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필 Sep 02. 2022

길우 1

눈뜨면 가장 먼저 마주했던 모습, 눈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



길우를 바라보고 있으면 항상 두 개의 시간이 겹쳐 보였다.

길우는 신부전과 구내염으로 고생해 깡마른 몸을 하고도 집에 있는 다른 고양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받아주는 고양이에겐 몸까지 비비며 한 발 더 다가갔고, 인사를 피하는 고양이에겐 한발 물러나 자리를 비켜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젊은 날의 길우가 동네 대장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숨길 수 없는 길우의 자신감과 영리함에 감탄하며 건강했던 시절 길우를 상상하곤 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한참을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길우에게 “길우~~ 잠깐만 기다려 ‘라고 말하면, 마치 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서 나를 바라봤다. 그럴 때면 길우가 예전에 사람과 살았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왜 길로 나왔을까? 버려진 걸까? 길을 잃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길우를 오래 가족처럼 보살펴준 캣맘이 있었던 걸까?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길우를 볼 때마다 나이는 몇 살인지 몇 개의 이름을 가졌고 그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지냈는지 궁금했다. 알 수 없었으므로 늘 상상했다. 상상 속의 길우는 건강했고 영리했으며 담대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내게 몸을 기대고 잠든 길우를 보며 병이 생긴 지금.. 길우가 내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영리하고 담대하고 사랑스러운 길우를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안도했다.     


길우가 떠난 지금... 길우가 있던 자리를 보면 두 개의 차원이 겹친다.

좋아했던 스크래쳐 위에 남아있는 길우의 침 자국, 마지막 날 덮었던 담요에 남아있는 피, 길우 화장실과 이동장. 좋아했던 책상 의자. 다니던 병원... 길우와 관련된 것을 보면 지금 길우가 있던 곳은 어떤 곳일까 생각한다. 언젠가 꿈에 나왔던 곳처럼 하늘 같기도 하고 바다 같기도 한 곳에서 사람들이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걷기도 하고 날기도 하고 유영하기도 하는 그런 곳일까? 아니면 어떤 그림 속에서 본 꽃동산 같은 곳일까? 그도 아니면 불교에서 말하는 공의 세계 같은 곳일까? 그마저도 아니라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무릎 위 같은 곳일까? 긴 시간 상상할 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지금 길우의 세계를 그리려다 돌아서면 도리 없이 내려놓는다.  

그래도 내려놓지 못한 미련한 미련에 또리방에게 혹시 길우 어디 있는지 아냐고, 언제 온다고 알려준 적 없냐고 묻는다. 배부른 또리방은 꼬리만 살랑살랑 흔든다. 비밀이라는 걸가?      

나는 죽음의 의미를 알고 길우의 육신이 죽음의 경계를 넘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또 다른 나는 길우가 어딘가 있을 것 같아서 자꾸만 길우를 기다린다. 이상한 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