교리와 경전에 대해 공부를 조금 하기는 했어도  아는 것도 그리 많지는 않다.


게다가 고등학교는 가톨릭, 대학교는 개신교 계통의 미션 스쿨을 다닌 데다 기자 시절의 직장이었던 신문사도 개신교에 기반하고 있었기에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비교적 ‘열린 마인드’를 갖고 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세 분과 아버지에 시아버님까지, 나의 ‘정신적 후원자’였던 다섯 분을 나의 젊은  날 불과 몇 년 동안 잇달아 여읜 후에는 중요한 일이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마음을 조금이나마 기대고파 절을 찾곤 했다.


또 대부분의 수험생 엄마가 그렇듯이, 아이들이 대학 입시를 앞뒀을 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깊은 불심을 갖고 새벽 기도와 백일기도까지 불사하며 주 1회 이상 절에 가고, '기도발' 높다는 전국 유명 사찰 순례는 물론 사경까지 하면서 간절한 마음을 불전에 올리기도 했다.




섭씨 35~38도의 이상 고온으로 전국에 폭염 특보가 발효된 입추 전날 오전, 맘먹고 들른 조계사에는 불볕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불심 깊은 불자들이 대웅전과 앞마당에 그득히 모여 경건히 예불을 올리고 있었다. 나도 잠시 대웅전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앞마당에 있는 8각10층 진신사리탑도 돌며 간절한 마음으로 발원했다.


마침 조계사엔 연꽃 축제가 한창이라, 일주문 앞부터 대웅전으로 가는 앞뜰에 연꽃과 연잎들이 한가득했다. 짚으로 엮은 큼직한 화분마다 키 높은 연꽃들이 심겨져, 싱그럽고 널찍한 초록 연잎들 사이로 연분홍 · 진분홍 · 하양 꽃을 활짝 피우거나 꽃봉오리들을 봉긋하게 세워 올리고 있었다.

조계사 2024 연꽃 축제 / 사진 : 신현수

또한 작은 연못에는 자그마하지만 아름다운 수련들이 앞다투듯 피어서, ‘이봐요, 나도 여기 있어요’ 하면서 바람결에, 물결에, 하늘하늘 일렁거리고 있었다.

조계사 2024 연꽃 축제  / 사진 : 신현수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서도 수면 위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이는 고난과 번뇌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불교와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꽃은 수명이 길고 매년 새롭게 피어나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도 결이 같다.


조계사는 해마다 이맘때면 연꽃 축제를 벌이는데 올해 연꽃 축제의 주제는 ‘연꽃, 마음의 평안을 주다’이다. 연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고요와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조계사 2024 연꽃축제 / 사진: 신현수

나 또한 이날, 조계사에 활짝 핀 고운 연꽃과 푸른 연잎들을 보는 것만으로 힘들었던 마음에 고요와 평안, 그리고 버티며 살아갈 을 얻은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엄청난  폭염에 땀을 뻘뻘 줄줄 흘리면서도,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폰카 가득가득 연꽃 사진과 영상을 담아 왔다.  

 

역대급의 심한  폭염에  지고 싶지 않아서, 인생길의 고비들을 잘 넘기고  잘 버티고 싶어서, 마음속 간절한 바람들을  꼭 이루고 싶어서, 좀더 평안해지고 싶어서…….

조계사 2024 연꽃 축제 / 영상:신현수

서울 종로 한복판, 대한민국 불교 1번지 조계사에서 펼쳐지는 연꽃 축제.


독실한 불교 신자라면 더욱 좋겠지만 나처럼 ‘나이롱 불자’일지라도, 혹은 무신론자이거나 다른 종교를 가졌을 지라도, 한번쯤 무심히 들러 보면 어떨까.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지만, 꼭 불교만의 꽃은 아니니까.


조계사 연꽃 축제 기간은 8월말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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