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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그림이고 그림이 일상이다

- 그림 속 인물이 실제보다 젊은 까닭은?

by 신현수

5년 전 큰맘 먹고(!) 그림을 시작한 후, 두 번째로 도전한 것은 ‘일상 그림’이었다. <그림책 작가 되기> 강좌의 두 번째 과제가 ‘일상을 담은 미니 그림책’ 만들기였기 때문이다.


과제를 받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대략 난감했다.

‘일상을 담으려면 인물이 행동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그려야 할 텐데 어떡하지?’

(가만히 놓여 있는) 사물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사물 그림과는 달리, 일상 그림은 난이도가 백만 배쯤 높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초·중·고교 미술 시간에도 주로 사물이나 정물, 풍경, 추상화 등을 그렸지, 일상 속의 인물 모습을 담은 그림 같은 건 그려본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야! 일상 그림을 그려본 적은 없어도 내겐 컴퓨터와 인터넷이 있지 않은가. 동화작가라서 책장엔 그림책과 동화책도 잔뜩 꽂혀 있고.


도전 정신을 다시금 가다듬고 일단 인체 동작 드로잉 몇 가지를 열심히 훈련했다. (당시의 스케치북을 잘 보관했어야 하는데 언젠가 폐기해 버려 그때의 연습 그림들을 볼 수 없는 게 아쉽다). 일명 ‘졸라맨’ 그림도 부지런히 연습했다.


그림책과 동화책,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일상을 스케치한 그림도 찾아 표정과 동작, 자세 등을 이리저리 모사해 보기도 했다. 그 결과 우여곡절 끝에 일상 미니 그림책을 만들어 냈다. 제목은 『심심한 날엔』. 심심한 날에 내가 곧잘 하는, 혹은 하고픈 일들을 그려본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림에는 실제의 나의 일상과는 다른, 내가 상상하는 ‘희망 일상’도 표현돼 있었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지만 반려견과 산책을 한다던가, 나는 기타를 못 치지지만 기타를 친다던가 하는…….



물론 요즘 아이들 말로 ‘그림 쪼렙’이라서 지금 보아도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이나 자세, 심지어 인체 비율까지 어색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다. 특히 인물의 눈은 감겨 있거나 그저 동그란 점으로만 표현돼 있다. 눈을 그리는 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는 내가 나의 일상을 그림으로 그려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더구나 그림 속 주인공은 당시의 내 모습보다도 훨씬 젊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일부러 젊게 그린 것도 아니다. 내 부족한 솜씨로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그리는 게 어려웠을 뿐이다. ㅠㅠ



‘삶이 소설이고, 인생이 드라마다.’

우리는 곧잘 이런 말을 한다. 높낮이의 폭이야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삶의 파고(波高)는 있는 법이고, 그래서 속속들이 알고 보면 모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매우 어설픈 일상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머릿속엔 ‘삶이 소설이고, 인생이 드라마다.’라는 글귀에 빗대 ‘일상이 그림이고, 그림이 일상이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일상은 무심하고 지루한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과 같으니까. 여러 가지 선과 색채를 써서 어떤 이미지를 하나의 화폭에 나타내는 것이 그림이라면, 우리가 하루하루 보내는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인생이라는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 내는 것일 테니까.


더구나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그날그날을 그대로 놓아 두면 ‘그냥 일상’에 불과하지만, 선과 색채를 입혀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표현해 두면 조금은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삶의 기록이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앞으로도 일상 그림을 조금씩 조금씩 그리며 살아가고 싶다. 비록 그림 솜씨는 '쪼렙'이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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